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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네이트 Nov 01. 2017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고 한마디

                                                             

72번째로 읽게 되는 책 입니다.


'120억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는데 왜 하루에 10만명이,

5초에 한 명이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가?'


'불합리하고 살인적인 세계질서는 어떠한 사정에서 등장하는 것일까?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학교에서도 언론에서도 알려주지 않는 기아의 진실'


'그들은 모든 꽃들을 꺽어버릴 수는 있지만 

결코 봄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가 학교에서 읽으라고 추천했던 책이라고 해서, 아이가 학교에서 무슨 책을 읽으라고 하는가 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책 중에는 '이기적인 유전자, 설국, 그리고 이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였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학교에서 대학이라는 커트라인에만 단지 힘쓰고 있지는 않구나 하는 생각에 다행이다 싶기도 했고, 반면에 숙연해 짐, 일테면 죄책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아이가 책을 다 읽은 후에 관련된 내용에 관한 질문을 하였을때 도무지 무엇을 말해야 하고, 어떤 대책이 일을 것이다를 말해야 할지 난감해 지기만 합니다. 항상 아이에게 말했던 원인을 알면 그에 대한 대책, 해결방안은 반드시 있다고 말하곤 했는데, 강자독식의 세계에세, 강자논리의 지배구조에서 아이에게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아이에게 무엇을 말할지도 궁금해집니다. 어쩌면 내가 해야 할 숙제를 방관을 통해서 아이에게 미루는 것은 아닌지 답답함이 치우쳐 올라옵니다. 


'너희들은 기성세대와 같은 세대의 삶을 살지 말아라. 

그리고 그런일이 발생하면 꼭 막아야 한다...'


 또 한번의 지행일치가 이루어 지지 않는 현실입니다. 알고 행하지 않으면 구태여 왜 알려고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너는 아빠같이 비겁한 인간이 되지 말라고 충고아닌 충고, 답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충고에 머무르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지나갑니다. 대학시절 소위 말하는 집회(데모)라는 것을 했을 때도, 당위성에 대한 집회에는 많은 인원이 모이지 않았으나, 등록인상 등의 나의 지갑과 연관된 집회를 했을 때, 몇배에 해당하는 인원이 모였던 생각, 촛불집회라는 거대한 당위성에 모인 인원들이 만들 역사의 변화, 그러나 저 멀리 더 큰 당위성이라는 소말리아의 굶주리는 아이를 위한 촛불집회... 이기주의 끝은 결국 이타주의와 연결성이 있다는 사실이 옳은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개인의 지갑의 소중함에 이끌리는 것은 나의 모습이 소위 필두라고 할 수 있을 처지이니... 어찌면 지행일치를 챙피함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이 책을 읽지 않았음이 더 개인적으로는 옳은 일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 책이 쓰여진 먼 옛일이 지금도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 행위에 대해 약간의 자위를 제외하곤 우리들은 아무것도 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알려야 할 듯합니다. 물론 그것이 스스로의 민만함 혹은 비겁함을 피하게 할 수는 없을 지라도...

 책은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인 장 지글러가 기야의 실태와 그 배후의 원인들을 아이와 대화형식, 즉 질문과 답을 통해서 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민중을 위해서 라기 보다는 특정 집단의 이기적 획득을 위한 전쟁, 그리고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우리에게도 익숙해 보이는 정치, 환경회손에 의한 사막화, 삼림파괴, 도시화, 식민지 정책, 신자유자본주의에 금의한 금융자본주의 폐해, 유럽 미국 등지의 자국의 안녕이라는 명분하에 벌어지는 경제파괴 등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럴수 밖에는 없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 굶주림이라는 현실' 


 리카르도는 비교우위를 통해서 선진국과 개도국 혹은 후진국의 상생의 말했던 것인데, 논리는 리카르도를 내세우며 원하는 것을 얻는 기묘함이라니... 보통 내 가족, 내 친족, 내 민족에 대한 보호는 누구나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역감정이라는 것도 생기고 보호무역이라는 것도 생기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 목숨을 거는 부모의 모습은 부지기 수로 볼 수 있는 것도 현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우리가 항상 말하곤 하는 '지구촌'이라는 개념의 접근이 이루어 진다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가능성은...


 패러다임이 바뀔려면 최소 한 세대, 즉 25년의 세월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패러다임의 변화에 앞서 검증과 실행이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에게는 촛불집회에서의 보여 주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이제 다시 지역적 혹은 국가적 이기주의라는 틀에서 벗어나 지구촌의 일원으로 합당하지 못한 일들, 그리고 변화가 필요한 일들에 대해서 강한 연대와 질타가 필요한 시점은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내가 하지 않고 옆 사람이 한다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혹은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미루는 일은 가당치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지금 여기 우리가 먼저 시작하여 우리의 다음 세대에는 옳지 않음이 설 수 없는 그런 세상이라는 패러다임으로 이어지는 세상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이가 읽는 책을 보니 어쩌면 아이의 내일은 지금까지 겪었던 우리의 과거와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지행일치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책 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도 다시금 덧 붙이고 싶습니다. 코메디 프로그램에서의 '나만 아니면 된다'라는 무서움 말이 일반화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그 말의 전염의 위험에 대해서도 이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한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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