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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진 Oct 11. 2023

남겨지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해 4

이별이 꼭, 한쪽의 일방적인 헤어짐은 아닐 수도 있지만, 남겨진다라는 것은 그 헤어짐이 유독 고달프게 느껴지는 단어 같다. 남겨짐의 이유는 권태기가 될 수도, 바람이 될 수도 있고, 나처럼 누군가의 죽음이 될 수도 있다.


20살 때 나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던 너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상황’이 생겼다. 하지만 너를 실망시키거나 잃어버릴 수도 있는 ‘나쁜 상황’이 생겼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은 좋은 상황과 나쁜 상황이 동시에 닥친다면, 대부분은 나쁜 상황을 먼저 회피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것이 생존에 유리한 인간의 본능이다. 난 사랑을 하면서 남겨지는 쪽이, 사랑을 놓치는 쪽보다 훨씬 비극적인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은 고작, 너와 친구로 남는 것이었다. 20살 모쏠이던 나는 그렇게 하면 너를 놓치지도, 남겨지지도 않을 것이라는 턱없는 생각을 했다. 결국 나는, ‘사랑을 놓친 사람’, ‘세상에 혼자 남겨진 사람’이라는 두 개의 타이틀을 모두 획득했다.


그 뒤로 내 머릿속은 사랑에 대한 트라우마와 안 좋은 주관들로 가득해졌다. 상대방이 누구든 고의로 사랑을 멀리 했고, 3년 동안 깊은 어둠 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 뒤로 운이 좋게도 인생의 은인을 만나게 됐다. 그러고 나서는 우선,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조차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남에게 사랑을 줄 수 있겠냐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용기와 자신감을 먼저 가질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용기와 자신감만으로 모든 사랑을 이룰 순 없다. 하지만 이것들이 없다면 ‘어떤 사랑도 이룰 수 없다'. 이것은 어릴 적부터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처음에는 그 자신감이 외모나, 옷 같은 외면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겉모습을 먼저 가꾸려 했다. 하지만 바뀌는 건 겉모습일 뿐 내면은 바뀌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준수해진 외면에서 오는 자신감은 생겼지만, 내면이 성장한 것은 아니었다. 외적으로 자신감이 생길수록 오히려 거만 해졌고, 가난한 내면을 돌아볼 계기는 현저히 적어졌다. 그렇게 한동안은 나의 외모만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만났었다. 하지만 그들을 만날수록, 온 힘을 다해 나를 사랑해 주던 이들이 쉴 새 없이 떠올라 괴로웠다.


흔히 금사빠라는 말이 있다. 그들은 정말 상대방의 겉모습만 보고 사랑에 빠진 것일까? 나는 이 금사빠라는 사람들의 심리는 뭘까 생각해 봤고, 그것은 '사랑에 중독된 것'이라는 나만의 결론을 내렸다. 중독의 증상은 심리적 의존과 남용이다. 그들은 항상 사랑에 목말라 있다. 사랑을 얻기 위하여 여기저기 사랑한다는 말을 남용한다. 나는 그것이 중독 증상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중엔 오랫동안 돈독한 사랑을 나누는 이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내 주변의 금사빠들이 진심으로 사랑을 하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들이 그나마 진심으로 상대방을 사랑하게 되는 순간은 헤어지고 나서였고, 그마저도 금단현상일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서야, 소중한 인연을 평생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가짐을 가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내가 이런 올바른 주관을 갖고 있다고 해서 사랑하는 이에게 무조건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나의 주관을 확신할 때, 상대방을 자신의 주관에 맞춰 '평가'하려고 한다. 그렇게 평가한 기준에 맞춰 상대방의 점수를 매기기도 하고, 매긴 점수를 토대로 가르치거나 아예 무시해 버리기도 한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교육이고, 교육이 되는 순간 동등한 관계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런 반쪽짜리 마음가짐은 없는 것만 못하다. 상대방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것이 중대한 잘못이 아니라면, 나쁜 마음을 먹고 저지른 일이 아니라면, 나는 '동등한 위치'에서 '소통'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맞지 않는 퍼즐을 함께 맞춰가다 보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때론, 확신에든 퍼즐 조각을 들고 '찾았다!'라는 기쁨에 끼워 보지만, 맞지 않는 조각에 실망하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린, ‘퍼즐이 잘못 됐나?’ 싶은 마음에 억지로 끼워보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상대방의 마음을 자신의 고집과 잣대를 준거하여 끼워 맞추지 않는 마음가짐이다.


퍼즐은 다른 부분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맞지 않던 부분도 빨리 맞아간다. 당장은 실망스러워도 상대방의 마음을 존중하고,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 나가 보자. 그러다 보면 내가 알지 못했던 우리의 문제점들을 좀 더 현명하게 헤쳐나갈 수 있는 거름들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평생 동안, ‘사랑해서 노력한다’는 마음가짐을 먼저 가져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해야 좋아하겠지?", "이렇게 하면 실망할 거야"라는 식으로 매번 사랑을 공부하고 의식하게 될 때가 많다. 그럼 나는 어느새 사랑을, ‘사랑해서’가 아닌, 시험문제처럼 ‘풀어야 되는 문제’로 느낄 것이다.


사람은 하루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과 여러 일들을 겪으며 살아간다. 내가 아무리 상대방을 사랑하고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을 것만 같아도, 지치고 힘든 날에는 ‘의식’ 하지 못한 상처를 주는 순간이 분명 다가온다.

그렇기에 우리가 꾸밈없는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부단히 일궈낸 마음가짐의 축적물이 필요하다.


이토록 내가 사랑을 위해 노력해 가며 아무리 잘 해내어도, 상대방은 나를 존중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 심지어는 내 곁을 영영 떠날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랑은 어렵다. 하지만 내가 아무런 노력도 일구지 않는다면, 언젠가 다시 찾아올 인생에 다신 없을 인연을 또다시 잃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후회할 땐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살아가도록 노력할 것이다.





네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네가 없는 동안 세상에는 많은 것들이 생겼다. 그때 너는 혈액형만을 얘기했지만, 이젠 MBTI라는 것도 생겼다. 너는 누구보다 혈액형에 진심이었다. 심지어 잘 맞췄다. 나에게도 "넌 무조건 A야 대문자 A!"라며 확신을 했다. 내가 MBTI를 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너의 MBTI를 생각해 봤다. '분명 E는 확실하고... ENTJ 려나?' 만약 네가 있었다면, 그 누구보다 사람들의 MBTI를 낱낱이 꿰뚫어 봤을 거다. 이런 시시한 얘기들을 언제 가는 너와 다시 나눠보고 싶다. 의미 없이 정말 시시콜콜한 대화만이라도.




나는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 되어 버린 그날, “너는 그저 좋은 친구야”라고 대답했던 순간이 아직도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늘졌던 네 표정이, 물을 머금고 일렁이던 눈빛이, 애써 웃던 미소가 아직은 날 놓아줄 생각이 없나 보다. 나는 가끔, ‘내가 뭘 입었든 관심도 없었더라면, 공중전화박스에서 날 찾지 않았더라면’하면서, 너를 원망해 보기도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책감에 무녀 져 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해 준, 사랑을 느끼게 해 줬던 중심에는, 온 힘을 다해 사랑을 표현해 줬던 네가 있었다.


너는 자신의 마음에 솔직할 수 있는, 사랑에 기꺼이 뛰어들 수 있는, 누구보다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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