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화 방식의 교육과정 작성 속에서...
새벽 3시에 일어나서 학년교육과정을 작성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연구부장이님 준대로 수정 및 보완했다는 표현이 맞겠다. 학년교육과정을 수정하고 나서 페이지를 봤더니 118쪽이다. 맙소사. 논문 한편이다. 그중에서 내가 창의적으로 작성한 부분은 1쪽도 안된다. 언제부터 내려온지 모를 양식에 덮어쓰기만 계속하고 있다. 그게 현장의 학년교육과정이다.
학년부장이지만 학년의 특색에 대한 고민은 할 수가 없다. 이미 학교에서 연구부장이 모든 시수를 맞춰서 준다. 국가에서는 범교과라는 영역으로 교과와 창의적 체험활동을 더하여 안전교육, 나라사랑교육 등을 하라고 한다.(너무 많아서 나열하기도 벅차다.) 내가 숫자를 하나라도 바꾸는 순간 학교교육과정과 연계가 틀어진다. 나는 전혀 바꿀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수정하다 보니 창의적 체험활동이 날짜가 안 맞는다. 작년 양식이니 당연하다. 날짜를 수정하고 보니 시업식, 방학식, 개학식, 졸업식에 해당하는 ‘달’과 ‘주’가 틀어졌다. 다시 수정한다. 한글 파일에 표가 왜 이리 많은지. 표를 분할했다 통합했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그렇게 2시간 30분을 꼼짝 않고 수정했다. 아침에 동학년 선생님들에게 시간표, 학급 특성 등을 받아 보완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과정 부장님께 제출하면 된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1년의 계획은 필요하지만 현재의 이 모습은 아닌 것 같다. 표준화방식이 지배하는 교육과정에서 교사와 학생들의 아기자기한 모습이 담겨있는 교육과정은 존재할 수가 없다. 지켜야 할 법과 규칙이 있고, 그것을 교육과정에 반영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형식주의에 빠진 교육과정은 불필요하다.
이렇게 2주 후면 교무실에서 행정지원사, 교무실무사 선생님이 113쪽에 이르는 학년교육과정을 정성스럽게 링 제본해서 각 학년별로 보낸다. 선생님들은 그걸 받지만 그중에 실제적으로 보는 부분은 5쪽 이내다. 나중에 창의적 체험활동 나이스에 입력할 때뿐이다.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는데 효과적이지 않다. 이런 흐름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내가 교직에 있었던 10여 년 동안 변함이 없는데 10년 후에도 이런 모습일까? 변함없는 이 모습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