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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후 세계적인 P2P금융 경영진을 만났던 이유

렌딩클럽, 프로스퍼, 업스타트 경영진이 짚어준 P2P산업의 핵심

2016년 2월은 샌프란시스코 출장으로 시작했다. 출장의 주요 목적은 미국 P2P금융산업 스터디. 렌딩클럽(Lending Club), 프로스퍼(Prosper), 업스타트(Upstart)의 C 레벨 경영진들과 차례로 미팅이 잡혀 있었다. 렌딧 창업 1주년을 한 달 정도 남겨 놓은 시점이었다. 정말 운 좋게도 창업 초기에 세계 최대의 P2P금융 시장인 미국 시장의 현황과 산업계 선배들의 인사이트를 직접 배울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2016년 2월에 방문했던 렌딩클럽 본사에서.  금융회사라기 보다는 전형적인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의 느낌이었다.

 

렌딩클럽은 지난 십 수 년간  세계 P2P금융산업을 이끌어 온 기업이다. 2014년 12월 11일 P2P금융기업 최초로 미국 나스닥(NASDAQ)에 상장했다. 비록 2016년 5월 당시 경영진의 모럴 헤저드로 창업자가 물러나고 기업 가치가 반토막나는 부침을 겪었으나, 여전히 이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임은 부정할 수 없다. 프로스퍼(Prosper)는 2006년 설립된 미국 최초의 P2P금융기업이다. 2005년 영국에서 탄생한 조파(ZOPA)와 더불어 산업 초기부터 기본을 다져온 P2P금융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업스타트(Upstart)는 현재 가장 주목 받고 있는 P2P 기업 중 하나다. 올 11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기업 공개(IPO)를 신청하여 조만간 나스닥(NASDAQ) 상장을 앞두고 있다.  



미국 온라인 렌딩 산업의 대부 론 수버(Ron Suber)


“30초 안에 렌딧이 하는 일을 설명해 보세요. 중간에 끊기지 않아야 해요.”


프로스퍼의 론 수버 회장은 만난 지 2분도 지나지 않아 이런 질문을 던졌다. 오랜만에 하는 영어로 준비없이 하게된 30초 피치가 매끄럽게 될 리 없었다. 투자자 미팅도 아니고 상상도 하지 않았던 전개에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론과의 미팅 후 나는 현재까지도 변하지 않은 ‘렌딧이 하는 일 30초 피치’를 정리하게 되었다.


알고보니 론은 미국 P2P금융의 대부 같은 존재였다. 프로스퍼의 회장일 뿐 아니라 여러 핀테크 스타트업에 투자도 하고 이사회 멤버로 도움을 주고 있었다. 한마디로 미국 P2P금융의 ‘김범수 의장’ 같은 존재랄까? 구글링 해 보면 론의 인터뷰나 강연 자료 등이 수없이 검색된다. 그만큼 이 새로운 금융산업의 저변을 넓히는 일도 활발히 하고 있는 분이었다.


론은 P2P금융산업을 ‘대출, 투자, 그리고 기타 서비스와 규제 등’ 다리가 세 개인 의자에 비유해 설명해 주었다. 다리 세 개의 길이가 같아야 앉을 수 있는 의자처럼, P2P금융도 ‘대출, 투자, 그리고 서비스와 규제’ 등 3가지 산업의 요소가 균형있게 발전해야 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때 론과 나눈 이야기는 이전에도 브런치에 자세히 정리한 적이 있다. 론과의 대화는 마치 대학의 은사님과 나눈 대화와 같았다.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 보다 훨씬 더 본질적인 부분들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출장 후 돌아온 첫 올핸즈 미팅에서 모든 렌딧맨이 나와 같은 순간을 맞이했다. ‘30초 피치’가 내게 준 강렬한 미션 세팅의 순간을 회사 모두와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15명 안팎의 렌딧맨들이 내뱉은 ‘30초 피치’가 모두 조금씩 다른 내용이었다는 점이다. 이후 ‘렌딧이 하는일을 30초로 설명하기’는 신입 렌딧맨 오리엔테이션의 ‘쇼미더렌딧(Show Me the LENDIT)’이라는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렌딧에 입사하는 모든 사람이 한 번은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가 된 것이다.  


여전히 론은 가장 중요한 멘토 중 한 명이다. 궁금한 점이 있을 때 이메일이나 위챗 등으로 꾸준히 대화를 나누고 있다.



