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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멩이 Jan 09. 2020

세대론에 관하여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이 유행이다. ‘밀레니얼세대’라는 단어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요즘은 밀레니얼세대보다는 ‘Z세대’라는 말을 더 자주 쓰는 것도 같다. 나는 저 용어들이 이야기하는 90년대생이지만, 두 단어의 차이는 잘 모르겠다. 찾아보니 밀레니얼세대는 자유롭고 자신만의 시간을 중요시하는 세대라고 한다. 그런데 역사상 그렇지 않았던 젊은 세대가 있었나? 젊은 세대는 늘 자유롭고 자신만의 시간을 중요시하지 않았나?

   ‘X세대, Y세대, M세대, P세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과거에도 비슷비슷한 세대론이 쉴 새 없이 나왔었다. 대부분이 마케팅을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소비트렌드를 주도하는 이들이 젊은 세대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20~30대를 지칭하는 저 단어들은 모두 그들에게 상품을 팔려는 40~50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정작 당사자인 젊은 세대가 동의하기 힘든 내용이 종종 있다.

   아마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세대론은 ‘88만원세대’일 것이다. 이 단어 역시 40대 저자가 만든 것이다. 다만 앞에서 언급한 단어들과는 약간 다르다. 상품을 팔려고 만든 용어는 아니다. 저자는 젊은 세대가 자신을 ‘88만원’이라는 경제적 계급으로 규정하기를, 그래서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88만원세대’라는 말을 젊은 세대에게 ‘선물’했다. 그러나 5년 뒤 저자는 자신의 저서를 "세상에 준 기여보다 부정적 폐해가 더 많게 된 책"으로 평가하며 절판을 선언한다. "처음에 이 책 쓰면서 생각한 변화가 사실 벌어지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청춘들이여, 정신 좀 차려라."라며 젊은 독자들에게 책임을 물었다. 그러나 실패의 원인이 과연 ‘청춘들’에게 있을까?

   2017년 한국에서는 ‘수저계급론’이 유행했다. ‘수저계급론’은 특정 경제학자가 의도적으로 부여한 것이 아닌, ‘디시인사이드’라는 주이용 층이 20대인 커뮤니티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단어다. 그렇다면 88만원세대론과 수저계급론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둘 다 모두 빈곤한 젊은 세대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과거의 세대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일 수 있었다. 물론 이전 세대에도 계급격차는 있었다. 다만 모두가 함께 (민주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성장’한다는 공통감각이 있었기 때문에 그 차이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성장이 멈춘 후기자본주의에 이르러 계급격차는 건조한 사실로서 우리 앞에 나타났다.

   같은 청년이더라도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가 느끼는 정체성은 다르다. 그러므로 하나로 뭉쳐 저항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흙수저’라는 단어는 일부의 착각과 달리 저항적인 단어가 아니다. 각기 다른 정체성으로 고립된 개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저항’이 아니라 ‘냉소’와 ‘자조’다. 인터넷에 등장한 흙수저의 ‘입김 생존법’이 그 사실을 드러낸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특정한 정체성으로 규정할 수 없다. 현재 시대의 유일한 세대론은 ‘세대론이 불가능하다는 세대론’이다. 나머지는 둘 중 하나다. 마케팅이거나, 당사자는 받아들이기 힘든 ‘선물’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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