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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멩이 Jan 03. 2020

젊은 시인 김수영

김수영 『달나라의 장난』

  김수영이 생전에 출간한 유일한 시집이자 각별한 관심을 가졌던 시집인 『달나라의 장난』이 리뉴얼되어 다시 나왔다. 1959년 춘조사 판을 구하기 어려워했던 독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생활이라는 감각

  ‘김수영’이라고 하면 ‘자유’를 이야기한 시인으로 많이 기억할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가 만들어진 데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와, 시집 『거대한 뿌리』에 대해 김현이 쓴 해설 「자유의 꿈」이 크게 작용했다. 굳센 의지로 자유를 역설하는 강렬한 모습. 그러나 『달나라의 장난』을 펼치고 나서 독자들이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자유를 말하는데 / 우스워라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사령(死靈)」). 예상과 달리 그의 모습은 초라하다. 초라한 그가 마주한 것은 ‘생활’이다. “나는 또 하나의 생활의 좁은 골목으로 / 들어서면서”(「생활」). “생활과 언어가 이렇게 까지 나에게 밀접해진 일은 없다”(「모리배」).

  김수영은 자유를 이야기하던 시인인 동시에 번역을 하고 닭을 키우며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이었다. “계사(鷄舍) 위에 울리는 곡괭이 소리”(「비」). “보석 같은 아내와 아들은 / 화롯불을 피워가며 병아리를 기르고”(「초봄의 뜰 안에」). 이것은 “누구의 생활도 아닌 이것은 확실한 나의 생활”이다.(「방 안에서 익어가는 설움」)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위 시들은 『거대한 뿌리』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달나라의 장난』에선 ‘자유의 시인’ 김수영의 또 다른 모습, 생활에 대한 시인의 감각을 볼 수 있다.


꿈 이후의 꿈

  그러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가 생활의 세계에 침잠해버리는 것은 아니다. 그는 “나의 팔을 지배하고 나의 / 밥을 지배하고 나의 욕심을 지배”하는 생활을 “생각하면서 하이데거를 읽고 또 그들을 사랑한다”(「모리배」). 그가 생활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자유를 포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기 위하여”이다.(「말」)  그러므로 다음 구절을 체념적으로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제 꿈을 다시 꿀 필요가 없게 되었나 보다 / 나는 커단 서른아홉 살의 중턱에 서서 / 서슴지 않고 꿈을 버린다”(「달밤」). 김수영은 성급한 꿈이 끝나고 난 뒤 시작되는, 또 다른 꿈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봄밤」). 지구에 다다르지 못하는 달처럼 현실에 꿈이 다다르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코 서두르지 말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꿈에 도취(陶醉)한 사람들 혹은 꿈을 도취(徒取)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섣부르게 “혁혁한 업적”을 기대한다. 이에 반해 시인은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봄밤」)을 말하며, “아무것에도 취하여 살기를 싫어”한다.(「도취의 피안」) “흥분할 줄 모르는 나의 생리”(「국립도서관」)는 “어둠과는 타협하는 법이 없다”(「수난로」). “유일한 희망은 겨울을 기다리는 것이다”(「수난로」)라고 말하며 “남극에 생활을 박아라”(「지구의(地球儀)」)라고 외치는 시인의 모습은 그 무엇보다도 자유롭다. 진정한 자유는 따스한 햇살이 아니라 매서운 ‘겨울’과 ‘남극’가운데서 드러난다.


젊은 시인 김수영

  『달나라의 장난』 초판이 발간된 시점은 1959년으로, 아직 ‘빛나는 4월’이 오기 전이었다. 자유의 혁명, ‘빛나는 4월’ 이후의 시들은 『거대한 뿌리』에 수록되어 있다. ‘촛불혁명’을 목격한 지금 이 시대에 어울리는 시집은 『거대한 뿌리』인 듯하다. 그러나 “움직이는 나의 생활은 / 섧지가 않아 시체나 다름없는 것이다”(「여름 뜰」)와 같은 구절을 보면, 『달나라의 장난』을 우리 시대로 끌어들여오고 싶다. 서럽지 않아 시체나 다름없는 시대, “음정을 맞추어 우는 법도 / 습득하지는 못하”(「토끼」)는 비참한 시대가 우리 시대가 아닌가. 슬픔의 정치적 의도를 묻는 시대, 슬픔의 우열을 따지고 슬픔의 자격을 심문하는 시대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표제작 「달나라의 장난」에서 화자는 돌아가는 팽이를 바라본다. “도회 안에서 쫓겨 다니는 듯이 사는” 화자는 팽이를 신기하게 바라본다. 생활에 묶이고, 서러워할 수도 없는 화자와 달리 팽이는 “스스로 도는 힘”을 가지고 있다. 설움이 없어 시체와 다름없던 화자는 팽이를 통해 설움을 얻는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이 시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저 믿을 수 없는 일, “달나라의 장난”과 같은 일에 불과할까. 이 시와 시집의 원래 이름이 ‘달나라의 작란’이었다. 작란(作亂)은 '난리를 일으킴'이라는 뜻을 지닌다. 작란은 반란과 혁명으로 이어진다. 김수영은 「달나라의 장난」을 통해 '빛나는 4월'의 희미한 가능성을 예감하고 그것을 드러낸 것이 아니었을까.

  『달나라의 장난』은 시대를 응시하고 시대와 응전한다. 1959년에도 그러했고 2018년에도 그러하다. 김수영을 교과서나 논문에서만 만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는 ‘4.19’, ‘자유’와 같은 단어로만은 포괄할 수 없는, ‘젊은 감각’을 소유하고 있던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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