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정확히 말해서, 여행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요즘 세상에 여행을 싫어한다고 말했다가는 이상한 눈초리를 받기 쉽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서 가든, 스스로 돈을 벌어서 가든, 대학생의 유럽여행은 하나의 관례가 되었다. 좋아하는 영화, 음악, 음식, 연예인은 달라도, 유럽여행을 좋아하지 않기는, 정확히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들은 다른 취미와 달리 여행에는 생산적인 측면이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소설을 쓴다고 밝히면 여행을 많이 다니라는 조언을 종종 듣는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새로운 경험을 얻을 수 있고 그러한 경험으로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이다.
과연 그럴까? 생각보다 여행의 경험을 다룬 소설은 별로 없다. 왜 그럴까. 보통 스스로 계획을 짜서 떠나는 배낭여행을 주도적인 활동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 계획의 기준에는 이미 세간의 평가가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 아무리 자유여행일지라도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평가한 장소를 찾아가기 마련이다. 루소가 알프스가 아름답다고 말한 뒤에 알프스가 유명해진 것처럼, 여행은 보통 그 길을 미리 가 본 타인의 시선을 따라가게 된다.
또한 여행은 세상과 나의 철저한 분리를 기초로 한다. 아무리 건축물이 장관이고 현지인이 특이할지라도, 여행자들은 건축물의 이모저모를 뜯어보거나 현지인과 깊은 교감을 나누지는 않는다. 그것들을 눈으로 보며 스쳐지나가는 데 그친다. ‘나’의 일방적인 시선으로 대상들을 훑어보는 것이 현대의 일반적인 여행이다.
결국 우리가 머무는 곳은 지겹도록 익숙한 공간이며, 만나는 이들은 정말로 지긋지긋한 사람들이다. 여행을 다룬 소설의 대부분이 ‘여행에서 돌아와도 바뀐 게 없다’는 결말로 끝난다. 이는 곧 우리가 예외적인 여행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일상에서 고민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물론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은 마음을 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 그러므로 내가 여름에 유럽여행을 가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