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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네이트 Jan 27. 2017

유쾌한 철학, 소소한 일상에게 말을 걸다를 읽고 한마디

9번째로 읽게 되는 책 입니다.

 

 책의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던 책이 아니였나 싶습니다. '소소한 일상에게 말을 걸다' 아마도 이 자체에서 철학의 무게감을 확 내려 대중화로의 시도가 엿보이는 책인듯 합니다. 사실 철학이라는 무게감을 가진 책을 보며 오랜시간 집중을 하기는 쉽지가 않았습니다. 책의 저자도 책 중에 헤겔의 글을 소개해며 그 해석의 난이도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전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글을 읽으면서 이해도를 높이다보면, 눈은 글을 읽지만 머리는 이해를 하느라, 눈과 머리가 밸런스를 놓치는 경우가 다반사로 책을 읽었지만 읽고 난 후 머리속에는 철학을 했던 이들의 이름만 기억날 뿐 내용은 머리에 잔상을 가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철학에서 어려움의 기름을 빼고 일상을 더하니 어느 정도는 눈과 머리가 밸런스를 이루어 집중을 할 수 있으며, 철학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데 일조할 수 있었던 책입니다. 그리고 보니 문득 떠오르는 이가 있으니 바로 강신주였습니다. 그의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는 비트켄슈타인을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떨어진 심신산중에서 같이 사는 동네로 데리고 이라고 할 수 있으니...

 

책을 읽으면서 철학이 무엇인가?

왜 소크라테스부터 언급된 철학이 왜 필요한 것인가?   

 

철학이란 과목을 처음 들었던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마도 대학교 1학년때의 교양필수 과목과목 중

한가지가 바로 철학이었습니다. 물론 그당시 대학 1학년에게 공부는 지금 대학생이 하는 방식의 공부와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즉, 수업시간에 많은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그때 교수님의 수업중에 문득 기억 나는 것이 바로 주관적 관념주의, 객관적 관념주의, 그리고 철학사에 관한 이야기를 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물론 그것들은 나와 아주 먼 관계의 이야기로, 수업시간에 나름의 철학적 사고('1'부터 수의 나열을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일반적으로 줄넘기를 할때 최고로 많은 수를 셀수 있는데 그것도 '100'을 넘으면 '101'이 아닌 다시 '1'로의 회귀가 이루어 졌던)를 기반으로 숫자를 직접 써보았던 기억이(암튼 수는 '6,666'까지 썼음)... 수업은 끝이나고 철학은 깊은 산중에서 나의 일이 아닌채로... 만일 그 당시에 철학이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를 알았다면, 지금의 삶의 모습이(약간 혹은 대단히 큰) 변화가 있었을지...

 

개인적으로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았지만, 철학의 필요성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의사결정의 근거 혹은 타당성' 이라 칭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의 삶이란 것이 바로 '무엇을 할까의 결정과 그 결정의 일상'을 사는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의사결정'은 반드시 '리뷰'라는 '결과의 평가'를 만들곤 하는데, '무엇을 할까?'는 의사결정(개인적인 지식 혹은 개인의 철학적 사고 기반)을 말하고, '결정의 일상'은 '리뷰 혹은 결과의 평가(의사결정의 옳고 그름의 판단속에 이루어 지는 수정과 보안)'를 말하는 것입니다. 철학이란 것을 통해 사람들은 우상향의 지속발전 기제를 원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속에는 의사결정과 그에 대한 수정보안이라는 주관적의지가 반드시 필요하며, 그것은 보편의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건데, 개인적으로는 역사상의 최대의 철학자는 플라톤, 소크라테스, 칸트, 데카르트, 마트크스 등이 아니고 바로 헤겔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변증법'이라는 역사 발전 혹은 개인 발전의 우상향의 틀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정-반-합'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정적이지도 후퇴(잘못된 선택에 의한 일시적 후퇴가 존재할 수 있지만, 이는 바로 안티테제를 만들어 내기에 후퇴는 일시적인 발생에 머문다고 판단)하지도 않은 이상적인 구조라 생각하기에 헤겔의 존재가치는 대단한 것이 아닐까 다시금 개인적으로 생각을 해봅니다.

 

'때로는 감각 경험도틀릴 수 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간단한 문장입니다. 그런데 정말 이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항상 주변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였던듯 합니다. 내가 경험한 것이란 확실한 혹은 불변하는 사실 속에서... 참 그리고 보니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항상 텔레비젼이나 영화를 보면서 그 무수한 죽임과 전쟁이 실재의 그것이 아닌데, 어쩌면 그것을 이런 책을 통해서 이해해야 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영화를 생각하니 너무나 위의 명제가 쉽게 다가오고, 그로 인해서 비롯된 문제 해결의 접근이 어떻게 이루어 져야 하는지도 다시금 생각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감각기관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들어오는 경험이 참된 인식의 출발이다. 그러나 경험은 참된 인식의 출발일 뿐 참된 인식 자체는 아니다. 경험이 이성의 힘으로 정리되어야 참된 인식이 될 수 있다.'

 

위에 변증법의 대단함을 언급한지 5분도 되지 않아 다른 생각이 떠오르는 이유는 뭔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변증법이는 것이 어찌보면 '행위의 합리화를 위한

가림막'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즉 나의 '정'에 대한 '반과 합'은 나의 판단의 기준에서 이고 이는 확고부동의 답이 아닐수 있다. 왜냐하면 조만간 다른 '반 이나 합'이 나올테니, '판단에 있어서 최선이다' 가만히 보니 히틀러의 행위도 책에서 말하는 부시의 행위도 그렇게 보면, 나름의 논리가...???   통과...   

