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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네이트 Oct 31. 2017

'픽사이야기'를 읽고 한마디...

71번째로 읽게 되는 책 입니다.   


'예술은 기술을 변모시키고,

기술은 예술에 영감을 준다'

(Technology inspires art, and art challenges the technology)  래스터


시대를 뒤흔든 창조산업의 산실, 픽사의 끝없는 도전과 성공

예술은 기술을 변모시키고, 기술은 예술에 영감을 준다. 그러게요 완전 수긍이 가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부분은 결과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그 근저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다름아닌 열정이라는 부분입니다. 변화와 영감의 근저에 이루어 내겠다는 열정이 없다면, 어쩌면 그 어떤 변화도 영감도 만들어 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열정이야 말로 픽사를 현재의 픽사로 만든 구심점이며 원동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픽사이야기의 주인공은 잡스도 아니고 디즈니도 아닌 바로 에드 캣멀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펙사라는 회사가 단순간의 아이디어라는 씨앗에 잡스와 디즈니라는 물을 만나 단순간에 만개를 한 회사라고만 알고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에 큰 관심도 없어거니와 경영적인 관계성도 별로 인식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저냥 운이 좋아 성공한 애니메이션을 잘 만드는 회사 정도, 그리고 그것이 잡스라는 귀인을 만나 성공했나보다의 정도로...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캣멀을 기반으로 한 많은 이들의 땀이 살려고 하는 노력이, 만들어 내고자하는 기술에 대한 열정이 그리고 결과 꽃을 피우는 모습에 가히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하는 자와 하지 않는 자'


  종종 지인과 아이에게 하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인생(짧은 시간에 인생이라는 말이 좀 과하긴 합니다)을 살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결국은 두 부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원하는 것을 수단과 방법, 결국 노력이겠죠,을 가리지 않고 온갖 어려움, 돈이든 시간이든 주변의 눈총이든 지 간에,을 이겨내고 하는 사람과 중도에 포기를 하는 사람, 물론 하는 사람이 성공을 한 사람과 동의어는 분명 아닐 수 있겠지만, 그 두 부류의 삶에 있어서의 차이는 명백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즉, 픽사이야기에서의 포인트는 픽사의 IPO에 의한 성공, 혹은 애니메이션의 대중화를 이끌어 낸 성공의 아니라, 그것을 여러가지의 관난을 뚫고서 이루어 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난관을 헤쳐나감에 있어 결국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 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와중에 누군가는 많은 돈을 잃기도 벌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대상없는 공간을 둘러봅니다. '나는' 하고 말입니다. 사실 세상에는 두 부류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실제로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후자에 있다는 사실, 어쩌면 그것이 아직까지 챙피함을 모르고 자위하면서 살게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런 성공, 팩트에 대한 글을 보게 되니 살짝, 생각을 되짚게 됩니다. 그래도 살짝 자부심이 생기는 것은 최소 '80분에 만보걷기'를 150일 동안 하루도 빠지기 않고 하고 있다는 사실, 문제는 일자만 늘어나고 최초의 동기가 사라졌다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여기서 문득 열정의 지속에는 강한 동기부여가 있어야 한다는 것과 그것을 함께 동료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깨닫게 됩니다. 동기부여되지 않은 열정은 지속성이 덜할수 밖에 없으며, 열정이 식었을때 열정에 불이 꺼지기 않도록 하는 동료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열정, 동료 그리고 함께할 결과에 대한 동기부여...'

 

 그리고 한가지를 더 하자면 집요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책으로 쓰여진 미사여구가 있겠지만 간과하고 보자면, 예술에 대한 니즈에 부합하는 기술의 집요함이 결국 픽사를 만든 것이라는 겁니다. '그걸 누가 알겠어?'라는 말은 결국, 그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알겠냐고요. 바로 자신은 알고 있습니다. 결국 타협에 이르고 타협은 최고가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세세한 한가지를 만들기 위한 하이엔드 기술의 결합, 최상의 장면을 만들기 위한 몸으로 체험, 정말 대단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경영지원실에서는 쓸데없는 비용 쓴다고 난리를 칠 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최고을 만들기 위해 그렇게 했고, 그래서 결국 최고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1M 아래의 금맥이라는 글이 생각이 납니다. 저를 포함한 너무나 많은 이들이 두개의 부류에서 하지 않는 자가되는 것은 아닌지, 어쩌면 한달만 혹은 일년만 더 노력을 하면 하는 자로의 분류 편성이 될 수도 있는데, 지금까지의 시간, 돈, 노력을 눈앞의 산적된 절대로 풀리지 않을 것이라 스스로 만들어 놓은 함정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머리 속에 많은 잔상들이 지나고 있습니다. 선택의 시간이라는 이전에 이휘재가 했던 프로그램이 생각이 납니다. 선택은 잠정적인 최선의 방법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잠깐의 고민으로 그간의 노고는 잊고 단기간의 희망의 빛에 종종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디지니에서는 감독은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이곳에서는 역사를 쓸 수 있자나'


문득 레스터의 말이 눈앞을 스치게 됩니다.


 세상 사람 힘들지 않은 사람 있겠습니까? 하지만 산이 힘들다고 보기만 그 산은 절대 넘을 수 없겠지요. 스스로 다시금 다짐을 해보지만 이 짐을, 사회라는 시선이라는 이 짐을 지고 그 산을 넘을 수 있을지는 어쩔지 모르겠습니다. 다시금 한번 되뇌여 봅니다. 동기부여, 열정, 동료 그리고 업에 대한 집요함


 책에서의 행간을 읽다보면 지루함이 덜하게 되는 책이며, 읽다보면 픽사라는 회사를 통해 나아가는 방향 혹은 현재의 나를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하는 책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한권이 책이 어쩌면 어떤 한 사람의 삶의 방향을 바꾸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게하는 책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 결국 사람이 해낸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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