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은 점심시간에 '뷰티샵'이 열린다.
요새 우리 반 여학생들은 화장에 엄청 신경을 쓴다. 예전의 교실이었다면 상상도 못 할 일들이 우리 반 교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래 사진은 우리 반 점심시간의 풍경이다. 점심을 먹으면 여학생들이 자신의 화장 파우치를 열고 화장을 한다. 그러면서 화장법을 서로 알려주기도 하고 화장품을 소개하기도 한다. 완전 ‘뷰티샵’이다. 그래서 나는 농담 삼아 ‘오늘도 뷰티샵 열렸냐?’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여학생들이 화장을 하는 건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화장을 통제한다는 30년 전 사고다. 그런 논리라면 언제부터 화장을 할 수 있는가? 만 19세가 되면 할 수 있고, 만 18세 12월 31일까지는 못하는 것인가?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주면 이상하게 보일 것이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화장품을 싸구려가 아닌 어느 정도 검증된 화장품을 썼으면 한다. 우리 모두의 피부를 포함한 건강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이거 누가 사준 거야?"
“엄마 가요."
놀랍게도 어머니들이 이미 다 딸들의 화장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소리다. 화장품 브랜드도 로드샵 수준이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교과 선생님들과 가끔 대화하게 되면 나에게 물어본다.
“그 반 여자애들은 왜 그렇게 화장을 많이 해요?"
“그러게요. 예쁘게 보이고 싶은가 보죠."
이게 나의 대답이다. 화장하는 아이들 지도를 하지 않느냐는 빈축 섞인 말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여학생들이라고 화장 못할 건 없다고 생각한다.
여학생들이, 아니 모든 여자들이 화장을 하는 것은 예쁘게 보이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이성에 대한 잘 보임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만족이다.
진화심리학적으로 볼 때 남자들은 건강한 여자를 좋아하게 되어있다. 그 건강함의 표시가 빨간 입술, 불그스르함 볼, 깨끗한 피부다. 결국 화장을 한다는 건 이성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발현된 행위이다.
또한, 화장을 하고 예뻐진 나의 모습을 보면 자존감이 상승한다. 보다 더 당당해진다는 것이다. 이건 남자들이 머리를 스타일링하고, 멋진 옷을 입고, 멋진 시계를 사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 반 여학생들이 화장을 하는 이유도 위 두 가지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또래 심리가 작용을 하니 화장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가끔씩 화장을 한 우리 반 여학생들에게 이렇게 농담을 건넨다.
“요새 잘 보이고 싶은 남학생 있니?"
혹은,
“너 그렇게 화장하다가 안 하면 사람들이 아픈 줄 알고 깜짝 놀래. 화장 적당히 해~."
교사로서 그냥 아무 말도 없이 넘어가기에는 무책임한 것 같고, 어느 정도 담임교사가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농담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다들 가볍게 웃고 넘어간다.
아내와 여학생 화장 이야기를 하는데 예전에는 고등학교 이상이 되어야 화장을 했단다. 그러면 지금과 그때의 차이가 무엇이길래 지금은 초등학생들이 화장을 하는 것 같냐고 질문을 하니, 화장품 가게(로드샵)가 많아져서 초등학생들이 예전보다 쉽고 싸게 화장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미처 몰랐던 사실이었다. 그렇다.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화장을 하게 된 건 여학생들의 사고가 이상해져서가 아니라, 단지 ‘자본주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중고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화장품 산업이 ‘돈’이 된다고 기업들이 느꼈다. 그래서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샵이 많아졌고, 이에 학생들이 반응한 것이다. 결국 여학생들이 화장을 하는 것이 싫다면 여학생들의 마인드를 탓할 것이 아니라 화장품 산업을 규제하면 될 일이다. 천민자본주의에 찌든 대한민국 정부에서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나는 나중에 내 딸이 저 나이가 되었을 때 화장을 하면 뭐라고 할까? 좋은 화장품을 사주는 아빠가 될까? 아니면 적당히 화장을 하라고 훈계하는 아빠가 될까? 앞으로 여학생들의 화장 연령은 점점 더 내려갈 것 같은데, 교사로서 아빠로서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