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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y Sung May 01. 2016

선생님 사용 설명서

연임하는 담임교사의 학급운영기

  나는 작년에 5학년 담임이었고, 올해 6학년 담임으로 올라왔다. 이른바 ‘연임’이라는 것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작년 우리 반이었던 친구들 6명이 올해도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연임에 대해 주변 선생님들의 생각은 엇갈린다. 나도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다. 2월 말, 학급 운영 계획을 세우는데 안 좋은 점이 발견되었다. 내 소개자료 PPT를 작년 것 그대로, 약간의 수정만 하려고 했는데 작년 아이들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작년이랑 똑같다고 비웃으면 어떡하지? 기억할라나?’라는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굳이 나에 대해 내 손으로 소개하지 말고 이 아이들이 나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갖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른바 ‘선생님 사용 설명서’를 작성해 오라는 숙제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3월 2일 첫날, 나와 함께 올라온 아이들 6명을 불렀다. 나는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태연히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선생님이 너희들에게 숙제를 낼 거야. ‘선생님 사용 설명서’를 내일까지 작성해와. 너희가 1년 동안 선생님을 겪어 봤으니 우리 반 아이들에게 나에 대해 소개해 주는 거야. 왜 가전제품이나 장난감 사면 ‘사용설명서’ 들어있잖아. 그 물건에 대한 소개부터, 조작방법, 유의사항까지 말이야. 6학년 1반 친구들도 선생님 사용법을 알아야 하지 않겠니? 사용법 잘 모르고 선생님 대하다가 선생님한테 혼날 수도 있잖아. 그러니 우리 선생님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학급 운영을 하시고,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작년 생활을 떠올려보며 써와 봐."


  내 말이 끝난 후 아이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해 안 되는 부분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한 후 자리로 돌려보냈다.


  이렇게 이야기했지만 '아이들이 나에 대해 이상하게 쓰면 어쩌나’ 허눈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반성의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6명의 아이들이 다음날 ‘선생님 사용설명서’를 써 왔다. 6명의 내용을 차례차례 읽어 보았다. 그중 남학생 하나가 ‘목차’까지 작성하여 기가 막히게 써 왔다. 완전 한 편의 보고서였다.


<선생님 사용 설명서>


1. 혼날 때 징조 - 미간을 찌푸리시면서 “인마”라는 말을 하실 때는 나대지 말고 조용히 있는 게 좋다.


2. 안 혼나는 법 - 시킨 일을 제대로 하고 이타적이게 행동을 하면 선생님의 호감도가 올라간다.


3. 좋아하는 스타일 - '이기적 집단과 이타적 집단이 맞섰을 때 누가 승리하는가?’ 이 원리에 따라 하나의 공동체 구성원인 우리가 이타적으로 행동하면 좋아하시는 것 같다.


4. 칭찬받는 법 -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 희생하거나. 수업시간 발표를 기똥차게 잘 했을 때 칭찬받는 것 같다.



  이 아이는 작년에 우리 반이었던 남자아이로 다른 선생님들이 보기에 똘똘한 아이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 배경지식이 풍부하기에 그런 평가를 받는 것 같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 볼 때 이 아이는 잘난 체를 하고 이기적인 면이 있었다. 작년 학기초에 친구들을 배려하기보다는 자기의 잘난 모습을 뽐내는 것을 좋아했다. 왜 각 교실에 선생님 눈치 보면서 칭찬받을 행동만 골라하는 친구가 있지 않은가. 딱 그런 친구였다. 내 입장에서는 그 친구가 다른 친구와 ‘함께’ 가기를 원했기에 어르고 달래고 혼내기도 하였다. 그래서 작년 학기초에 나에게 서운함을 많이 느꼈었던 모양이다. 2학기 10월 즈음 학부모 상담을 하는데 그때서야 할머니가 ‘학기초 OO가 선생님은 나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라고 이야기했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아마도 예전 선생님들은 자기의 행동에 칭찬을 많이 해 주셨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야속함의 표현이었으리라. 하지만 곧이어, 학기초 잠깐 그랬을 뿐 이후에는 '우리 선생님 재밌다’며 잘 지낸다고 이야기했다고 말씀해 주셨다. 내가 볼 때에도 1학기가 지나고 2학기 즈음에는 그 친구가 다른 친구들을 배려하며 즐겁게 학교 생활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작년에 그랬던 그 친구가 내 교육철학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 친구 표현대로 ‘기똥차게’ 써 왔다. 수업시간 이 친구의 발표가 끝나고 나는 폭풍 칭찬을 해 주었다. 정말 나를 제대로 알고 있는 아이였다. 이 친구도 나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하는 것이 보였다.


  ‘선생님 사용 설명서’ 덕분에 아주 유쾌한 시간이 되었고 새롭게 나와 함께하게 된 친구들도 나를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다. 같은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가는 ‘연임’이 부담스러운 면도 있지만 이런 식으로 풀어가면 좋은 점이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작년 우리 반이었던 6명의 학생들이 쓴 글들을 다시 보며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었다. 올해는 아이들의 성장에 더 많은 도움이 되는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렇게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선생님과 학생들은 함께 성장한다. 학생들은 선생님을 바라보며 선생님의 교육 철학을 이해하고 실천해 간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바라보며 나를 되돌아보고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2016학년도 3월이 시작되었다. 올 한 해 우리 ‘기백반’ 친구들도 나와 함께 많이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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