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서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y Sung Mar 16. 2020

독서서평 | 소녀들의 심리학

레이첼 시먼스 저, 정연희 옮김, 2011, 양철북


  학급 운영에서 가장 어려운 것 하나를 꼽으라면 여학생들의 친구 관계이다. 10년 넘게 교사를 하며 여학생들끼리의 왕따 문제로 피곤하지 않은 해가 없었다. 나는 우리 반 여학생들을 자세하게 관찰하고 그들의 친구 관계에 약간의 삐그덕거림이 느껴지면 바로 한 명씩 불러 상담하는 스타일이다. 예를 들어, A・B・C・D・E가 친하게 지냈는데 갑자기 AB끼리 다니고 C・D・E가 따로 다닌다면 A를 불러 물어보는 식이다. 이런 나를 보고 어떤 여학생은 '선생님은 우리 사이에 왜 이렇게 간섭해요?'라는 말을 했었다. 하지만 나는 남자이고, 여자가 아닌지라 여학생들의 마음과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리 학교 교육공동체에 위와 같은 나의 고민을 털어놓으니, 동료 선생님이 '소녀들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추천해 주셨다. 자기가 읽어보았는데 여학생들의 심리를 정말 잘 표현했다고 한다. 그래서 구입해서 읽게 되었다.


  이 책에는 저자가 면담한 수많은 소녀들의 왕따 경험기가 나온다. 그 이야기를 보며 마음이 참 아팠다. 나도 예전 중학교 1학년 때 따돌림을 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그때 이후로 주기적으로 가해자였던 아이들을 때리는 꿈을 꾼다. 그 아이들은 지금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그래서 나는 우리 반 학생들의 따돌림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내가 당했던 그런 일들을 우리 반 아이들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의 행동이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학생들은 '관계'에 상당히 민감하다. 그들은 이성친구를 사귀기 전 동성인 친구에게 상당히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 사회는 남자와 여자를 다르게 사회화한다. 남자는 폭력적이고 욕설을 해도 되지만, 여자는 '착한 소녀'에 대한 모습을 강요한다. 그러다 보니 여학생들은 친구 관계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겉으로 드러나는 폭력, 욕설보다는 '관계'를 무기 삼아 공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친구 사이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여학생들은 친구들 사이 관계에서 섭섭한 점이 있을 때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보다는 숨기는 경향이 크다고 한다. 솔직하게 이야기했을 때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인정하기보다는 말한 친구의 잘못을 드러내며 공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솔직하게 친구 관계를 풀기보다는 마음에 담아 놓고 있다가 나중에 관계를 틀어 버린다고 한다. 


  이 책을 어느 정도 읽고 나니 우리 반 여학생들의 복잡했던 관계가 약간은 이해가 되었다. 소녀들에게는 은밀한 공격 문화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자들 중에서 관계의 폭력을 당한 사람들은 남자인 친구들이 편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남자 입장에서 이 책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이 책의 번역은 가히 최악이라고 봐도 좋다. 내가 대학원 때 교수님이 준 원문을 해석하는 수준이랄까. 그리고 이 책은 근원적인 질문에는 답하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의 행동 차이는 무엇 때문인가? 이런 것에 대한 대답은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여학생들의 심리와 친구 관계에서의 갈등 및 양상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나는 앞으로 담임교사를 하며 여학생들의 상처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눈으로 보이는 폭력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피해받은 것 같은 학생들에게 자기 마음을 일기를 쓰라고 할 것이다. 자기가 당한 걸 기록해 놓으며 마음을 정리하고 나중에 증거자료로 사용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줄 것이다. 한 권을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어쨌거나 도움이 되었던 책이기에 이렇게 서평을 남긴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서서평 | 불량한 자전거 여행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