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암스테르담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의 첫날
암스테르담의 첫인상, 한마디로 나는 반해버렸다. 결혼을 앞둔 딸이 있다면 신혼여행지로 적극 추천하고 싶은 곳, 면사포처럼 아름답고 풋사랑처럼 생동감 넘치는 곳이 암스테르담이다. 해수면 보다 낮은 땅,
그래서인지 암스테르담은 축축하다. 사방으로 뻗은 운하는 호수인 듯 잠잠하고 운하 주변으로 독특한 디자인의 건물과 상점이 늘어서 있다. 고흐 미술관으로 첫 일정을 잡는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고흐, 그를 만나다
테오에게…
나는 풍경화가는 아니다. 내가 풍경을 그릴 때도 그 속에는 늘 사람의 흔적이 있다.
테오에게…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깊이 고뇌하고 있다고,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 그런 경지에 이르고 싶다….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발췌했다. 사람과 자연을 사랑한 고흐,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려는 한 인간의 꺾이지 않는 의지에 머리 숙여진다. 그는 특히 사람의 눈을 깊이 들여다 봤다.
테오에게…
“성당보다는 사람의 눈을 그리는 게 더 좋다. 사람의 눈은, 그 아무리 장엄하고 인상적인 성당도 가질 수 없는 매력을 담고 있다. 거지든 매춘부든 사람의 영혼이 더 흥미롭다."
암스테르담에 내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고흐 미술관이다. 고흐가 생애 마지막을 살았던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를 다녀온 다음이라 미술관에서 그의 그림을 대하는 마음은 각별할 수밖에 없다. 뭉클하기조차 한 그의 그림들을 최선을 다해 깊이 보려 애쓴다. 눈에 익숙한 그림들 앞에서 나는 공을 들이지만 내가 가장 좋아한 그림은 ‘생 마리 드라메르의 바다 풍경’이다. 고흐의 생애 동안 크게 누리지 못했을 찬란함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고흐 미술관 내, 외부. 고흐 미술관 현판 글씨가 흥미롭다. 고흐 이름 알파벳(Gogh) 중 두 번째 g를 자세히 보면 마지막 획이 가다 말았다. 그의 잘린 귀를 상징한 디자인이란 설명을 들었다.
한 사람 이름의 단일 미술관으로는 꽤 큰 규모다.
1)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
테오에게, "너는 내 그림을 통해 내가 나만의 관점을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야 “
고흐는 37점의 자화상을 그렸으나 각각 다른 색깔의 눈을 그려 넣었다.
다중 자아의 표현이었을까.
2) 감자를 먹는 사람들
고흐의 많은 그림들 중에서 특히 애정을 쏟았던 그림 몇 점을 고르라면 <감자 먹는 사람들>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동생 테오 생일에 맞춰 이 그림을 보낼 생각이었다. 1885년 4월 30일 편지 말미에 "네 생일에 맞추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라고 쓴 걸 보면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던 모양이다. 그는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겨울 내내 머리와 손 그리는 연습을 했다고 썼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것 같았다고 했다.
고흐는 그의 그림들을 테오에게 보낼 때 액자와 그림을 걸 때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일일이 설명했다. <감자 먹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황금색과 잘 어울릴 것 같다. 혹은 짙게 그늘진 잘 익은 곡물 색 벽지 위에 걸어도 어울릴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배치하지 않고 그림을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적었다.
좀 길지만 고흐의 편지를 옮긴다.
"어둡거나 흐린 배경에서는 이 작품의 장점이 자라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림 내용이 아주 어두운 회색조의 실내를 들여다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삶 속에서도, 램프가 하얀 벽 위로 뿜어내는 열기와 불빛은 관찰자에게 더 가깝기 때문에, 전체 장면을 황금색 불빛 속에서 보게 된다. 물론 관객은 그림 바깥에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그림 주변에는 짙은 황금색이나 구릿빛이 칠해져 있어야 한다. 그 그림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부디 내 말을 잊지 말아라. 황금색 색조와 함께 배치해야 그림이 더 잘 살아난다.... 그림자를 푸른색으로 칠했기 때문에 황금색이 이것을 돋보이게 해 준다."
