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네이트 Mar 24. 2017

'한국의 나쁜 부자들'을 읽고 한마디...

22번째로 읽게되는 책 입니다.

 

책은 2013년 7월에 1판 1쇄가 된 책 입니다. 만 4년이 지나지 않은 책 입니다. 책은 일반적으로 그러하듯이 4개의 파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즉, '부자의 99%는 나쁜 부자, 베일에 가려진 나쁜 부자의 삶, 그들의 진실 혹은 거짓, 나쁜 부자들에게 배우는 노하우' 입니다. 물론 파트의 제목과 그와의 연관성은 개인적으로는 좀 동떨어지는 부분이 있어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암튼 읽는 내내 재미적인 요소가 컸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쉬움이 있다면 머리속에 사건이 잘 그려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온통 A씨 B씨 등으로 구성이 되다보니 사건의 내용이 머리속에 쏘옥 들어오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했습니다. 내가 혹은 우리가 너무나 그러저러한 일에 대해서 잊고 지낸다는 것 말입니다. 한때는 세간을 흔들었던 이야기들이 너무나 쉽게 남의 일로의 전환이 쉽게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책의 맺음말 부분에 나오는 부분을 보면 공감대가 쉽게 생겨날 듯 합니다.

 

'빨리 잊어버리고, 쉽게 용서하는 나라, 2013년 5월 온 나라를 후끈 달군 남양유업 사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금세 식을 것이다. 실제로 5월 중순 윤창중의 성추행사건, 서태지의 결혼발표 등이 나오자 남양유업 얘기는 쏙 들어가버렸다. 되돌아보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사건 역시 국민의 관심이 식으며 흐지부지된 사례가 아닐까 싶다'

2017년 3월이라는 현재를 살고 있는 입장에서 가만히 저자가 쓴 글을 읽으면서 '그래 그런일도 있었지'를 되뇌이곤 했습니다. 어쩌면 그 당시 술자리에서 혹은 사무실의 회의에 앞서 '죽일놈 살릴놈...'을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이야기를 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은 과거의 또하나의 해결되지 않는 미증유의 사실로만, 혹은 이렇게 글을 읽으면서 사태의 심각성보다는 재미적인 요소로 받아들이는 나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뭔가 싶네요.

 

'해결이 아닌 동요' 이런 표현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습니다. 사건의 발생은 패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시적으로 일어났다가 꺼지는 그런 현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트렌드가 되어서 절대로 그런 일이 다시는 발생할 수 없는 메가트렌드가 되어야 하는데, 작금의 현상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패드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 싶습니다. 다시금 재고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는 해결이 아닌 타협에 익숙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해결은 법에 혹은 관습에 따라서 만든 행위에 대한 댓가를 치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것이 같은 공간에서 호흡을 하는 모든 이들이 따라야 하는 또다른 관습이되고 그것이 얽메이지 않으면 사회적 동물로서의 역할을 이루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보니 우리들은 해결이라기 보다는 타협에 더욱 익숙한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게됩니다. 타협은 동등한 위치에서 시작해서 서로에 대한 배려로 끝이나는 싸움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테면 '알았어 알았어 이번에는 내가 이 정도는 손해볼께... 그러니 이 정도에서 끝 내자' 아닌듯 싶습니다.

 

책에서 말했던 남양유업 사태를 생각해 봅니다. 그 행위에서 나타난 해결책이 있었는지, 잠깐의 불매운동... 해결책은 그런것이 아니라 다시는 그런 행위가 있어서는 안될 단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다시는 그런 행위가 있으면 안된다가 바로 트렌드로 연결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 2017년 3월을 살고 있는 입장에서 어디 그런가 싶습니다. 잠깐의 불매로 소비자가 남양유업의 영업행태에 단죄를 물어 승리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윤창중, 전두환, 노태우... 이전의 친일부터 현재까지, 상상하기 힘든 돈의 착복에서 성추행, 학력위조 가능한 해결이 있었습니까?   

 

독일식의 역사의 단죄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는 그런일이 발생되지 않는 것 입니다. 엮이고 엮이고 또 엮이다보니 현실에서 대충넘어가자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촛불의 힘으로 만든것에 대한 타협이 아니라 해결을 봐야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행위가 아니라 우리가 두 눈을 부릅뜨고, 트렌드가 될 수 있도록 나치의 단죄를 하듯이 철저하고 물셀틈없는 단죄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유태인의 나치 전범 아이히만에 대한 처리를 우리도 똑같이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히만이라는 인간에 대한 처벌이 아닌 그런 행위를 한 자에 대한 따라 할 엄두를 낼 수 없는 그런 조치를...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문득 첫 단추의 잘못으로 이어진 현재...

단죄의 칼을 든 자가 역시 죄인이라면...  

 

이전에 책에서 봤던 보드카의 광고가 생각이 납니다. 물론 광고는 술의 뛰어남으로 자리가 바뀌어도 계속 마시고 싶은 술을 말하려고 했지만, 지금 말하려는 것은 그 누구도 그 자리에서 그 보드카를 마셔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 보드카의 화려함에 혹은 그 맛에 사람들은 분식회계를 하고, 정치적인 조작을 하고, 누군가를 어둠의 구렁텅이로 내 몰았기 때문입니다.

 

책을 통해 이런 저런 생각들의 전이가 있었던듯 합니다. 만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간다면 이런 책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는 나쁜 부자는 없다. 우리가 그들은 용서하지 않는다'로 책의 제목이 바뀌는 세상을 생각해봅니다. 이러저러한 많은 일들이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입니다. 타협이 아닌 해결이 트렌드가 되는 나라이기를 한번더 생각해 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인상관리행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