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종교개혁의 성지, 취리히 당일치기/스위스
취리히- 체르마트- 로이커바드 -루체른까지
내게 스위스는 동화의 나라, 눈의 나라다. 자연 풍광으로는 세계최고가 아닐까. 스위스에서는 도시의 멋보다 삼엄한 자연에 취하기로 한다. 스위스 일정은 취리히- 체르마트- 로이커바드 -루체른까지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출발한 ICE 열차를 타고 가다 바젤에 내려서 취리히행 열차를 갈아탄다. 열차가 취리히 중앙역(Zurich HB)에 나를 내려놓은 시간은 오전 10시. 약 4시간이 걸린다. 취리히에서 다시 체르마트까지, 이어 로이커바드로 이어지는 행로는 쉽지 않다. 무거운 가방을 끌고 여러 번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다 보면 극기 훈련이 따로 없다. 취리히는 동선 상 끼어넣은 도시라 마음이 좀 무덤덤한 상태지만 역에서 곧바로 숙소로 향한 나는 프런트에 가방을 맡기고 취리히 시내로 나온다.
깨끗한 거리에 놓인 책바구니다. 집 앞에 안 보는 책을 이렇게 정갈하게 내놓으면 필요한 사람이 자유롭게 집어간다. 스위스식 재활용 방식이다.
린덴호프 광장에서 바라다 보이는 취리히 풍경. 프라우 뮌스터의 초록 첨탑이 보인다.
린덴호프 광장에서 체스를 두고 있는 스위스 사람들.
성당과 묘지와 방앗간은 마을이 형성되기 위한 기본 요소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어딜 가나 성당이 중요한 방문지가 되곤 한다. 그만큼 가톨릭 세력이 유럽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뜻이지만 스위스에서만큼은 예외다. 스위스는 여느 유럽 국가들과 달리 가톨릭 보다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많은 나라다. 종교 인구도 구교도 보다 개신교도가 많다.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은 인류 역사상 하나의 전환점이 된다. 루터의 95개 조항으로 촉발된 종교개혁의 물결은 스위스에 와서 절정에 달한다. 스위스 종교개혁의 중심에 츠빙글리가 있다. 군주 마크 로이스트와 시민들은 혁신적으로 변화하는 종교개혁을 지지하지만 13개로 나뉘어 있던 자치 주 일곱 개 주는 여전히 로만 가톨릭을 고수하고자 했다. 결국 1531년 카펠 전투에서 츠빙글리는 로마 가톨릭군의 화살에 맞아 사망한다.
(종교개혁과 중립선언은 <<아이굿 뉴스>>,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김재성 교수 칼럼 <종교개혁은 스위스를 통해 전 유럽으로 확산했다>에서 참고함)
지정학적으로 유럽 중심부에 위치한 스위스는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주변국들이 패권을 노리던 땅이었다. 이런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고자 중립을 선언하게 되고, 1815년 3월 20일 나폴레옹 전쟁을 종결하는 비엔나 회의에서 스위스는 중립국 지위를 인정받는다. 같은 해 파리조약에서 오스트리아, 프랑스, 영국, 프러시아, 러시아, 포르투갈, 스페인, 스웨덴 등 8개국이 스위스의 영세중립을 정식 승인한다.(이상, 위키백과)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취리히를 느끼기 위해서 나는 취리히의 3대 교회를 방문하기로 하고 리마트 강을 따라 걷는다. 린덴호프 광장이다. 도시가 크지 않아 한나절로 돌아보기에도 어렵지 않다. 광장에는 달력에서 보던 익숙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광장 바닥에 그려진 대형 체스판, 사람들이 두 손으로 체스 말을 옮기며 체스를 두고 있다. 구경꾼도 여기저기 몰려 훈수를 둔다. 광장 아래로 평화로운 취리히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체스 두는 사람들 옆을 지나 올라왔던 길과 다른 길을 잡아 내려간다.
성 베드로 교회(St. Peter)
린덴호프 광장에서 내려가면서 가장 먼저 만나는 교회가 성 베드로 교회(St. Peter)다. 최초로 개신교 교회의 규칙으로 지어졌다는 성 베드로 교회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회 모습을 하고 있다. 당시 유럽 교회들의 화려함을 읽을 수 없는 검소하고 절제된 모습이다. 교회 안으로 들어서면 아이보리 색의 환한 내벽, 성전 전면 위에는 마태복음 4장 10절이 독일어 고어로 쓰여 있다. 마태복음인가 보다 짐작만 하는 나는 우선 사진부터 찍는다. 독일어 고어는 미주장신대학교 이상명 총장께 묻는다. 독일어 문구는 아래와 같다.
"Du sollst anbeten Gott, deinen Herrn, und ihm allein dienen."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가톨릭 교회만 보던 눈에는 좀 생소한 장면이기도 하다.
성 베드로 교회 첨탑에는 직경 8미터가 넘는 대형 시계가 걸려 있다. 이는 교회 건축물 시계 중 세계 최대라 한다. 시계탑 아래에는 자그마한 창문이 있는데, 파수꾼의 집이었다. 15분마다 밖을 내다보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고 한다. 시계의 나라 스위스의 상징이기도 하다.
성 베드로 교회. 전면에 마태복음 4:10이 독일어 고어로 쓰여 있다(좌). 성전 앞에 성경책이 놓여 있다(우).
성 베드로 교회 뒤편 2층 파이프 오르간과 흰색의 벽 장식
그로스 뮌스터 개신교 교회
그로스 뮌스터는 츠빙글리가 목회했던 교회로 명실공히 스위스 종교개혁의 중심지다. 1519년 1월 1일 츠빙글리가 이 교회에서 첫 설교한 후 스위스 종교개혁에 불이 붙는다.
리마트강변에 우아하게 자리 잡은 그로스 뮌스터 안으로 들어선다. 성전 위에 새겨진 마태복음 문구를 비롯해 세 줄의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이 눈에 들어온다. 이 또한 화려함보다는 간결함을 준다.
그로스 뮌스터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성경책이 놓인 성전(위 좌측). 마태복음 구절이 새겨진 성전 전면부(위 우측). 베드로 교회와 또 다른 느낌의 절제된 인테리어다.
프라우 뮌스터
성모교회로 불리는 프라우 뮌스터다. 마크 샤갈의 작품, 스테인드 글라스로도 유명하다. 샤갈의 창은 왼쪽(북쪽)으로부터 엘리야의 승천을 묘사한 선지자들, 야곱(그의 전투와 꿈을 표현), 그리스도의 삶의 장면들을 보여주는 그리스도, 세상의 끝에서 나팔 부는 천사를 보여주는 시온, 모세가 자기 백성의 고통을 내려다보는 장면을 묘사한 율법까지 다섯 편이다.
프라우 뮌스터의 내부. 우측 사진은 샤갈이 그린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이다.
리마트 강과 그로스 뮌스터 개신교회(아래)
리마트 강변, 라트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