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멩이 Jan 03. 2020

아리아드네의 실

박민정 『미스 플라이트』

찾아가는 이야기

  이 소설의 줄거리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딸의 죽음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항공사 승무원인 ‘유나’의 죽음과 그 죽음의 진실을 밝히려는 아버지 ‘정근’의 서사이다. 언뜻 보면 흔한 부성애 서사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 소설은 비밀을 꽁꽁 숨겨놓지 않으며, 엄청난 반전을 준비하지도 않고, 범인이 벌을 받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독자들은 소설 초반서부터 유나가 자살한 이유를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으며, 그러한 추측은 결말에 와서도 바뀌지 않는다. 이 소설은 ‘실마리’보다는 ‘찾아가는’에 방점을 두고 있다. 정근은 유나의 죽음을 계기로 유나의 친구들인 ‘주한’과 ‘철용’을 처음으로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미 만났지만 잊고 있었던, 자신의 운전병이었던 ‘영훈’을 다시 만나며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게 된다.


비밀을 찾아가는 비밀

  ‘아리아드네의 실’은 아리아드네가 미궁에서 길을 잃지 말라고 사랑하는 테세우스에게 건네주었던 물건이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비유로도 쓰인다. 사실 아리아드네의 방법은 간단하다. 실타래를 풀면서 미로 속으로 들어가고, 실타래를 감으면서 미로 밖으로 나오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미로 전체를 파악하는 방법이 아니다. 자신이 걸어왔던 길만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이해된다. 우리는 삶이라는 미로를 온전히 알지 못한다. 우리는 이미 미로 속에 있어서 미로 밖에서 전체를 관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타래를 풀면서 삶을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실타래를 감으면서 삶을 되짚어본다. 우리는 삶을 파악할 수 없으며, 단지 경험하고 그 경험을 되짚어보는 수밖에 없다.

  정근은 ‘유나의 실’을 감으면서 자신의 삶을 되짚어본다. 테세우스와 달리 그는 ‘삶이라는 미로’ 밖으로 나올 수 없다. 그러므로 실을 감는 과정은 지속된다. 다만 그 과정은 자신의 과거로 단순히 되돌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현재의 좌표를 재정립하는 과정이다. 정근은 과거에 내부폭로를 시도하는 ‘윤 대령’을 강하게 억압했고, 그 결과 윤 대령은 자살에 이른다. 그때 정근은 “그의 죽음은 그의 선택이었다, 그러므로 그를 과하게 동정할 까닭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에 정근은 최 기장에게 유나의 죽음에 대해 “이유가 어찌 되었든 스스로 죽은 거 아닙니까.”라는 식의 말을 듣는다. 이를 통해 정근은 타인의 죽음에 대해 그토록 냉정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윤 대령의 장례식에 찾아가지 못했던 것과 그의 부인에게 사과의 말을 하지 못했던 것부터 오랫동안 찾아가지 않은 고향의 풍경까지 정근의 머릿속을 사로잡았다.” 정근은 자신 때문에 아내가 유산하게 되었던, 오래전 자신의 운전병이었던 영훈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한다. “오래전 운전병이었던 부기장과 그 부인을 만나 사죄하는 일도 유나가 원한 것일 터였다.” 정근은 다짐한다. “옛날의 자신으로 물러서지 않겠다고.”

  이 소설은 딸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아버지가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결말에 이르도록 아버지는 그 비밀을 찾지 못한다. 그리고 그 비밀을 찾으려는 노력 속에서 자신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정근의 중요한 변화는 비밀을 찾으려는 노력 속에서 나타난다. 비밀은 비밀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삶의 비밀은 한 문장의 명확한 해답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비밀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미처 몰랐던 사실과 타인에 눈을 뜨는 과정 속에서, 어렴풋이 드러난다. 안개 같은 삶 속에서 수없이 더듬고 절뚝이며, 자신의 흔적을 되짚고 고민하는 과정이, ‘진정한 비밀’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차가 사라지는 듯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