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적으로 멀미를 하지 않는다. 아무리 흔들리는 차를 탄다 하더라도 남들이 말하는 울렁거림, 두통등을 느끼지 못한다는 의미다.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 만성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인생이다 보니 차만 타면 잠이 쏟아지곤 한다. 그것 또한 멀미의 한 종류라고 하지만, 어쨌든 남들이 말하는 멀미의 고통은 모른 채 살아왔다.
멀미를 느끼지 못하니 장점이 많다. 이동 수단에 대한 걱정이 없고, 이동 시간에 대해서도 관대하다. 섬에 놀러 갈 때엔 아무 배나 타면 되니 일정에서 자유롭고, 장거리를 이동할 때에는 책을 읽을 수도 있으니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멀미가 심한 지인들은 장거리 이동에는 차라리 직접 운전을 하겠다고 하지만, 멀미가 없는 나는 차라리 고속버스를 택한다. 아무래도 남이 운전해주는 시간 동안 독서를 하거나 쪽잠을 취하면, 그 시간이 아깝지 않기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는 그랬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시내버스 안에서도 당당하게 책을 펼쳐들 수 있었고, 울릉도와 독도를 향하는 배 안에서도 간식거리를 먹으며 편안한 여행을 했다. 하지만 이제 움직이는 이동수단 안에서 독서를 하고, 간식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은 더 이상 장점이 아니게 되었다.
스마트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음에는 이견이 없지만, 거기에 더해 멀미도 지워버리지 않았나 싶다.
멀미가 무서워 자리에 앉지 않던 사람들은 빈자리만 있으면 달려가 앉으려 한다. 앞자리만 고집하던 이들은 이제 뒷자리에도 서슴없이 앉는다. 속이 울렁거릴까 걱정되어 책을 펼치지도 못하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작은 글씨, 움직이는 영상과 관계없이 스마트폰은 멀미를 이기고 이동에 소요되는 시간을 성실히 채우고 있다. 물론 아직도 멀미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계시기야 하겠지만. 버스 안에서 멀미를 이겨가며 먹던 간식은? 음식물 반입 금지로 인해 이제 누리지 못하는 호사가 되어버렸다.
버스 안 사람들은 거의 전원에 가까운 인원들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누군가는 영상을, 누구는 그림을, 또 누군가는 글을 읽기도 한다. 그 많은 스마트폰 이용자 중에 멀미로괴로워하는 사람은 찾을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내 주변에 멀미로 힘들어하는 이를 찾기 어렵게 되었다.
스마트폰이 일상생활의 필수품이 되면서 종이책이 사라지고, 신문이 사라지고, PDA가 사라지고, 손목시계가 사라지고, 넷북이 사라지고, 스케줄러가 사라지고, 종이통장이 사라지고, 신용카드가 사라지고, 지갑이 사라지고 했지만, 멀미도 사라지지 않았나 싶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겠지만, 이전보다는 찾아보기 힘들게 된 것은 맞는 것 같다.
대중교통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은 한동안 희한한 광경이라며 언론에서도 앞다투어 다루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그 많은 사람들이 대중교통에서 책을 보지 않던 이유는 분명 멀미도 있었을 텐데, 그때 그 사람들은 왜 이제 멀미를 하지 않을까? 어떻게 흔들리는 차 속에서 스마트폰을 여유롭게 볼 수 있을까?
과학적으로 증명해낼 깜냥은 안되지만, 멀미약 회사들은 긴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멀미약을 판매하는 제약회사의 적이 스마트폰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두통이 있던 어느 날 멀미를 떠올렸고, 멀미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스마트폰까지 사색의 시간을 가져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