남편의 분신은 주변의 아기들이 시전 하는 떼쓰기, 울며 보채기 등으로 표현되는 아기들만의 의사표현을 하지 않는 편이다. 한마디로 얌전한 편이며, 키우기 쉬운 축에 속한다. 인생 2회차라는 별명답게 여유롭고, 기다릴 줄 알며, 자신의 감정을 똑부러지게 말할 줄 아는 아기를 통해 오히려 의사소통을 배우는 남편과 아내였다.
30개월까지는 그랬다. 30개월이 다 되어서야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아기에게서는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TV를 조금만 더 보겠다 보채기 시작했고, 부모의 제안에 쉬이 오케이를 주지 않았다. 항상 바쁜 무엇인가를 해야 할 것처럼 주변을 살피며, 한두 번의 밀당 끝에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발차기를 배워와서는 맘에 들지 않을 때 킥을 시전했고, 때로는 힘껏(나름대로의 최대치) 남편을 밀쳐내기도 했다. 이런 적대적인 행위는 주로 덜 좋아하는 아빠와 뭘 해도 웃어주는 이모에게 행해지곤 했는데, 아기가 가장 사랑하는 엄마이자 남편의 아내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행동이라는 점을미루어보면 나쁜 행위임을 아기 스스로도 알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남편은 우리집 작은인간이 인생 2회차를 사는 것처럼 행동해왔던 것이 어쩌면 보고 배울 대상이 어른들 뿐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집을 간 이후로 점점 애처럼 행동하고, 떼를 쓰고, 급기야 울며 보채기까지 1초도 안 걸리는 아기를 보며 소통 역량이 후퇴했다는 생각을 했다. 만 2살짜리에게 소통을 기대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필요한 만큼의 소통이 가능했던 아기이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기는 어린이집을 다니며 아기가 되는 법을 배웠다. 아기의 또래답지 않은 행동들이 뿌듯했던 남편이지만, 피할 수 없는 맞벌이 부부의 아들인 우리집 작은인간은 어린이집 등원을 통해 아기들 사이에서아기들을 통해 배우는 아기다운 아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최근 들어 아기는 신발을 짝짝이로 신겠다고 우기고 있다. 양말도 매한가지다. 어린이집의 친구 누군가가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 온 것이 발단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집 작은인간은 장화만 고집하던(스스로 신고 벗을 수 있는 입구가 넓은 장화를가장 선호했다) 이전 습관을 버리고 양 발에 각기 다른 신발을 신고 있다.
남편은 그 모습이 자세에 영향을 줄까 싶어 말리고 싶지만, 강력히 저지하지는 못했다. 어린이집을 보낸 것도 남편과 아내가 일을 하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지 아기의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기 싫은 어린이집에 반강제(?)로 보내짐으로 인해 획득하게 된새로운 흥미를 무턱대고 막을 수는 없었다.
발차기, 밀어내기와 같은 적대적인 행위도 매한가지다. 매번 잘못된 행동임을 말해주고는 있지만 무서운 분위기를 조성해서까지 바로잡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지는 않다. 이 또한 어쩔 수 없이 어린이집을 보낸 부모의 미안함이 내심 반영된 결과라고 남편은 생각했다.
어린이집은 아기의 보육과 교육을 담당해주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선생님의 역할이지 아기들에게 기대할 수는 없는 부분이다. 15명의 아기들이 한 교실에 모여 생활하다 보니 다양한 친구들의 행동거지를 접하게 되고, 이는 자연스레 학습되어 우리집 작은인간에게서 드러났다.타의 모범이 되고, 귀감이 되는 아기를 찾아 배우라는 기대는 할 수도 없기에, 앞으로 어떻게 보육을 해야하나 생각이 많아지는 남편이었다.
우리집 작은인간이 떼쓰고 울며 보채는 빌런(?)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공격적인 행동으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바라는 마음에서 고민이 깊어지는 남편이었다.
만 2세. 아직은 아기스러워도 괜찮은 시기임은 분명하지만, 이 작은 인간이 차차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아기의 아빠는 때론 어린이집을 가기 전 평온했던 아기와의 소통시간이 그립곤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