고흐는 자신이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 했는지도 대개의 그림마다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감자 먹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한다."라고 썼다.
그는 이 그림에 대해 "언젠가는 진정한 농촌그림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감상적이고 나약한 농부보다는 "농부 특유의 거친 속성을 살려 내는 것이 더 좋은 결과가 될 것"이라고 자신의 소신을 피력한다. 다시 그의 편지로 돌아간다.
"여기저기 기운 흔적이 있고 먼지로 뒤덮인 푸른색 스커트와 상의를 입은 시골 처녀는 날씨와 바람, 태양이 남긴 기묘한 그늘을 갖고 있을 때 숙녀보다 더 멋지게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숙녀들이 입는 옷을 걸친다면 특유의 개성은 사라져 버릴 것이다. 농부 또한 일요일에 교회에 가려고 신사복을 차려입었을 때보다 작업복을 입고 밭에 나가 있을 때가 더 좋아 보인다."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농촌생활을 다룬 그림에서 향수 냄새가 나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의 편지에는 이런 말도 있다. 농부를 그리려면 "농부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똑같이 느끼고 생각하며 그려야 할 것이다. "
나는 언젠가 쓴 칼럼에서,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그가 되어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고흐의 말 '농부를 그리려면'을 나는 '농부를 사랑하려면'으로 도치해 읽는다. 창작을 위한 그의 노력에 고개 숙여질 뿐이다. 그동안 내가 이해하고 있던 고흐는 정신병력이 있고, 귀를 자르는 기행을 저질렀고, 가난으로 힘들어했다는 정도였다. 얼마나 피상적인 이해였는지 부끄럽다는 말조차 하기 어렵다.
고흐 미술관을 다녀온 후 읽은 책, <<반 고흐, 영혼의 편지>>는 고흐를 다룬 어떤 영화나 소설 보다 내게 유용했다. 위즈덤하우스에서 펴 냈다. 이는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그대로 번역한 것으로, 마치 고흐의 육성을 듣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많은 사람에게 권하고픈 책이다. 그의 편지에는 인간적인 고뇌, 동생 테오와의 뜨거운 우애가 생명력 있게 드러나 있다.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그가 기울이는 정성,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 작품을 향한 핍진성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3) 담배를 문 해골
고흐는 미술학교에 다니면서 해부학을 공부했다. 담배를 물고 있는 것은 반항기를 묘사한 게 아닐까.
4)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
5) 연인이 있는 정원
고흐는 남편과 아내처럼 서로를 완벽하게 빛나게 하는 색들이 있다고 했다. 남편과 아내처럼 서로를 완벽하게 빛나게 하는 색이라니… 그로 인해 내가 빛나고 있구나 하는 깨달음^^.
그는 대상을 선명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보색을 많이 사용했다. 초록 풍경에 놓인 연인들이 붉은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잘 보면 세 커플, 화면 중앙에 앉아 있는 한 커플이 보인다.
6)르 탱크랭 카페의 아고스티나 세가토리
짧은 한 때 고흐의 연인이었던 아고스티나 세가토리다. 그녀의 눈이 다른 곳을 보고 있다.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은 무얼까.
고흐와 테오는 여자 운은 없었던 듯 보인다. 테오도 거리의 집시여인과 동거하기도 했다.
7) 분홍 과수원
고흐가 프랑스 남부 아를에 도착한 때는 2월이다. 개화기간이 길지 않았던 그 과수원을 그리기 위해 그는 2주 동안 격렬히 그림에 매달린다. 그리하여 완성한 세 장의 그림이다.
왼쪽부터 살구나무, 복숭아나무, 매화나무다. 이는 고흐가 말해 둔, 이 그림을 제대로 보는 방법이다. 왼쪽 그림부터 감상하기 바란다.
오른쪽과 왼쪽의 나무에는 그림자가 없이 강력하고 선명한 보색을 사용하여 나무를 표현하고 있다.
