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잔담과 이담 / 네덜란드
네덜란드는 풍차의 나라다. 풍차를 찾아다녀 볼 셈이다. 잔담과 이담, 볼렌담. 암스테르담과 잔담, 이담은 삼각형을 이루고 있고, 이담 아래쪽으로 볼렌담이 있다. 어제 추위에 떤 탓에 오늘아침엔 게으름을 부린다. 아침 식사도 거른 채 늦게 일어나 중앙역에 도착했을 때는 정오가 다 되어서다. 먼저 간 곳은 잔담, 잔세스칸스다. 과거 600여 개의 풍차가 있었지만 산업혁명 이후 풍차는 기계화에 밀려 사라졌다. 이 사라지는 것을 붙잡기 위해 우리나라 민속촌처럼 전통 마을을 재현해 놓은 곳이 잔세스칸스다. 자연마을이 아니라 만들어 놓은 곳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감흥이 좀 떨어지기는 하나 인공적인 느낌은 들지 않는다. 계획된 마을쯤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실제로 이 마을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암스테르담 중앙역 2층에서 버스를 타면 잔담까지 약 50분이 걸린다. 버스 정류장에 내린 후에는 20분 정도 걸어서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
운하 주변으로 풍차가 늘어서 있다.
잔세스칸스의 평화로운 풍경 속으로 풍덩 빠진다.
잔담에서 이담에 가기 위해서는 다시 암스테르담까지 가서 버스를 갈아탄다. 하루를 늦게 시작한 탓에 이미 하늘은 저녁기운을 드리우고 있다. 그래도 한 곳은 더 보고 싶은데… 서둘러 이담으로 향한다. 버스에서 내리자 길에 어둠이 깔린다.
이담에 내리긴 했지만 풍차는 어디쯤 있는지 알 수 없다. 무작정 마을 안으로 걷는 수밖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거리에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이담 역시 마을을 관통하는 운하가 있다. 30분 이상 걸었는데 풍차는 보이지 않고 운하 위로 하늘이 물들기 시작한다. 마음은 바쁘기만 한데 노을이 저리 아름다우면 어쩌나… 김효운 시인은 아는 언어로만 시를 쓰겠다 했다. 나는 아는 어휘로만은 저 노을을 설명할 길이 없다. 모르는 어휘를 찾아내지도 못한다. 하아… 숨 막힌다.
폭이 좁은 운하 위에 아치형 돌다리가 놓여 있다. 돌다리를 덮을 듯 무성하게 잎을 늘어뜨린 나무와 하늘의 조화가 한 폭의 그림이다. 발을 멈출 수밖에.
넋 놓고 노을에 빠져들었던 나는 하늘이 잿빛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서야 다시 걷기 시작한다. 풍차는 마을 안 깊은 곳에 거대하게 서 있다. 바람은 시원하고 해는 저버린 낯선 동네 이담. 돌아갈 걱정보다 그를 만난 기쁨이 앞서니 여기까지 온 수고는 보상받은 셈이다.
볼렌담까지 가기엔 너무 늦었다. 늦게 시작한 아침이 화근이다. 아쉬움을 진하게 남긴 채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