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저, 1998, 해냄
'눈먼 자들의 도시'. 눈이 멀면 어떤 느낌일까? 나는 잘 생활할 수 있을까?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좌절감이 엄청날 것 같다. 그런데 모든 세상 사람들이 눈이 먼다면? 사람들의 삶이 유지가 될까?
눈이 보이는 것, 시력은 인간의 생활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잇다. 우리에게 오감(五感)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감각은 시력이다. 귀가 들리지 않는 것,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것, 말을 할 수 없는 것도 불편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눈이 보이지 않는 것만큼 큰 좌절은 없다.
이 책은 학교 독서동아리 선생님 중 한 분이 추천을 해서 함께 읽었다.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내용이 너무나 우울했다. 읽는 내내 그렇게 우울한 마음으로 책을 읽기는 처음인 것 같다.
어느 날 한 명의 남자가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다. 보통의 실명은 검은 세상이 되는데, 이 병은 온 세상이 우유 빛깔처럼 하얗게 보이며 실명한다. 그 후에 이 사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눈이 멀어간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의사도 이 남자를 진료하다가 눈이 먼다. 그런데 재밌게도 의사의 아내만은 눈이 멀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 때, 이 의사의 아내는 눈이 멀지 않는다.
아마도 작가는 누군가 이야기를 전개할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에 의사의 아내를 눈이 보이게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눈이 보이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생활을 극명히 대비시켰을 것이다. 그러한 조치 때문에 정말 눈이 먼 다는 것에 대해 더 실감 나게 느낄 수 있다. 독서 동아리를 함께하는 선생님은 모든 사람은 본능에 충실하게 생활했는데 의사의 아내는 절제된 생활을 했기에 눈이 멀지 않았다는 본인의 해석을 말씀하셨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런 은유가 숨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우리는 모두 눈이 먼 상태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사회적 가면을 쓰고 다른 사람을 대하고 있다. 눈을 뜨고 있지만 끊임없이 누군가를 속이는 사회. 작가는 그런 사회를 풍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인간의 본능에 대해 정말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수용소에 모여 정부의 통제를 받는다. 처음에는 7명이었지만 나중에는 240명까지 늘어난다. 정부에서 주는 음식의 양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러니 배고픔에 시달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끊임없는 분쟁이 생긴다. 소설 중간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저기 병실 끝에 의사가 조직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 것도 분명히 맞는 이야기다. 사실 문제는 조직이다. 첫 번째가 먹을 것이요. 그 다음이 조직이다. 둘 다 사는 데는 불가결한 것이다."(153쪽)
본능이 지배되는 세상은 지옥일 것이다. 동물은 철저히 본능적인 삶을 산다. 조직을 운영할 때도 약육강식의 논리로 운영한다. 약자에 대한 배려는 없다. 하지만 인간은 합리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조직을 운영한다. 그것을 구성하는데 다양한 철학이 기반이 되며, 현재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 속 병동은 동물과 같은 조직 시스템이다. 제한된 음식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 보니 욕심 있는 사람들은 깡패가 된다. 총을 든 사람들이 조직을 만들어 음식을 모두 빼앗고, 음식을 먹고 싶으면 보석을 달라고 한다. 보석을 가져온 만큼 약간의 음식을 준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수긍한다. 배고픔은 인간이 참을 수 없는 최고의 욕구이기 때문이다.
깡패들은 가장 기본적인 식욕이 채워지자 성욕을 느낀다. 이제 사람들에게 여자를 상납하라고 한다. 남자들은 열외다. 항상 이런 상황에서는 힘없는 여자들이 당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먹고살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위해 여자들은 자신의 몸을 팔아 음식을 가져온다. 남자들은 미안해 하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과연 사람들은 선한가? 악한가?
조직이 있기는 한데 그 조직의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이렇게 생활 모습이 달라진다. 지혜롭고 인덕이 있는 사람이 리더가 되지 않으면 그 조직은 모두가 불행해진다.
결국 이 책을 읽고 여러 가지 생각을 했지만 그중 핵심 단어 하나를 고르라면 '조직'이라 하겠다. 조직을 누가 만들며, 그 조직을 유지시키는 권력은 어디서 오며, 어떤 사람이 조직의 리더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인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이 책을 추천한다. 읽을 때는 우울하지만 읽고 나면 정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