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네이트 Apr 12. 2017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읽고 한마디...

28번째로 읽게 되는 책 입니다.

 

'내가 삶을 행운의 기회로 여기는 까닭은 매순가 살아 있는 존재로서 아침마다 햇살을, 저녁마다 어두움을 맞이하는 행복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며, 세상의 만물이 탄생할 때의 그 빛을 여전히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미소나 불만스러운 표정의 시작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의 표지에 나온 글입니다.

이 글을 이렇게 서평을 씀에 앞서 다시금 읽어봤습니다. '내가 삶을 행운의 기회로 여기는 까닭은...'

피에르 쌍소가 말하는 '삶이 행운의 기회'가 되는 이유를 '아침 햇살과 저녁의 어두움, 탄생의 빛과 사랑하는 이의 미소'라고 말하는 이유가 뭘까?를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쌍소의 말을 곰곰히 되뇌인 후 생각해 보니 '행운의 기회'라는 것이 그다지 멀리, 그리고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속에서 '행운의 기회'를 너무도 많은 부분 놓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행운의 기회라는 명분으로 실질적인 행운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현실...

 

가만히 생각을 해봅니다. 온갖 빌딩과 아파트에 가려져 달을 본것이 언제인지, 대보름에 달에게 한해를 기원하곤 했던 기억이 언제쯤 멈추어 버린 것인지, 여행을 다니면서 멋진 장면은 휴대폰에 넣느라고 머리속에 남아있는 아릿다운 그림들은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 어쩌면 이런 삶이 바로 '주객의 전도'라는 표현을 써도 되는 것은 아닌지... 빠름의 논리에 나를 버리다 보니, 사랑하는 이의 바람을 경제적인 가치에만 놓고 나의 버림에 댓가로 위에 강한 마취제를 놓은 것은 아닌지... 내가 나를 위해 사는 것인지, 살기위해 나를 그 자리에 놓아버린 것은 아닌지 싶습니다. 쌍소는 현재의 우리의 삶에 성찰을 위한 도구로써 '느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존재가치의 상실속에 존재가치에 대한 새로운 눈 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책은 크게 3개의 단락으로 구분이 되어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첫번째 단락, 즉 '시간에 쫓기지 않기 위해서'가 가장 마음에 왔고, '리듬의 교체나 과정, 유토피아와 충고'는 조금은 접하기 쉬지 않았던듯 싶습니다. '시간에 쫓기지 않기 위해서'를 보면 특히 참 '다르게, 혹은 힘겹게' 살았구나 싶었습니다.

 

시간에 쫓기지 않기 위해서에 쌍소가 제안한 것들입니다.

'한가로이 거닐기, 듣기, 고급스러운 권태, 꿈꾸기, 기다리기, 내 마음의 시골 고향, 글쓰기, 포도주 한 잔의 지혜, 모데라토 칸타빌레'

오히려 지금까지의 삶 자체가 '시간에 쫓기지 않기 위해서' 한가로이 거닐기를 피했고, 꿈꾸기는 어린마음의 소치였고, 고급스러운 권태는 생각을 할 수도 없었던 일이였는데, 바쁘게 빠르게 혹은 현실의 적응을 위해 내가 했던 행위들이 정말 옳았는지를 말하기 쉽지만은 않습니다. 강원도의 한적한 숲을 거닐면서, 혹은 제주도의 루비빛의 바다를 보면서, 거울을 보듯 나를 본적이 있는지 싶습니다. 잠깐의 사진촬영과 잠깐의 공기 좋음에 대한 만족을 뒤로하고 바로 나를 잊기 위한 행위에 모든 것이 목적화 된 것은 아닌지... 내가 나를 잊기 위한 행위를 하는 것이 현실의 고리를 잠깐이나만 끊기 위한 사고에서 비롯되어짐을 알긴 하지만, 근원적인 해결책 없이 미봉에 머물고 말것을 알면서도...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행운의 기회는 내것이 되어버리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늦지 않았을까요?

 

책은 2000년 6월에 초판이 발행되어 2003년 20쇄를 발행했으니 제법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읽었던 책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현재나 그 당시나 쫓김에 대한 반대급부가 발생한 것은 확인해 보입니다. 더군다나 책을 읽기에 쉽지 않았음에도, 장문에 이야기 주제의 변환이 급하여 집중에서 약간만 멀어져도 글을 몇번씩 다시 읽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많이 읽혀진듯 싶습니다.

