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2K 키드가 본 신도시의 기억, 그리고 주님의 부르심
나는 송파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하지만 대다수의 주말은 부모님을 따라 분당에 다녀온 기억으로 채워져 있다. 자연농원 시절부터 연간회원권을 끊었던 우리 아버지는 내가 이제야 느끼건대 어떤 압박을 느끼셨던 것 같다. 연간회원이라는 일종의 신분을 기어코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셨는지, 아니면 그 회원권을 최대한 사용하기 위해 자주 가야 한다는 생각이셨는지는 모르겠다. 심지어 우리 집에서 롯데월드는 버스로 15분도 안 걸리는 거리에 있었는데 나는 평생 거기에 가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신도시 개발과 함께 분당으로 많은 친척이 이사 왔다. 마침 우리 할아버지 묘소가 광주 오포읍에 있었기에, 우리 가족에게 분당은 방문할 이유도 거쳐갈 이유도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나는 분당에 살아본 적도 없지만 굳이 친척이 이사"왔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서현역 삼성백화점, 율동공원 앞 데일리드림이 있던 먹자골목, 분당차병원 근처 감미옥에서 기억이 그 당시 서울 어느 동네에서의 경험보다 강렬히 남아있다. 찜질방도 처음 유행하던 때. 백화점과 대형할인점에서 무료 셔틀버스를 운영하던 때. 다시는 보지 못할 20세기말의 신기한 광경이 가득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지도 보는 것을 참 좋아한다. 만화를 보는 것보다 아빠 차 좌석 뒷주머니에 꼽혀 있는 지도를 보는 게 더 재밌었다. 사회과부도를 받고 인터넷을 쓰면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지역과 나라의 지도마저 너무 흥미로웠다. 몇 년 전에야 알았지만 신경다양인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한다.
우리 집에서 할아버지 묘소를 가는 길은 이랬다. 집에서 출발해 장지역 즈음에서 동부간선도로를 탄다. 그 지점이 이제는 위례 IC가 된 것 같다. 탄천을 따라 이어지는 그 길 위 바깥 풍경은 야탑 근처에 갈 때까지는 공사장과 농지로 주로 채워졌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동네 길을 타고 탄천을 따라가면, 이매촌쯤에서 한번 꺾는다. 조금 뒤 율동공원이 나오고 곧 태재고개를 넘어가면 광주에 들어간다. 에버랜드에 갈 때에는 그 길을 따라 20여 분을 더 내려갔었다.
태재고개에는 지역난방공사가 있어 멀리서부터 큰 굴뚝을 볼 수 있다. 바로 그전에 나오는 건물이 분당 성요한성당이다. 아시아지역 최대 규모의 성당인 이곳은 1993년에 착공해 2003년에 봉헌되었다. 나는 유년기 이 길을 지나다니며, 성당이 건설되는 모습을 근 1~2주에 한번 꼴로 볼 수 있었다. (사실은 성당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기에 그 옆에 주유소가 더 기억에 남아있다.) 큰 건물이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는 게 나에게는 큰 재미였다. 핸드폰은커녕 차에 탈 때 아무것도 챙기지 않았던 나는 그렇게 창 밖 풍경만 봐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이런 기억 때문에 성인이 되어 한국에 가면 분당을 들러보고 싶었다. 그리고 내 기억 속의 길을 꼭 내 손으로 운전해 다녀보고 싶었다. 아직까지 분당에서 운전해 볼 기회는 없었지만, 그래도 한국에 갈 때마다 나는 기억 속 옛 동네들을 다녔다. 판교라는 신도시도 생겼고, 당시에는 가장 주목받던 새로운 아파트 단지도 내 기억만큼 높고 반짝이지 않았다.
더 신기한 것은 내가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기독교와는 아주 거리가 멀었던 집에서 자랐지만, 나는 성인이 되어 자발적으로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여러 계기가 있었다. 결국 주님이 부르시는 손길이었을 것이다.
분당 성요한성당 또한 그런 부르심의 일환이었을 테다. 그 건물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나의 호기심은 '저 안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어떤 건물이길래 저렇게 웅장한 걸까? 저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까지 이어졌으니까. 90년대의 나는 미래에 가톨릭 신자가 될 거라곤 꿈에도 알지 못했다.
나는 곧 한국에 간다. 이번에는 성요한성당에서 미사를 참례하고자 일부러 시간을 빼두었다. 그곳에서 어린 시절 호기심 가득한 나를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주님께 한 바퀴 빙 둘러 이제야 왔노라고는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