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성준 Oct 22. 2018

미국 목화 농장 기계화와 노동의 종말

미국 흑인 도시 빈민층 이면에는 농장 기계화와 공장 자동화가 있었다.  

책장을 살펴보다가 20년 전에 샀지만 읽지 않았던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 책을 펼쳐보았다. 요즈음 4차 산업 혁명으로 일자리가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사라진다고 하는데 20년 전에도 정보화 혁명으로 일자리가 사라진다던 경고가 어땠는지 궁금했다. 앞부분을 좀 읽어 보니 역시나 3차 산업 혁명이 앞으로 미래의 노동을 위협한다며 리엔지니어링, 자동화, 린경영 등을 내세우며 미래에 비숙련 노동자의 미래는 암울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현재 미국 실업률이 4% 미만으로 역사상 제일 좋다는데 20년 전 예측한 노동의 종말은 어디에 갔을까 싶었다. 그런데 책 목차를 살펴보니 중반에 미국 흑인들의 일자리가 어떻게 자동화로 변화했는지에 대한 역사가 나와 좀 더 읽어보았다.

초기 목화 수확 기계

미국 남부에 1950년대까지 주로 흑인들은 면화 농장 같은데서 저임금에 면화를 따면서 살았다. 하루에 평균 70파운드 정도(약 30kg) 면화를 땄다고 한다. 그러다가 1950년대 면화를 따는 자동화 기계가 나오며 수작업하는 사람보다 50배나 많이 면화를 수확하게 되었다. 목화 농장의 사람을 대체하기 시작해서 20년 만에 면화 수확 일의 90% 이상이 기계로 대체되었다. 흑인들은 기계에 일자리를 잃었고 살기 위해 마침 일자리가 풍부한 시카고, 디트로이트, 클리브랜드, 뉴욕 등 미국 북부 제조업 중심 도시로 몰려 대이주를 했다. 남부의 흑인 인구 절반 가까이의 500만명의 인구가 1940년과 1970년 사이에 남에서 북으로 이동을 했다. 


그러나 북쪽 도시에서도 1950년대 중반부터 제조업에서 자동화로 일자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흑인들의 실업률은 백인보다 2.5배가량 많았고 일자리를 읽은 이들은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여 여러 사회적 이슈가 생겼다고 한다. 도시 외곽으로 공장과 좋은 일자리도 이전하며 백인들은 교외로 탈출하였고 도심에는 흑인들 비율이 증가하고 일자리를 잃은 이들의 범죄률이 급증하여 흑인 젊은이의 4명 중 1명이 감옥에 가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1975년 뉴욕 거주자의 15% 이상, 시카고 거주자의 19%가 공공 보조금을 받아 생활하였다. 내가 처음 조교수로 일했던 뉴저지주 뉴왁 Newark 도시는 1967년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인구가 절반으로 줄고 범죄의 도시로 악명이 높았던 곳이었다. 첫 출근을 기차역에서 내려 학교까지 걸어갔는데 학교 다른 한국인들과 인사했더니 다음부터 낮에도 절대 걸어오지 말고 트램을 타고 오라고 조언을 주었다. 어쩐지 대낮인데도 마치 영화 속 같이 오는 길에 상점들이 다 문이 닫혀 있었다. 아무도 살지 않을 것 같은 빌딩 주택들이 보이고 창문은 널판지로 막아 놓은 건물도 종종 보였다. 학교에서 밖에서 밥을 먹으려 해도 주위에 운영을 하는 식당이 별로 없었다. 그런 암울한 도시 역사 이면에 농장 기계화, 공장 자동화가 있었다. 


1967년 뉴왁Newark폭동

대규모 인구 이동에는 일자리 변화나 식량의 급격한 변화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에 아일랜드 인이 많은 이유도 1845년에서 1852년까지의 감자 기근으로 백만명이 굶어 죽게 되어 백만명이 해외로 (미국 동부 및 다른 나라) 이민을 갔었다. 이민 가던 인구의 60%는 너무 열악한 환경의 배에서 땅을 밝기도 전에 죽었다. 결국 아일랜드 인구의 20-25%가 줄었다. 토지주들은 상당수 영국 본토 잉글랜드에 거주하였고 부재지주를 위해 도매로 땅을 빌려 소매로 소작인들에게 땅을 더 높은 소작료를 받고 빌려주는 중개인이 많아졌다. 지속적으로 높아가는 지대에 살기 어려운 가운데 남미에서 건너온 감자가 이들의 허기를 달래주었는데 감자 전염병으로 먹거리가 떨어지자 이들은 생사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해외로 떠나는 배에 탄 아일랜드 이민자들

책을 덮자 한국의 일자리는 어떻게 될 지 걱정이 되었다. 부동산은 폭등하고 젊은이들의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이후 편의점 알바 자리도 경쟁률이 10대1로 높아졌다고 한다. 주차장 주유소 소규모 식당에서 무인 기계가 이미 알바 자리를 대체해 나가고 있고 중고 업체 기구 설비업자들은 폐업하는 가계에서 커피 기계 조리 기구가 쏟아져도 창업하는 사람이 없어 매입을 멈췄다고 한다. 30% 오른 최저 임금을 받아도 폭등한 부동산으로 살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한 도시에 사람이 생활이 힘들어져 살 수 없으면 사람은 떠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 젊은이들은 삶이 힘들어져도 지방 경제는 더 어렵고 이민의 문턱은 갈수록 높아져 어디 갈 데가 없다.   


p.s. 노동의 종말과 다른 유투브에 올라와 있는 미국 다큐멘터리에서의 시각은 '노동의 종말'과 상당히 다릅니다. 흑인들이 계속 북부의 좋은 제조업 일자리로 이주를 해가서 20년간 남부의 임금이 3배 올랐다고 합니다. 기계는 40년대에 이미 개발되었지만 인건비가 싸서 확산되지 못하여 발명가는 파산하였고 이후 다른 회사가 계속 생산하였다고 합니다. 50년대 인건비가 오르고 사람을 구할 수 없게되자 기계가 대규모로 확산되었다고 하네요. 기계가 사람을 쫓아낸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이동을 해서 인건비가 올라 기계화가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강남과 홍콩 인구밀도 집값 비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