 

'닫힌 공간 안에서의 몽상은 인간으로써의 존재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몽상을 제대로 이끌에 가기 위해서는 극도의 주의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년기란 우리 어린 시절에 대한 감동스러운 추억을 되새기기 위한 시간이 아니고, 성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기 위해 존재하는 시간도 아니다. 오히려 "청춘을 완전히 손안에 쥐기 위해서는 나이가 들어가야만 한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우리는 창조적인 상상의 세계의 도움을 입어, 그제사 비로소 우리의 유년기를 갖게 된다. "때로는 방 안의 가구 하나가 몽상에 의해서 끊임없이 수정된 내적 관점을 갖는 수도 있다". '수정'이라는 표현은 이렇듯 몽상에 까다로운 작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꿈꾸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꿈을 꾸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어릴적에 집마다 있던 '다락'이라는 존재가 합리성 혹은 효율적 공간의 배치에 의해서 사라짐으로써 발생되어진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서재에 앉아 있어도 사정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책을 제외한 예전의 나를 생각하고 유추하게 만드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바슐라르가 말하려는 의도를 100%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새로움의 추구라는 득과 예것의 상실에서 내가 나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느림은 민첩성이 결여된 정신이나 둔감한 기질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들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다 중요하며, 어떤 행동이든 단지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서 급하게 해치워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중략... 샤를 줄리에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행동을 제대로 완성해야 한다. '심지어' 평범한 일상적인 일까지도, 아니 '심지어'라는 표현보다는 '그 무엇보다도'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예를 들면 문을 여는 일, 편지를 쓰는 일, 정성스럽게 손을 내뻗는 일, 집중하여 주의를 기울이는 일 등을 마치 세상의 운명과 별들의 운행이 그런 일에 달려 있기라도 한 것처럼 정성스럽게 완수해야 한다." '

경영학을 공부하다보면 사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가 바로 '효율과 효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 업무에도 경중을 따지게 되고 인간의 만남에도 마찬가지의 잣대를 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에 샤를 줄리에의 이야기를 따라 가다보니, 문득 행운의 기회에 만나게 되고, 그렇다 보니 경중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득실의 무게라는 어려움에도 다시금 직면하게 되고... 답은 없겠지만, 판단의 준거값을 조금만 변경을 가하는 것도 세상의 삶에 많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중요한 단초가 될 수 있겠다 새삼스럽게 생각을 해봅니다.

 

'적은 것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기술은 결코 보잘것 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주 능란한 솜씨를 필요로 한다. 적은 것으로 살아가는 기술은 살아가는 방법, 곧 지혜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함부로 비판하지 말 것,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 것, 상황이 제공해 준 것들을 최대한 이용할 것, 사회 계층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을 비통한 질투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 것, 시도해 봤다는 자긍심을 갖기 전에 자신의 취향과 운명에 따라서 착실히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갈 것 등이 그것이다.'

적은 것으로 만족하지 못해 발생하는 것이 결국 '빠름빠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해봅니다. 어쩌면 양의 크기가 아니라 다가오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인데, 그 누가 그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그 지혜를 나의 것으로 만들기는 아직은 너무 먼 거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루는 한 번 깨어나고 나면 그 시작을 다시 부인할 수 있다. 그래서 덧없이 사라지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지성을 갖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루의 시작이 다시는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질 수 없는 원초적 시작이라고 착각을 하게 된다.'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질 수 없는 원초적 시작', 그렇습니다. 그 하루를 부인하고, 내게 다가오는 그 다른 하루가 이어질 수 없는 원초적 시작이라는 삶이 지금까지의 나름 만든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는데' 나는 새로운 하루에서 팥이라는 것을 기대하면서 살았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책 입니다. 놓치고 있던 많은 것들에 대해서, 혹은 바쁨이라는 효율이라는 틀에 갖혀 행운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간단하면서 명백한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금 알게 된듯 합니다. 잡념이 많은 시대에 느림에 대한, 혹은 내가 놓치고 있던 사소한 것에 대한 사고의 전이가 어쩌면 조금은 삶의 윤택함을 늘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앉아 휴식할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한다"

                                                                  - 파스칼 -

작가의 이전글 유쾌한 심리학을 읽고 한마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