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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진 Oct 18. 2023

살아야 된다는 의지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해 5

네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나는 매일 술을 마셨다. 마땅한 상대와 장소가 없는 경우에는 모텔 따위에 틀어박혀 알코올을 들이부었다. 더 이상 취기 없는 잠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일을 하고 술을 마시다 잠에 드는 것이 내 삶의 전부였다. 그 당시 나에게 필요했던 건 병원과 약물이었지만, 나는 술에만 의존했다.


어느 날 거울을 유심히 보았다.

다크서클과 피부는 늘어졌으며, 입술은 항상 물어뜯느라 피딱지가 없는 곳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생기 없는 흐릿한 눈빛이 유독 음습하게 느껴졌다. 애써 미소 짓고 이리저리 표정을 바꿔 보아도 20대 초반의 생기 있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억울했다.

누구든 원망하고 싶은 마음에 저주할 대상을 찾기 시작했다. 핸드폰 메모장을 켰다. 라이토가 데스노트에 범죄자를 적어가듯, 나의 고통을 전가하기 위해 엄지 손가락을 바삐 움직였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핸드폰을 두드린 지 몇 분이나 지났을까? 내가 쓴 메모장을 훑어보았다.

엉망이다. 글의 절반은 오타였고, 글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가독성은 엉망이었다. 하지만 그 울분의 대상이 누구인지는 찾아냈다.

그 원망의 대상은 온통 나였다.

어린 시절 좋아하던 여자에게 말 한마디 걸지 못한 나,

나도 네가 좋다는 단 한마디의 말도 입밖에 내지 못한 나,

너에게 안부연락 한번 하지 않은 나, 거기엔 오직 자존감 낮은 나만이 있었다.

나는 이제 사는 게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한구석 안 좋은 생각이 싹트기 시작할 때, 나는 할머니의 병간호를 하게 됐다.

할머니는 평생 술과 담배도 하지 않으셨고, 평소 지병 하나 없이 건강하셨다. 하지만 집에서 잘못 넘어지시는 바람에 골반과 팔에 골절상을 입으셨다. 할머니는 나이가 적으신 편이 아니었기에 의사는 우선 골반수술을 한 뒤, 팔수술을 할지 정하자고 했다.

다행히 골반수술은 아무 문제 없이 끝이 났다. 평소에 잘 모이지 않던 친척들도 그날만큼은 할머니의 병실에 빼곡히 들어섰다. 나는 그것이 마치, 할머니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 모인 것 같다는 스산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몇 주 정도 지나자 의사는 할머니의 팔을 수술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할머니가 아직 기운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했지만, 팔은 간단한 수술이라 괜찮다는 확신에 찬 대답에 의사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수술을 받기 전날, 내 손을 꼭 잡더니 무섭다고, 자기는 수술을 받기 싫다고 했다. 나는 그런 할머니에게 괜찮다며 안심시켜 드렸지만, 무언가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다음날 일을 하고 있던 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와 같은 ‘엄마’라는 두 글자가 떠오른 평범한 전화였지만, 내 심장은 철렁 내려앉았다.

어째선지, 나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했다. 곧 수화기 너머의 엄마는 다급한 목소리로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그렇게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가던 중, 장소는 병원이 아닌 장례식장으로 바뀌었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던 날, 장례식장에는 경찰들이 몇 번이나 들락날락거렸다.

우리 가족은 억울했다. 그리고 고통스러웠다.

수술을 받기 싫다는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런 할머니를 안심시키는 우리 가족의 모습이 떠올랐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의사에게 말을 묻던 아빠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우리 가족과 할머니를 안심시키던 의사의 얼굴도 떠올랐다. 경찰차는 그래서 온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할머니에 대한 가슴 찢기도록 미안한 마음과 고통을 병원에 전가해 보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2017년은 나에게 지옥 같은 한 해였다.

내 손을 꼭 잡고 무섭다고 했던 할머니의 말은 살고 싶다는 외침이었다. 그리고 나도 이제는 살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쳤다. 내 손을 잡던 할머니의 모습이, 자책하는 아빠의 모습이, 우는 누나의 모습이, 성진이를 할머니가 많이 좋아했다는 할아버지의 말이, 나를 살고 싶게, 아니, ‘살아야만 한다’는 의지를 가슴 깊숙이 새겨줬다.

그래, 그래도 살아야 된다. 인간은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

우리가 태어난 것도, 수많은 사람들 중에 너를 만난 것도, 너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것도 전부, 내가 거스를 수 없는 우연이자 운명이었다.

그 이후로 생긴 나의 소망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나의 사망진단서의 사유칸에 ‘스스로의 선택’ 보다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라는 사유가 적히는 것이다.

그렇게 삶의 대한 의지를 다졌지만, 더 이상의 아픔을 감당할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고의로 멀리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일찍 죽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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