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맛이지만 흔하지 않는 맛
“일본에 간다면 햄버그 스테이크부터 먹어야지!”
내가 좋아하던 일본 배우 중에는 고(故) 다케우치 유코가 있다. 2020년 9월 세상을 떠난 그녀의 필모그래피 중에는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있다. 국내에서는 이 영화로 다케우치 유코의 이름이 잘 알려져 있다. (소지섭, 손예진 주연의 동명 영화는 다케우치 유코가 주연한 이 영화의 리메이크다)
다케우치 유코는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활동한 배우였다. 드라마 중에서는 아이스하키가 소재였던 <프라이드>에서 기무라 타쿠야의 상대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를 톱스타 반열에 올려놓아준 작품이 있다. 드라마 <런치의 여왕>이다.
경양식 레스토랑이 배경인 <런치의 여왕>에는 다양한 음식이 나온다. 특히 데미글라스 소스를 얹은 오므라이스가 핵심적인 음식으로 나오는데,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햄버그 스테이크였다. 먹음직스럽게 찍힌 화면과 음식을 먹는 배우의 먹방은 군침을 흘리게 했다. 당연히 햄버그 스테이크 먹방도 생각하면서.
그리고 도쿄를 처음 갔을 때 숙소로 잡았던 신오쿠보의 한인 호텔 근처에 노란 간판의 작은 식당을 하나 발견했다. 요시노야, 스키야와 함께 일본 3대 규동 체인점인 마츠야였다. 자판기에는 수많은 메뉴가 적혀 있었고 그중에는 햄버그 스테이크도 있었다. 그것을 보자 <런치의 여왕>에서 나온 그 햄버그 스테이크가 바로 떠올랐다.
마츠야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김밥천국 같은 곳이다. 그렇게 대단한 음식점은 아니다. 가볍게 즐길 대중식당이라 하겠다. 대부분 이곳을 찾는 이들은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규동을 주문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있으니 내 머리와 손은 바로 햄버그 스테이크를 선택하게 했다. 자판기에서 쿠폰을 뽑은 뒤 직원에게 건네자 몇 분 뒤 바로 음식을 갖다 주었다. 쌀밥, 미소시루, 샐러드와 함께 나온 햄버그 스테이크였다.
아! 이 얼마나 고대했던 햄버그 스테이크였나. 드라마처럼 반숙으로 나온 계란 후라이 노른자를 살짝 깬 뒤 햄버그 스테이크를 찍어서 먹었다. 사실 고기의 질은 레토르트 햄버그 스테이크와 큰 차이는 없다. (김밥천국 같은 음식점이니까…) 맛도 모두가 아는 그 맛이다. 그런데도 뭐가 그리 좋았는지 참 맛있게 먹었다. 그 뒤로도 일본을 가면 항상 마츠야를 가장 먼저 찾았고 햄버그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도착한 날 그렇게 먹어야 일본에 온 듯한 나만의 루틴이 됐다.
사실 마츠야보다 더 맛있는 햄버그 스테이크도 서울에서 먹을 수 있다. 광화문 일민미술관 내 <카페 이마>라는 곳은 햄버그 스테이크 맛집으로도 유명하다. 햄버그 스테이크가 땡기거나 미팅을 겸한 점심 식사를 할 때 마다 찾던 곳이다. 퇴사하던 후배와의 ‘마지막 한 끼’로 선택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도 마츠야에서 먹던 햄버그 스테이크가 내게는 왠지 모를 맛이 더 느껴진다. 상상 속의 맛이라는 조미료가 첨가됐기 때문일까? 생각난 김에 마트에서 레토르트 햄버그 스테이크를 사와 계란 후라이를 올려서 아내와 함께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