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네이트 Jan 24. 2017

하버드 인문학 서재를 읽고 한마디...

7번째로 읽게 되는 책 입니다.

 

이 책은 저자의 외할머니가 가지고 있는 5피트 책꽂이(하버드 클래식의 별명)로 불리우는 전집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엘리엇이라는 초대 하버드 총장이 문학의 대중화를 위해 만든 전집으로 모든 것을 영어로 번역하여 일반 서민이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든것이 바로 '하버드 클래식'이 된 것입니다. 세종대왕이 어린백성을 위해 한글을 창제하였듯이 엘리어도 일반 문학의 대중화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한글의 창제가 귀족문화에서 서민문화로의 전이를 만들었듯이, 이도 역시 그런 취지입니다. 진정한

'지식인의 사회적인 책임' 혹은 '오블리스 노블리제'를 실행한 멋진 분인듯 합니다.

 

책은 크리스토퍼 베하라는 양반이 이 '하버드 클래식' 전집을 1년이라는 시간내에 읽어야 겠다는 의지로 시작을 합니다. 그러면서 전집에 나오는 작가와 책의 소개를 근간으로 책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문득 아마오카 소하지의 '대망'을 5개월의 시간을 들여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책의 디테일은 이미 산넘고 물건너 가고 약간의 맥만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 책을 읽었을때의 기분, 어쩌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기다림의 미학을 5개월을 보내면서 약간은 맛을 보지 않았나 싶을 정도입니다. 아마도 베하라는 양반도

2만 2천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책을 보면서 모든 책에 대해 입맛이 맞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그가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을때의 기분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듯 합니다.

 

책을 보면서 '미학'이라는 것에 새삼 많은 흥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네이버나 구글을 동원하지는 않았지만, 책에서 얼핏 말하는 '아름답게 말하는 학문' 바로 그것이 미학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 보면 이 베하라는 양반이 그에 능통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책을 읽고 책에 대해 맥을 집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미학이라는 단어의 효용성이 소개되는 책의 전부에서는 보여지지는 않았지만... 그도 인간이기에 모든 것을 다 알고 이해 했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았기에... 하지만 약간의 맥을 통해서 기존에 읽었지만 모르고 있던 내용이, 혹은 간과했던 저자의 맥이 무엇인지에 대한 소소한 가르침을 알 수 있기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특히 소로우의 부분과 신곡의 연결성에 있어서 놓치고 있던 가르다란 선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칸의 이야기는 아직까지는 개인적으로는 먼 산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이 양반의 대단한 점은 바로 하버드 클래식에 나오는 이들에 대한 촌촌살인경의 평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이는 아마도 대단히 큰 지식과 자부심이 없고는 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또한 기존에 놓지고 있던 유명세를 타는 이야기의 모르는 앞부분에 대한 설명도 책을 읽는 내내 작은 기쁨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책에도 많은 포스트 잇을 소요했습니다. 책에서 눈을 잡았던 부분의 소개에 앞서 먼저 역자의 후기를 잠깐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마디를 쓰면서 역자 후기를 소개하는 것은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충분히 그럴가치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클래식은 고전이란 뜻이다. 영어의 클래식이란 말의 어원은 라틴어 클라시스, 즉 함대한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클라시스란 적어도 배가 대여섯 척에서 수십 척에 이르는 큰 규모의 선단을 의미한다. (중략) 이 말은 로마시대에 이르러 국가에 커다란 어려움이 닥쳤을 때,국가를 위해 배를 함대로 기부할 수 있는 능력과 애국심을 지닌 대부호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중략) 중세 초기에 클라시쿠스란 말이 변화하여 인간이 심리적 위기에 닥쳤을 때, 정신적 힘들 부여해주는 책이나 예술 작품을 일컬어 '클래식'이라 부르게 되었다. (중략) 우리가 살면서 겪는 다종다양한 위기 사항을 극복할 힘을 얻을 수 있는 원천이 바로

클래식이라 하겠다' 이젠 좀 클래식하게 지내야 겠다는 생각을...

 

소크라테스의 독살형을 받은 후에 뱉은 마지막 말입니다.

'자! 떠날 때가 왔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길을 갈 것이다. 나는 죽고 여러분은 산다. 어떤 것이 나을지는 오직 신만이 알고 있다' 직접성을 추구하지 않는 간접성을 추구하는 부정철학이라고 합니다. 이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죽지만 나는 옳다'라는 자긍심,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도 있지만...

 

에머슨의 이야기도 많은 고민을 자아냅니다.

'책은 잘 사용하면 최상의 물건이 되나 오용하면 그보다 나쁜 것도 없다'  책에서는 에머슨의 말에서 이런식의 추측을 이끌어 냅니다. '당신 내부와 바로 주위에 이미 있는 것 말고는 이 책들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라고, 대단히 큰 역설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부와 외부를 알기 위해 책을 읽지만, 책은 이미 내부와 주위에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성인에서-> 청소년 -> 아기'에서 왠지 '점'이 되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식의 책읽기의 맛에 대한 멋진 표현도 있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늦은 밤 읽어야 할 때도 있다. 그동안 교과서나 숙제 정도로 다가왔던 책을 이런 기회로 읽게 되면 인생이 스스로 낸 시험을 준비하는 야간 자율학습 같다는 기분이 들것이다' 개인적으로 참 공감을 많이 했던 글귀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진정으로 책을 읽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낸 시험의 준비' 게다가 평가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픞루타르코스의 방법론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놀라운 인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플라타르코스의 방법론에는 역사를 통해 삶에 필요한 가르침을 배운다는 낡고 뻔한 설교가 아니라, 역사 자체가 삶의 계기에 자리 잡은 바탕이며 동시에 우리 삶의 계기는 이후에 진행될 역사의 바탕이 된다' '아사모사'라는 말이 어울리는 글귀입니다. '불교의 득도' 혹은 '승리자의 자서전'과도 비슷하게 볼 수 있을런지...

 

개인적으로는 돈키호테를 참 힘들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책에서 말하는 내용을 보고 새로운 인사이트가 생기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터무니없는 폭력과 예상치 못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돈키호테의 망상에서 진정성이 느껴지는 것이다. 돈키호테의 고상한 생각화는 줄곧 따로 돌아가는 세상이 오히려 잘못된 게 아닐까'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그에 대한 생각이 진행중이기도 합니다.

 

소로우의 말입니다.

'우리가 지식으로 일컫는 것은 종종 긍정적인 무지이며, 무지는 부정적인 지식이다' 참 어려운 말인듯 합니다. 긍정적인 무지와 무정적인 지식...

 

'나는 최소한 하루 4시간씩, 보통은 그보다 더 오랜 숲과 언덕과 들판을 거닐지 않으면 밝은 기분을 유지 할 수 없다'  어떤 이에기는 독서가 '산책'이고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온 세상을 편안하게 누비는 산책자가 될 수 있다' ...

 

파스칼의 말로 한마디를 마루리 하고자 합니다.

'인간은 갈대에 불과하다.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지만,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어쩌면 이는 인간에 대한 존재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혹은 삶의 방식 역시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합니다. 이래야만 한다는 이는 어쩌면 삶의 당위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책들이 영어로 번역되어 원문, 즉 라틴어의 맛을 모르는 체 읽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먼산이 아닌 앞산의 작은 들풀에도 이제는 신경을 써야 하겠다는 작은 바램이 생겨나게 됩니다.

또한 클래식을 만든 엘리엇과 저자의 원대한 사랑이 더욱 맘 속에 와닿는 책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숨겨진 힘을 읽고 한마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