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라진 일본 스포츠의 상징 도쿄국립경기장
도쿄 신주쿠역에서 노란색의 추오-소부센을 타고 2정거장을 가면 센다가야역에 도착한다. 센다가야역 주위는 관광지로 찾는 곳은 아니다. 굳이 관광지를 꼽는다면 근처에 신주쿠교엔과 메이지신궁이 있는 정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종반부에 여주인공 미야미즈 미즈하가 급히 뛰어 내리는 역으로 나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도쿄를 가면 이 역을 꽤 많이 찾게 된다. 센다가야역 근방에는 그 유명한 도쿄국립경기장이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열리는 경기 취재를 위한 방문이었다.
도쿄국립경기장은 1958년에 열린 도쿄 아시안게임을 위해 건설된 경기장이다. 그리고 아시아 최초의 올림픽이었던 1964년에 개최된 도쿄 올림픽의 주경기장이기도 했다. 일본, 아시아 스포츠 역사에 있어서 의미가 큰 경기장이라 하겠다. 그래서 경기장에는 올림픽을 나타내는 (오륜 로고라고 부르는) 올림픽 링을 발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도쿄국립경기장이 없다. 일본이 2020 도쿄 올림픽 개최를 대비해 노후화된 도쿄국립경기장을 재건축했다. 그래서 지금의 경기장에서 예전 모습을 발견하기 어렵다. 과거의 도쿄국립경기장을 방문한 적이 없다면, 현재의 경기장을 보고 “60년이 넘은 경기장이 맞는건가?”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도쿄국립경기장을 처음 방문한 것은 2006년 12월이었다. 전북현대모터스가 출전한 FIFA 클럽 월드컵 취재를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 당시 클럽 월드컵은 도쿄국립경기장과 요코하마국제경기장에서 진행됐는데 전북현대모터스는 결승전이나 3위 결정전에 올라야 요코하마국제경기장에서 경기를 할 수 있는 스케줄이었다. 그렇다보니 출장 기간 동안 도쿄국립경기장을 찾는 횟수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신주쿠 근처인 신오쿠보를 숙소로 잡았는데, 신오쿠보 근처 오쿠보역에서 센다가야역까지 바로 가는 노선이 있다. 그래서 처음 가는 길을 헤매지도 않고 잘 찾아갔다. 지금이야 구글맵을 실행해 알려주는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지만, 당시에는 미디어가이드에 그려진 약도만 보고 찾아가야 했다. 경기장도 센다가야역에서 걸어서 금방 갈 수 있는 위치였기에 수월할 수 있었다.
도쿄국립경기장이 웅장한 느낌은 없었다. 국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합운동장과 큰 차이가 없었다. 여러 차례 내부 리모델링을 했는지 시설이 낙후되었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않았다. 당시 기준으로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잠실올림픽주경기장과 비교되기도 했다.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은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생기기 전까지 다양한 경기가 열렸지만 2015년에 서울이랜드가 창단해서 홈으로 사용하기 전까지는 사실상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반면 도쿄국립경기장은 재건축 직전까지도 경기 및 공연 개최 등으로 가동했다. 각각의 사정이 있지만 꾸준한 관리와 계획적인 경기장 운영을 한다면 오랫동안 사람들이 찾는 공간이 되지 않을까 한다. 당장 국내에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개최 이후 방치되고 있는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 같은 경우도 있다.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전북현대모터스의 첫 클럽 월드컵 도전을 생생히 지켜봤다. 전북현대모터스의 두 번째 클럽 월드컵 도전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에 이루어졌다. 당시 준결승 2경기 중 1경기도 열렸는데 브라질의 인터나시오나우가 도쿄국립경기장에서 경기했다. 인터나시오나우에는 브라질의 샛별이었던 알렉산드리 파투가 있었는데 그의 화려한 개인기에 시선을 뺏기기도 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2018년 여름 도쿄국립경기장을 다시 찾았을 때는 경기장은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물론 그전에도 경기장을 찾았다) 동행했던 일본인 기자는 “과거의 역사가 사라졌다”며 아쉬운 속내를 드러냈다.
한국축구와 도쿄국립경기장은 유독 인연이 깊은 곳이기도 하다. 그 유명한 도쿄대첩의 경기가 열렸던 곳이다. 1997년 9월에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열렸던 한국과 일본의 1998 프랑스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를 모두가 기억할 것이다.
“이 민 성”
도쿄대첩은 이 한 마디로 정리가 될 정도로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한국축구사나 한국축구팬들 입장에서 과거의 도쿄국립경기장은 한일전의 명승부가 열렸던 곳으로 기억하고 있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을 앞둔 2010년 2월의 한일전 3-0 승리도 기억난다. 2009년 포항스틸러스, 2010년 성남일화가 도쿄국립경기장에서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했던 기억도 있다.
그런 만큼 과거의 도쿄국립경기장이 사라지고 새로운 도쿄국립경기장에 생긴 현재의 모습을 보면 과거의 순간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물론 일본인들보다야 그 감정이 덜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