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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진 Oct 20. 2023

과분한 사람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해 7


군대에서도 2019년 후반기부터는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 당시 커플이었던 군인들은 여자친구와 전화하느라 바빴지만, 나는 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전화하는 거 싫어해, 이건 미리 말해줘야 될 것 같아서

이제 남은 것은 네가


-근데 나는 전화가 좋은데?

-하루에 한 번은 괜찮지 않아?


라는 식의 대답을 하면,


 -나는 전화를 억지로 할 자신은 없고, 나중에 내가 변했다고 생각할까 봐 말하는 거야


라며 못을 박는 것이었다.

그렇게 독소조항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는 나에게 음성메시지 한통이 왔다.

그 안에서는 너의 해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럼 음성메시지는 괜찮겠네?!”

 

그날 이후, 너는 하루도 빠짐없이 자기 전에, 집에 갈 때, 밥 먹을 때 등등, 지치지도 않고 음성메시지를 남겨놨다.

‘얘는 귀찮지도 않나...’라며, 며칠 이러다 말 거라고 치부했지만, 그때 나는 몰랐다.

내가 그냥 전화로 하자며 항복을 선언해도, 너는 2년 동안 매일 음성메시지를 보낼 것이라는 걸.




어느새 나의 전역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그땐 한참 코로나가 성행하던 시기였기에, 국방부에서는 모든 부대에 공문을 보냈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대충 이랬다.


-너네 어디 나갈 생각도 하지 마-


우리는 꼼짝없이 부대에 갇혀버린 신세가 됐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오히려 좋아’

전역이 얼마 남지 않은 군인들에게는 ‘조기전역’이라는 혜택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휴가를 강제로 쓰지 못한 덕분에(?) 남아있는 휴가일 수만큼 일찍 전역을 하게 됐다. 거기다가 나는 유일하게 부대에서 휴가까지 나왔다. 내 휴가를 쓰지 않고도 말이다.

  



근무를 스던 중, 간부님이 나를 찾아왔다. 간부님은 어색한 표정을 짓더니 나에게 중대장실로 가보라고 했다. 이유를 묻진 않았다. 간부님의 얼굴에 '이유는 묻지 마'라고 써져 있었다. 확실한 건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막사를 가는 길에 이유를 생각해 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건 없었다. 물론 아침식사를 결식하기는 했지만, 고작 그 정도 이유로 말년병장을 복귀시키진 않을 것이다. 막사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중대장실로 들어갔다. 내 예상과는 다르게 중대장님은 상당히 친절한 얼굴로 나를 맞아줬다.


"어, 성진아 거기 앞에 잠깐 앉아 있을래?"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 차라리 화를 내주시는 게 낫겠다 싶을 만큼 불길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곧 중대장님은 자신의 휴대폰을 건네며 받아보라고 하셨다. "여.. 통신보안?", 휴대폰 너머의 사람은 우리 아빠였다. 왜냐하면 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요즘 할아버지한테 안부전화 하라고 그렇게 말하더니...'


나는 할아버지가 위독하신 것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아빠를 원망하진 않았다. 어차피 나는 휴가를 못 나갔을 테니까. 이유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장례식장에 가기 위해 고속버스를 탔다. 가는 내내 울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전화를 했던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나를 보고 싶다던 할아버지가.


'시발..'


왜 항상 나에게는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그러게 군대 좀 일찍 가라고 했잖아' 스스로 대답했다. 나의 20대 초반 시절은 한없이 어두운 시절이었다. 14년을 함께한 강아지와, 우리 할머니, 나의 첫사랑도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때는 도무지 군대를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슬픔과 자책 속에 침식되어 갈 때, 너에게 사진과 음성메시지가 왔다. 그 안에선 너의 해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벚꽃 이쁘지? 한 달 뒤에도 피어 있으려나? 전역하면 꼭 같이 보자!", 보통 남자친구라면 이런 상황에선 여자친구의 메시지가 큰 힘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보통 남자친구조차 될 수 없나 보다. 내 손은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직감했다. 이건 진짜 위험하다고.


나와 대조되는 너의 밝은 목소리를 듣자, 내 마음이 일렁이기 시작했고, 두려운 감정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나는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몸부림쳤다. 나에게 필요한 건 몸부림이 아니라 정신병원이었지만, 그 당시엔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상처받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와 두려움이 몰려오자, 마음속에서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본능적인 방어태세를 일으켰다. 그것은 곧 사랑을 배제시키는 결과로 나타났다.

카톡에서 1이 사라진 걸 이상하게 여긴 너는 곧장 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잠시 후 도착한 장례식장에서 아빠의 얼굴을 보니 또 눈물이 났다. 나는 구석에 가서 벌벌 떨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손님을 받길 반복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코로나 때문에 조문객은 거의 오지 않았다. 나는 좀처럼 상태가 나아지지 않자, 너와의 이별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나는 힘들어서 너를 만날 자신이 없다며, 너는 좋은 사람이니까 행복해야 된다는 카톡을 달랑 보내놓고 전원을 꺼버렸다.


