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 암스테르담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이틀째 여정은 인체박물관과 안네의 집, 암스텔 강 유람선 타기다.
인체박물관과 안네의 집은 모두 숙소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있다. 유람선 승선 장소는 안네의 집 앞. 교통편 신경 쓰지 않아서 좋으나 많이 걷게 생겼다.
암스테르담에는 인체박물관이 상설관을 운영하고 있다. 사실 나는 인체 전시에 부정적 견해를 가진 사람이다. 또 언젠가 순회 전시로 한국에 왔을 때 관람했던 전시라 별다른 호기심도 없지만 본토 전시이니 들어가 보기로 한다.
내 생각이 경직된 것인지 몰라도 예전 한국에 왔을 때 관람했던 느낌 그대로다. 인간의 호기심이 참으로 위험하다는 것. 전시관 입구에는 프로젝트 명 ‘행복’이라고 쓰여 있다. 내 느낌은 ‘글쎄’다. 인체를 절단 해체하여 그 신비를 구체화하고 있는 인체 전시. 이 전시를 기획한 측에서는 인체의 숭고함 어쩌고 하면서 전시의 당위를 주장하지만 나는 전시관에 들어설 때부터 몸에 소름이 돋는다. 인체의 움직임을 모형이 아닌 박제인간으로 보여 주는, 너무나 구체적인 전시물 앞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간다.
행복은 구상이 아니라 추상이고 현상보다 관념이다. 그래서 행복은 마음에 달렸다고들 한다. 과학의 눈부신 진보, 예술로 포장된 모호하고 광대한 영역의 호기심 스펙트럼 - 삶에 피로감을 주는 것들이다. 이런 기막힌 전시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인체박물관을 나서 제법 센 비를 맞으며 안네의 집으로 향한다. 30분 단위로 인원을 정해 입장시키고 있어 다음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안네 가족은 나치 정권을 피해 독일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이사한다. 이 집은 안네 가족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숨어 살던 집이다. 안네가 다락방에 숨어 쓴 일기장 ‘안네의 일기’는 나치의 범죄를 얘기할 때마다 생생한 증거로 거론되는 책이기도 하다.
다락방은 책장 뒤로 가려져 있고, 몸을 옆으로 돌려야만 겨우 올라갈 수 있는 계단 위에 있다.
주홍글씨처럼 낙인이 되어버린 유태인 표식. 6살 이상 어린이부터 착용했다.
어둡고 숨 막히는 두 전시관을 관람하는 동안 세포가 긴장으로 팽팽해졌다. 나는 굵어진 빗발을 무시하고 유람선 매표소로 들어간다. 매표소 앞에 네덜란드의 명물 나무신이 놓여 있다.
비 내리는 운하 위로 미끄러지는 배는 낭만 그 자체다. 다리를 쉴 생각으로 지붕 있는 실내로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물길이 아스팔트 도로만큼이나 잘 발달된 암스테르담이다. 운하를 따라 아름다운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눈이 닿는 곳마다 사진 스폿. 배는 바람막이 유리에 난방까지 하고 있어 하루 종일 젖었던 몸이 빠르게 이완한다. 노곤함이 몰려온다. 나는 졸다 깨다 해가며 암스텔 강 위에 떠 있다.
맨 왼쪽, 초록 건물은 암스텔 강변의 자연사 박물관.
오른쪽, 도개교가 열리는 중이다.
맑은 날은 선명해서, 운무 끼인 날은 그 흐릿함이 매력인 암스텔 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