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에게는 미안하지만 남편과 아내는 장난감을 사주는 행위에 적잖이 인색한 편이다. 집 안에 장난감이 즐비한 모습이 싫은 것이 첫 번째 이유고, 갓난아기 때부터 장난감 없이 집안 사물을 이용해 잘만 놀던 모습을 본 경험이 두 번째 이유다. 그래서일까 어느새 머리가 많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아기는 마트의 장난감 코너에서 사달라 떼쓰지 않는다.
"아기 이거 멋져보여"
아기는 사달라고 조르지 않는다. 다만, 이 장난감이 멋져 보인다고, 혹은 이거 좋다고 자신의 감정을 얘기하곤 한다. 그 모습을 보면 이뻐 보이는 게 인지상정,고슴도치 남편은 당장 카트에 넣을까 고민하다가도 이내 제자리에 놓는다. 대신에 아빠가 보기에도 이게 좋고, 아기가 장난감 고르는 센스가 있다고 칭찬하며 에둘러 넘어간다. 그래서 남편네 집에는 장난감이 많이 없다. 그나마 있는 것들도 대부분 누군가의 손때가 탄 중고품들이다.
남편은 흙놀이를 좋아하는 아기의 모습에 뿌듯해하곤 했다. 삭막한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나지만, 자연을 벗 삼을 줄 아는 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분을 키우며 함께 물을 주는 연습을 하고, 흙 위에서 뒹굴어도 옷이 더러워지는 걸 걱정하지 않았다. 아내 또한 아기가 하고 싶은 것은 하게 두자는 주의라 우리집 작은 인간은 공원에서 흙을 맘껏 매만지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장난감 놀이보다 흙놀이를 좋아하는 우리집 작은인간의 별명은 '마당새'이다. 할비할미네 집에 가면 마당을 벗어나지 못한 채 벌새마냥 바삐 돌아다니며 온갖 마당일을 도맡아 하기 때문이다. 돌을 던지거나, 흙을 파는 등 주로 어른들이필요로 하지 않는 일들이지만 사명감을 가진 채 아기 스스로의 과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의 연장선상으로 우리집 베란다도 흙바닥이 되었다. 남편이 사랑하는 베란다는 이미 아기의 흙놀이에 양보된 지 오래다.
그랬던 아기가 밤산책 중 공원의 흙바닥에서 머뭇거리더니, 이내 돌아 나왔다. 바닥에 주저앉아 흙을 뿌리며 희뿌연 연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일상적인 모습인데, 다소 아쉬운 얼굴로 돌아 나오는 모습이 생소했다.
"헬로카봇 다쳐"
그날 낮에 선물 받은 카봇 장난감이 원인이었다. 유치원 형이 갖고 놀던 장난감을 선물 받은 아기는 이후 한 순간도 로봇 장난감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흙밭에도 들고 들어갔으며, 흙놀이를 하자니 로봇에 흙이 묻어 망가질까 걱정을 했던 것이다.
"아빠가 흙놀이 끝나면 깨끗이 씻어줄게. 괜찮을거야."
남편은 변신로봇이라 흙이나 자갈이 껴 망가질까 걱정되는 마음을 숨긴 채 공수표를 던졌다. 자신의 복제품인 아기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를 참는 모습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치 빠른 작은인간은 남편의 공수표를 알아챈 것인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흙놀이를 포기하며 갖고 싶었던 로봇 장난감 살리기를 택했다.
남편은, 우리집 작은인간의 아빠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너무 과하게 장난감을 사주지 않은 것일까, 갖고 싶어도 다 가질 수는 없다는 현실을 너무 빨리 알려준 것일까 걱정도 들었다.흙놀이를 좋아하는 이유가 장난감이 없어서는 아니겠지?
헬로카봇 노래를 흥얼거리는 아기는 아직 헬로카봇 만화를 본 적이 없다. 유치원에서 배워온 노래를 흥얼거리고, 어떤 장난감인 줄도 알지만, 아직은 작은 몸집에 어울리는 만화영화만 보고 있는 중이다. 남편은 아기가 그간 흥얼거린 노래가 헬로카봇을 갖고 싶다는 의사표현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또 한편으로는 시간이 흘러 흙놀이를 완전히 떼면, 고고다이노 변신로봇에 흥미가 떨어지면, 기차놀이를 지겨워하면 어차피 헬로카봇으로 갈 것이니 최대한 늦게 사주라는 주변 육아 선배들의 조언을 어디까지 받아 들어야 하는 것일까 고민이 되었다.
남편은 어느 시점에 장난감을 교체해야 할지 지켜보기로 했다. 갖고 싶은 장난감을 모두 가질 수는 없지만, 꼭 갖고 싶은 것은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을 줘보기로 했다. 하나를 사면 하나를 버려야 한다는 규칙도 만들어볼 생각이다.
장난감 즐비한 집이 되는 것은 남편과 아내의 취향이 아니고, 이 집은 우리가 함께 사는 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