할아버지의 발인이 끝난 뒤, 나는 군대에 보고를 하기 위해 핸드폰을 켰다. 곧 밀려있던 카톡메시지가 쏟아졌다. 그리고 메시지 마지막에는 길이가 꽤 긴 카톡이 와있었다. 그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 오빠는 항상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사실 난 엄청 이기적인 사람이야. 나는 오빠가 불안해하고, 힘들어할 때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만약 힘들지 않았다면 군대를 늦게 오지도 않았겠지? 근데, 그럼 우리가 못 만났을 거잖아. 그래서 나는 그 어두운 과거가 고마워. 그래도 오빠가 너무 힘든 건 싫으니까 조금만 힘들었으면 좋겠어. 그 말 좋아하잖아. 거스를 수 없는 운명. 그럼 나도 좀 거스를 수 없으면 안 돼?


나는 항상 두려움 때문에 사랑을 놓치고, 후회를 반복하는 사람이었다.

반면에 너는 항상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자신에게서 먼저 찾았다. 나는 얻을게 많아서 사랑을 했지만, 너는 한 줌의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 힘들고 괴로워서 너를 포기해도, 결코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두려움에 굴복한 채 사랑을 외면해도, 따뜻하게 안아주는 품이 되어 줬다.

너는 내 열등감이 흐르거나, 딱딱하지도 않게 항상 배려 깊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복귀를 하기 전,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에서 너를 만났다. 너는 나를 보자마자 얼마나 걱정했었는 줄 아냐면서, 내가 혹시 잘못 됐을까 봐 기사까지 찾아봤다고 한다. 그런 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더 이상 눈물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네가 많이 울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너는 다행이라는 말을 하다가도, "다른 뜻은 아니고, 오빠가 잘못되거나 그런 건 아니라서.."라고 했다. 그리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벚꽃이 지기 전에, 나와 만나서 다행이라며.




군대에 복귀한 나는 2주 동안 격리를 당했다. 그 시간 동안 하루종일 너와 전화를 했다. 우리의 미래를 기약하며 서로의 사랑을 부대꼈고, 너에 대한 나의 사랑도 점점 깊어져 갔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기를 다짐하며 피우던 담배도 끊었다. 그렇게 1년, 2년, 너의 품은 여전히 아늑하고, 꿀에 절인 듯 달콤했다. 너의 한결같은 순애를 받은 내 열등감은 마침내 자존감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인간은 모두 자기 영속적이지 않다. 누군가의 죽음이나, 사랑 같은 외부의 영향으로도 쉽게 흥망성쇠가 나타난다. 내 자존감은 결국 자만과 고집으로 바뀌었다. 너의 사랑이 분에 넘쳤지만, 그릇을 키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너는 항상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 줄 거라며, 그 따뜻함을 방치했다. 나는 이제 걱정 없이 ‘편한’ 사랑을 할 뿐, ‘표현’하는 사랑은 하지 않았다. 아픔은 오로지 너의 몫이었고, 슬픔 역시 너의 몫이었다. 우리의 사랑은 더 이상 깊어지지 않고 길어져 갔고, 길어지는 만큼 멀어져 갔다. 너의 햇살 가득했던 얼굴엔 그늘이 드리웠다. 해맑게 웃던 모습도 사라졌다.


나는 그 가해자이자 방관자였다. 

 


 

더욱이 흐린 날 들이 지속되던 어느 날, 너는 산책을 하고 싶다며 나에게 잠시 만나자고 했다. 평소에 화장을 거의 하지 않던 너는 옷도 편한 옷을 즐겨 입었다. 하지만 그날 너는 산책을 나온 사람 치고는 꽤 화려한 화장과 옷차림으로 나를 만나러 왔다. 나는 네가 이별하러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우리는 아무 말도 정처도 없이 길을 걸었다. 20분 정도 지났을까? “잠깐 저기 앉자”는 너의 말을 시작으로 우리의 이별은 시작됐다.


못해준 게 많아서 미안하다는 나의 말에, 너는 잘해주고 싶던 사람이라 고마웠다며 미소 지었다.

그러기엔 나는 받기만 했던 사람이었다. "복에 겨워서 미안해"

네가 눈물을 삼키며 대답했다. "분에 넘쳐서 고마웠어"

너에게 넘친 건 외로움이었을 거다. "혼자 둬서 미안해"

결국 너는 눈물을 흘렸다.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웠어"

너는 왜 끝까지 고맙다고만 할까? 나는 울컥한 마음에 괜히 화를 냈다.


"너 왜 계속 고맙다고 해? 나 그런 사람 아니었어"


너의 대답에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이 쏟아졌다.


"오빠랑 같이 있는 거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난 그날 확신했던, 마음속 깊은 곳에 가둬뒀던 말이, 깊숙이 자리 잡아 지워지지 않는다. 이렇게 좋은 사람, 날 좋아해 주던 사람을 놓치면 평생 후회할 거라는 생각이.

너를 이대로 보내면 안 된다고 생각한 찰나, 울음을 그친 네가 보였다. 곧 나는 예전의 네가 생각났다. 벚꽃이 지기 전에 만나서 다행이라던 너의 표정이. 나는 이내 입안에 머금은 말을 삼켜냈다.

나는 차마, 혼자서 불합리한 사랑을 감당해 왔던 너에게, 마지막까지 불합리한 선택을 하게 할 수는 없었다.

너는 지나치게 착한 등장인물이니까.

나는 마음속 아픔을 치유받으며 과분하게 사랑받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던, 한없이 받기만 한 사람으로 우린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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