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체른 / 스위스
로이커바드에서 루체른까지 기차로 간다. 중간에 비수프에서 갈아타고 가야 하는 길. 로이커바드가 워낙 시골이라 올 때도 갈 때도 길이 쉽지 않다.
루체른 기차역에 내리자 팔레트를 쏟아부은 듯 다양한 색채의 도시가 눈앞에 펼쳐진다. 루체른 역시 강을 따라 발달한 도시다. 강 폭은 한강보다 좁고 수류는 제법 거세서 폭포 같은 소리를 낸다. 강물 위로는 강가 건물들이 그림자를 드리우는데, 화가와 사진가들을 유혹하기에 이만한 장소가 없겠다.
도시를 어슬렁거리는데 강 건너편에서 나팔을 불고 연주를 하는 사람들 무리가 보인다. 목을 빼고 보니 전통복장을 한 사람들이 길을 가득 메우고 행진 중이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으니 루체른 카니발 기간이 시작된 것이란다. 2월 루체른 카니발은 4일부터 11일까지 계속된다. 거리에서 음식을 팔고, 음료 한 잔을 거저 얻어먹을 수도 있다.
무지갯빛으로 일렁이는 로이스 강 위에,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목조 다리 카펠교가 놓여 있다. 카펠교는 교각 위에 삼각형의 목조 지붕까지 갖고 있다. 다리를 걸으면 지붕 아래에는 익살스러운 그림들이 그려져 있어 다리 감상에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이 다리는 1300년대에 지어졌으나 1993년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고, 현재의 다리는 복제품이라 한다. 이 다리를 건너면 구시가지다. 카니발 행렬이 지나간 바인마르크트 광장, 종이 조각과 먹다 남은 음식이 거리에 나부끼고 있다. 이 말로 스위스 거리가 지저분하다고 판단하지는 말기 바란다. 스위스는 어딜 가나 깔끔하고 사람들은 친절했다. 살인적인 물가도 관광객인 나로서는 기억할 요소다. 감기에 알레르기에, 몸이 무리를 하나 싶어 나는 비싼 걸 알고도 한식집을 찾는다. 비싼 한 끼를 해치우고 다시 길을 나선다.
빈사의 사자상을 찾아간다. 그동안 사진으로만 보던 빈사의 사자상은 절벽에 조각되어 있다. 조각상 앞은 연못을 꾸며 놓았다.
조각의 내용을 보자. 이 조각은 과거, 가난 때문에 프랑스혁명 진압에 동원되었던 스위스 장병을 위로하는 위령비다. 절벽 안쪽의 비석은 가로 10미터, 높이 6미터. 창에 찔려 죽어가는 사자는 프랑스 왕실을 상징하는 백합 문양 방패를 덮고 있고, 그 옆에는 스위스 국장이 새겨진 방패가 있다. 조각상 아래에는 장교들의 이름을 새겨 두었다. 전사자 760명, 생존자 350명이라는 숫자도 있다.
“사자가 낮은 절벽의 수직면 소굴에 누워 있다. 사자가 절벽의 살아 있는 바위로 조각되었기 때문이다. 몸집도 크고 태도도 고상하다. 사자는 고개를 숙였고, 부러진 창이 어깨에 꽂혀 있다. 사자가 지키는 발은 프랑스의 백합 위에 놓여 있다….” (마크 트웨인의 <방랑기> 중에서)
한 때 분노한 스위스 사람들에 의해 백합 문양을 지키고 있는 사자의 앞발을 자르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다행히 지금까지 사자의 발은 온전하다.
전쟁의 기억으로 치면 한반도의 역사를 당할 곳이 없지 싶다. 자국 병사들을 의미 없는 전쟁에 희생시킨 스위스 국민의 분노가 이해되고도 남는다.
아무리 봐도 지치지 않는 루이스 강과 강변 건물들. 찬란한 물반영은 내 기억 속에 영원히 저장될 것이다. 아래 왼쪽 사진 속 뾰족 지붕이 카펠교다.
카펠 교(좌)와 카펠 교 내부 천장 그림들.
빈사의 사자상. 사자의 표정에 고통과 슬픔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