 

'토론과 합의와 객관적 기준'의 부분에도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객관적 기준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누가 혹은 어떻게 할 지는? 이는 대부분 토론과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이도 역시 순환논리에 빠지게 되는듯 합니다. 쉬어 보이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과학에 대한 불편한 진실입니다.

'신념이나 믿음을 비과학적이라고 비판하며 비웃고 있는 과학도 알고 보면 신념에서 출발한다. 신념을 통해 관찰과 실험의 대상이 결정되고, 더 나아가 그 결과가 해석되기 때문이다. 또한 패러다임은 과학체계라기보다는 하나의 믿음 체계이다' 어떻게 동감을 하실 수 있으신지?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 모두에게 있어서 문제라고 하는 것이 바로 보편성 혹은 일반화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약간부분은 틀렬 수 있다'는 자연과학이 '어는 부분에서는 옳아'를 말하는 사회과학을 비과학적이란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고 악한 존재라고 칭하는 홉스의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너무 이기적이어서 본성에 제한을 가히지 않으면 인간은 멸종하게 된다는 것은?

'베로니카, 죽음을 결정하다'의 한마디에서도 법을 언급했는데, 홉스의 의견이 옳다는 근거가 바로 성문화되어있건, 그렇지 않건간에 바로 '법'이라는 것이 그에 대한 대안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부족함이 아니라 풍족함이 근간을 이룬다면 차지를 위한 투쟁이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능력 만큼 일하고 필요 만큼 가져갈 수 있다면, 겨울과 여름이 없었다면 두꺼움 옷을 미리 사둘필요가 없고, 에어콘이 필요없을 텐데, 그 준비라는 것이 인간 역사를 발전시키는 동시에 멸종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번 해봅니다.

 

'인간이 인간으로 되어가는 과정은 바로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획득해 나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속성은 개별 인간들에게 별도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집단 전체가 사회 속에서 노동하는 과정에서 얻는 것이다. 인간의 노동은 개별 인간이 아닌 사회 속의 분업과 협업을 통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인간의 사회적 본성이라 부른다' 이 글에 '배려'가 더해진다면 어떨지...

 

'도덕과 윤리의 관계는 보편과 개별의 관계이다. 윤리는 도덕으로 규정되며, 도덕은 윤리를 통해 실현된다'

책의 사례를 보면 좀더 이해가 쉽게 다가올 것입니다. 암튼 중요한 것은 도덕과 윤리의 '보편성과 개별성' 지금까지는 도덕과 윤리는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살아서...

 

유물론적 관점에서의 인간의 역사가 될 수 있으려는 4가지 조건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를 보면,

'노동을 하는 실질적 인간의 존재, 물전 조건을 생산하기, 인간 자체를 확대 재생산하기, 사회 속에서 관계 맺기, 이런 모든 전제조건이 충족된 다음에야 역사에서 언어와 종교, 의식 같은 정신적인 것이 등장한다.

역사에서 이성의 구현이나 자유의 구체화 같은 정신적인 가치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네 가지 전체조건이 충족되어야만 소중한 정신적인 가치가 역사에서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달걀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가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이들에게서 그의 중요성을 탐닉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일단 사회적인 모습에 앞서 개인적 모습이 우선인데... 위의 홉스를 생각하니 웃음이, 부족으로 인해 싸움이 생기고, 풍족함으로 인해 달걀과 닭의 우선순위 언쟁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하고...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왜곡에서 더 심각하게 나타나는 현상은 구체적인 인간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보편적 인간이라는 환상으로 시대와 상황에 따라 살아가는 구체적인 인간을 은폐시키며, 소수를 제외한

다수의 삶은 존재 자체가 어둠 속에 가려진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보편적 인간이라는 허울속에 아주 구체적인 계급으로 존재하는 구체적인 인간이 있다는 것을...

'수요와 공급의 가격은 노동력으로 결정된다' 어떤가요?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 가격과 노동력에 의해 만들어진 가격, 그 둘중에 인정할 수 있는 현실적인 가격은?

 

다음의 부분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입니다.

'헤겔 철학에서 정신은 스스로 존해하는 실체인 동시에 자기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 운동하는 주체로 인식된다. 즉 정신은 역사의 실페이며, 역사는 절대정신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 역사적 과정 속에 개인이 존재한다. 우리는 자신을 시대와는 무관한 독립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스타일이나 취미도 자신의 개성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도 자신의 주체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헤겔을 이런 주체적인 개성을 부정한다(바로 이부분이 정말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그는 모든 시대에는 시대를 대표하는 시대정신이 있으며, 각각의 개인이 지닌 개성이나 사고방식은 이 시대정신의 표현일 뿐이다' 좀더 생각을 해봐야 할 듯 하긴 하지만,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사고와 주체적인 개성을 부정한다' 변증법을 생각하니 그가 말하려는 내용이 살짝 이해도 될듯 합니다. 이성적 사고라는 것이 '반과 합'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생각하니 헤겔의 말하려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그 내용에는 동감을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체로 목적인 삶이 있어야 하는데, 도구화 혹은 수단화가 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르소의 글은 어떤가요? 공감을 하시는지...?

'영국의 인민들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다. 그들이 자유로운 것은 오직 의회의 의원을 선출하는 기간뿐이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 그들은 다시 노예가 되어 버리고, 마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너무나 일상적인 일로 다가오는 얘기라 당황스럽지도 않네요. 루소가 살았던 시대를 생각하니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들의 행동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나 봅니다.

 

'유괘한 철학, 소소한 일상에게 말을 걸다' 한번들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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