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나 뉴스를 보다 보면 OECD와 비교해서 대한민국 교사들은 우수하다는 기사가 많이 나온다. 여기서 우수하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입시체제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사람들이 교사가 된다는 의미인가? 아니면 실제로 우수성을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있고 그 측정 결과 우수하다는 이야기인가? 우수성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우수성’에 대한 용어의 정의부터 그것을 구성하는 하위 요소, 비교군과 대조군의 통제, 이런 것들이 있어야 한다. 최소한 나는 아직 그런 연구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교육에서의 ‘우수성’은 사람들마다 해석하기에 상당히 다를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교사가 우수하다는 이야기는 대학입시체제에서 상위권에 속한 사람들이 교사가 된다는 이야기다. 즉, 수능이나 내신점수 높은 학생들이 교사가 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런 종류의 우수한 사람들이 모인다고 교직 사회가 발전하고, 학생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 맞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는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공부 잘한 사람들은 보통 순응적이다. 수능이나 내신 시험이 선다형, 단답형으로 이루어지기에 비판적 사고보다는 지식 암기를 잘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의심하면 안 된다. 무조건 외워야 한다. 조금의 의심이 들어가면 스스로가 불편해지고 외우는데 시간이 많이 들 수 있다.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이혜정, 2014, 다산에듀)라는 책을 보면 서울대에서 A+를 받는 학생은 교수가 수업시간에 하는 말을 그대로 녹음한 후 집에 가서 그대로 다시 한번 필사하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받은 학생들이 교대나 사대에 간다며, 그들이 교사가 되었을 때 우수한 교사가 될 수 있을까? 현장은 비판적 사고를 바탕으로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교사가 필요하다. 현장은 많은 정책들이 혼란스럽게 펼쳐지기에 자신의 교육철학이라는 ‘체’로 걸러낸 다음 맞는 것이라 생각되는 것은 뚝심 있게 추진하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그런 능력을 기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결국 보통의 신문에서 이야기하는 대한민국 교사들이 우수하기에 우수한 교육을 할 것이라는 논리는 막연한 기대에 불과할지 모른다. 학생일 때 공부를 잘했다고 교사가 돼서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것의 상관관계는 그다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교사는 깊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냥 시키는 데로 행동하는 교사는 기존의 권력을 영속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도구적 존재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