렌딩클럽 기업 대출 부문 부사장 존 스포티스우드(John Spottiswood)


인터뷰나 블로그 글 등을 통해 여러번 밝힌 바와 같이, 렌딧을 창업하게 된 데에는 렌딩클럽의 영향이 지대하다. 미국에서 운영하던 2번째 창업 회사의 운영 자금을 대출 받으러 한국에 왔을 때, 7% 대의 중금리대출을 미국의 ‘렌딩클럽'이라는 핀테크 스타트업에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이 P2P금융을 알게된 계기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본인의 ‘정확한 신용등급'에 맞춘 ‘적정금리'의 중금리대출을 필요로 한다는 니즈 파인딩(Needs Finding)의 순간이었다.  


렌딩클럽의 존 스포티스우드(John Spottiswood) 부사장과의 미팅은 그래서 더욱 각별했다. 렌딧을 창업할 때 가장 많이 벤치마크한 회사인 만큼 사업적인 부분에 있어 궁금한 점도 무척 많았다. 존은 렌딩클럽에서 기업 대출 부문을 총괄하는 임원으로, 대출 산업 자체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큰 소득은 미국과 한국의 중금리대출에 대한 산업적 환경이 다르지 않다는 점을 확인한 점이었다. 미국 역시 은행의 저금리 대출과 제2금융권의 고금리 대출 사이에 금리절벽이 존재하고 있었고, 바로 이 부분이 기술 기반 스타트업인 P2P금융산업의 존재 이유가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 P2P금융이 취급하는 대출에 투자하는 투자자(Lender)의 대부분이 금융기관이라는 사실도 중요한 러닝이었다. 프로스퍼의 론 수버 역시 ‘세 다리 의자의 투자 수요’ 부분에서 금융 기관 참여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한 바 있었다. 전세계 P2P금융에 투자하는 주요 투자자의 70% 이상이 금융기관이라는 것이었다.


2016년 2월 당시만해도 국내에서는 개인 투자자 이외의 투자자는 존재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대화는 향후 산업 발전의 방향성과 사업 전략을 그려가는데 아주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구글과 애플 출신의 P2P금융 창업자 데이브 지로아드(Dave Girouard)


사실 가장 상세한 토론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은 업스타트의 데이브 지로아드였다. 론이나 존과 달리 데이브는 업스타트의 창업자이면서 대표이사였고, 업스타트 창업 전에는 구글 엔터프라이즈(Google Enterprise)의 대표로 IT 기업을 이끌었던 점, 그리고 공대 출신의 핀테크 창업자라는 점까지 공통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창업 초기부터 그 이후 규모가 커지면서 맞닥치게 되는 챌린지들은 어떻게 달랐는지? 당시 렌딧 같은 규모에서 업스타트가 직면했던 문제점들은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각각의 단계에서 문제점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갔는지? 어떤 결정을 내렸었는지? 만일 그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같은 결정을 다시 내릴지, 그렇다면 왜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지 등 우리는 창업자로서 품고 있는 여러가지 고민거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데이브 역시 금융기관이 P2P대출에 투자자로 참여하는 것이 산업 발전에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시 창업 초기로 돌아간다면 개인 투자자 모집보다 기관 투자자 모집에 집중할 것이라는 조언을 해 주기도 했다. 금융기관은 ‘투자’의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리스크와 기대 수익률에 대한 정확한 예측을 기반으로 투자를 집행하며, 금융기관의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개인 투자자 모집도 수월해진다는 것이었다.


2016년은 국내에서 P2P금융기업이 급속하게 증가하기 시작한 해다. 업스타트가 2012년 창업 이후 2014년에 피봇팅을 통해 P2P금융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렌딩클럽이나 프로스퍼, 소파이 등에 비해 후발업체로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벤치마크할 부분이 많은 회사이기도 했다.  


애플과 구글 등 IT 기업 출신답게 테크드리븐(Tech-driven) 전략에 있어서도 서로 통하는 점이 많았다. 업스타트는 클라우드 기반의 대출 플랫폼(Cloud-based lending platform), AI 기반의 신용평가모형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렌딧과 비슷한 전략을 가진 회사이기도 하다.  



2020년 12월의 한국 P2P금융시장은 2016년 2월 샌프란시스코 출장에서 그려낸 모습과 다르지 않다. 론 수버의 ‘세다리 의자 이론’과 같이 대출-투자-서비스와 규제의 발전이 균형을 찾아가고 있으며, 무엇보다 세 사람이 입을 모아 강조했던 ‘금융기관의 투자자 참여’가 법적으로 명확하게 되었다. 렌딧을 비롯한 주요 P2P금융기업들이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라이센스 등록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으로 법적인 테두리에서 사업을 펼칠 수 있을 2021년이 기대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2016년 2월 당시, 아낌없이 Pay it forward를 실천해 준 론 수버, 존 스포티스우드, 데이브 지로아드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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