8) 해바라기
단순함과 빛을 발견할 수 있는 해바라기. 꽃송이가 모두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가 하면 시들어 죽은 해바라기도 빛나고 있다.
고흐는 해바라기 작가로 알려지고 싶어 했다고 전한다.
아를에서 고갱을 기다리는 동안도 그는 해바라기를 그린다. 미술관에는 고흐의 해바라기 세 점이 걸려 있다.
9) 고흐의 방
아를의 고흐 방이다. 2층 구석진 방의 창문이 있고, 그는 자신의 최근작을 벽에 걸어두곤 했는데 이 그림에도 자화상 두 점이 걸려 있다. 침대 머리에는 그가 자주 쓰고 다니던 모자가 걸려 있다.
10) 고갱의 의자
고흐는 빈 의자 두 점을 남겼다. 하나는 자신의 낡은 의자, 다른 하나는 존경하는 친구 고갱의 의자다.
고갱은 아를로 와서 고흐와 함께 2개월을 지낸다.
의자 위에는 고갱의 파이프와 초가 놓여 있다. 자신의 의자와 달리 화려하게 표현된 고갱의 의자는 고갱에 대한 고흐의 마음, 존경심의 표현이다.
11) 유리병과 레몬이 담긴 접시
그는 다루기 힘든 유리병을 그리면서 벽을 더 섬세하게 장식한다. 유리에 벽 무늬 색이 반영되고 있다.
이 정물에 그의 서명이 들어 있다. 고흐는 자신이 만족한 그림에만 오직 자신의 서명을 남겼다.
12) 겨울 풍경 속 걷고 있는 연인 스케치
그는 Saint-Remy에 있는 sister Willemien에게 이렇게 쓰고 있다.
"매우 아름다운 겨울을 발견했다. 북쪽과 똑같다. “
그는 남프랑스에서 독일의 겨울에 있었던 어떤 기억을 떠올렸던 듯하다.
그는 눈 쌓인 곳만 왼쪽사선으로 붓을 눕혀 그리고 나머지는 각각 다른 방향으로 그렸다.
13) Langs de Seine, 1887. By the Seine. 센 강가
파리에서 보낸 시간 동안, 고흐는 야외용 이젤과 물감 도구를 종종 들고 다녔다. 그는 늘 흥미로운 주제를 찾아다녔는데 이 그림은 그가 센 강에서 발견한 한 장소다.
그는 먼저 캔버스에 연필로 강의 모습을 스케치한다. 연필 자국을 전부 물감으로 덮지 않았기 때문에 연필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연필 자국은 수평선 부근에서 특히 잘 보인다.
이 그림은 미완성이다. 스케치 후 작업실에서 완성하려고 했을 수도 있지만, 결국 완성하지 못했다.
14) 생 마리 드라메르의 바다 풍경
파도와 물결치는 파란 바다를 인상적으로 그린 1888년 작품이다. 아를 지방을 여행하던 중 여름 까마르그 해변의 생마리 어촌 마을에 도착했을 때 그린 그림이다.
과감한 필치로 캔버스에 스친 파랑과 흰색 외에 초록과 노랑을 파도에 사용했다. 그는 이 색들을 팔레트 나이프로 바르면서 빛을 포착하고 있다.
고흐는 지중해의 색깔에 열광했다. 그는 테오에게 이렇게 썼다.
"지중해는 고등어 색을 닮았어. 시시각각 색이 변한단 말이야. 빛의 변화로 금세 분홍색이 되었다가 회색이 되곤 하니까. 밤에 아무도 없는 해안을 따라 바닷가를 산책했어.
그리 명랑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슬프지도 않았고 그저 아름다웠단다. "
그는 붉은색으로 도드라지게 서명했다. 그는 테오에게 쓴 편지에, 의도적으로 빨간색 서명을 넣었다고 썼다. 그로 인해 푸른 파도가 더 잘 드러나 보인다고. 서명을 가리고 보고, 서명을 둔 채로 멀리서 그림을 보면 서명이 있는 바다가 훨씬 더 선명해 보인다.
15) 해바라기를 그리는 빈센트/고갱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