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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네이트 Jul 28. 2017

역경의 심리학을 읽고 한마디...

53번째로 읽게되는 책 입니다.


'근대심리학이 '나'와 의식의 중심으로서의 '자아'만을 관심의 대상으로 삼아온 것과는 달리 트랜스퍼스널 심리학은 '나'를 초월한 보다 확대된 의식까지도 포괄한 의식에 관심을 쏟는 것은 자기초월적인 체험을 함으로써 어떤 수난과 역경도 그 넘어에 있는 존재의 '궁극적인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상학에서는 우리의 의식과 무관하게 실재하는 '객관적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며, 우리가 아는 현실은 모두 '의식된 현실'이며, 우리가 체험하는 세계란 모두 '체험된 세계'로서 의식과 무관하게 존해하는 객관적 현실이나 객관적 세계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본다'


'어떤 경우에도 인생에는 의미가 있다. 하지 않으면 안 될 일, 채우지 않으면 안 될 의미가 주어져 있다. 인생의 어딘가에 나를 필요로 하는 '무엇'이 있으며,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다. 때문에 나를 필요로 하는 그 '무엇'과 그 '누군가'는 나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칼 로저스가 카운스링 관계에서 카운슬러가 내담자의 감정이나 경험을 평가적인 태도가 아니라 따뜻하게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무조건의 긍정적 존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즉 상대방의 어떤 감정도 그 사람의 중요한 일부로서 인정해 주고 수용함으로써, 그 사람 자신도 그 감정을 '자기의 것'으로 인정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감정은 자기의 전부가 아니라 '자기의 일부'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반평생 힘들여 쌓아올린 사업의 실패,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직, 불치의 병, 자녀의 사망이나 중증장애 등등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림으로써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울 때일수록 알고 보면 그것은 가장 뜻있는 '배움'의 기회하는 것이다. 이 기회는 우리가 무서운 상실감과 괴로움과의 싸움 속에서도 적극적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는가, 없는가를 시험받는 인생 최대의 시련인 동시에 최고의 배움의 기회라는 것이다'

"만족상태의 돼지이기보다는 불만족상태의 인간일 때 더의미 있을 않을까?"

 

책의 표지에 나온 글을 다시 한번 옮겨봤습니다. 개인적인 답을 찾자면 사실 '모르겠다?'로 정답을 만들게 됩니다. 문득 '에피메니데스 역설'이 떠오릅니다. 불만족한상태가 어쩌면 그들에게는 만족한 상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며, 만족상태라는 것은 만족을 모르는 상태이기도 하기에 돼지와 인간의 만족과 불만은 이미 명제 자체가 오류로 보여지기 듯 하기도 하여 사실 제대로 된 답을 유추하기 힘들어 집니다.

 

트랜스퍼스널 심리학을 생각해 봅니다. 여러가지 정의를 책에서도 그리고 검색을 통해서도 읽고 정리를 하려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에 대한 정의가 바로 책의 제목인것을 알게 되었습니. '삶의 의미를 찾는 역경의 심리학' 그런듯 보여집니다. 다만 여기에서 '역경'을 배제한다면 더 좋은 정의가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역경=불만족한상태'라고 가정하면 위에서도 말했듯이 불만족한상태는 자신의 만족이라 본다면 경로에 있어서의 역경은 어려움이나 불만족이 아니라 일테면 하나의 과정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트랜스퍼스널 심리학을 다시 정리해 보자면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 심리학'으로 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이전에 읽었던 책에서도 말했듯이 의식과 무의식의 비율을 보자면 의식은 수면위에 보여지는 '빙산의 일각' 정도인데, 그 일각으로 사람의 심리상태를 파악한다는 것은 어쩌면 '배꼽이 배를 먹는 형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기도 합니다. 기술의 발전과 과학의 발전이 만들어낸 환원주의의 현실이 아쉽기만 합니다. 증명되지 않은 것은 과학이 아니라는 사고방식, 이는 어쩌면 문제에 대한 해결이라기 보다는 문제를 키워내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오히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오히려 불확실성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을 생기기도 합니다. 인정을 기반으로한 접근이 오히려 발전의 기반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암튼 저자는 트랜스퍼스널 심리학적 치료를 설명하기 위해 몇몇의 이론과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물론 빅터 프랭클을 제외하고는 익숙치 않지만, 잠깐 소개를 하면, '인간중심 심리치료의 창시자 칼 로저스, 실존주의 심리치료의 창시자 빅터 프랭클, 과정지향 심리학의 창시자 아놀드 민델, 통합심리학의 리더격인 켄 윌버, 포커싱 기법의 창시자 유진 젠틀린, 죽음에 대한 과학의 선구적 존재인 엘시자베스 퀴블러 로스입니다. 책에서 이들이 심리치료를 했던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소개되는 내용들을 읽고 있으면 사람인지라 믿을 수 밖에는 없게 됩니다. 또한 현상적으로 이루어진 일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일반화가 가능한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에서 말하는 일반화가 바로 대중화의 벽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어려운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고 싶다는 생각이 깊게 머리속에 각인이 되는 듯 합니다. 삶에 대한 소명을 찾아서 나의 존재의미와 그를 통한 존재가치를 체험한다는 것은 삶을 풍족하게 하는 일이라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어딘가에 나를 필요로 하는 '무엇'이 있으며,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다.' 다시금 생각을 해보면 현재의 나의 위치에 대한 재 정의가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어쩌면 내가 그토록 미워하고 짜증을 내면서 혹은 그 자리의 존재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있을때, 어쩌면 바로 그 자리가 나를 필요로 하는 '무엇'이며, 그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생각을 바꿔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무엇'과 '누군가'가 지금 내 옆의 사람이라면, 그런 짜증 미움 증오를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책을 보면서 그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란것을, 그것이 나의 삶의 소명일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넘어 더 큰 무엇가를 위한 일이 있을 것이며, 그것을 찾기위해 더 많은 일과 생각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글의 마무리는 시성이라 불리우는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으이 서정시로 마무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위험으로부터 지켜주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지 않고 위험에 맞설 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아픔이 진정될 것을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이겨내는 마음을 구하는 인간이 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인생의 싸움터에서 동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힘을 찾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공포에 떨면서 도와주기만을 갈망하지 않고,

오직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인내를 소망하는 인간이 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나의 성공 안에서만 그대의 자비를 느끼는 비겁자가 아니라,

내가 실패했을 때, 그대의 손에 붙잡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인간이 되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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