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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진 이성숙 Aug 12. 2023

무거운 짐 내려놓은 자의 얼굴, 리히텐슈타인 왕국

파두츠 / 리히텐슈타인



스위스 루체른에서 파두츠까지의 경로는 쉽지 않다. 루체른에서 우츠나흐Uznach까지, 우츠나흐에서 사르강스sargans, 사르강스에서 다시 파두츠까지 기차로 이동 후 파두츠 중앙역. 여기서 다시 버스로 30분가량 이동해 파두츠 우체국 앞에 내린다.

리히텐슈타인의 수도 파두츠는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는 길목 도시쯤으로 생각하고 큰 기대 없이 숙소를 잡았지만 파두츠는 금융 중심 도시란다. 세계적으로 소국 중 하나가 리히텐슈타인이다. 인구 5만 명 중 3만 명이 수도 파두츠에 거주한다. 국방과 외교를 스위스에 의지하고 있다니, 의무병력제를 운영하는 내 나라 사고로는 불안한 마음이 앞서지만 거리에서 마주치는 그들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하다. 오히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자의 자유로움이 파두츠의 표정이래야 맞을 거 같다.

조용하고 심심한 도시 파두츠, 진정 느리게 살기 원한다면 파두츠가 어떨까. 상점은 오후 4시가 넘자 문을 닫기 시작하고 5시가 되자 커피 한 잔 마실 곳 찾기가 쉽지 않다. 버스가 나를 부린 곳은 파두츠의 중심인 슈테트 거리 끝자락이다. 가방을 밀며 숙소를 찾아 걷는 동안 왼편으로 장크트 플로린 대성당이 보인다. 허리를 펴고 성당을 카메라에 담는다. 성당 아래에 성모 마리아의 피에타 상과 또 다른 동상이 있다. 마리아가 치마를 펼쳐 아기 예수를 어르고 있는 모습이다. 성모상을 많이 봐 왔지만 독특한 장면이다. 마리아 표정이 성스럽기보다 서민적이어서 인상적인 모자 상이다.

작은 다리를 건너 개울을 따라 오른다. 개울은 투명하게 맑고 30센티는 됨직한 물고기가 노닌다. 그렇게 10분을 걸어 호텔에 도착, 짐을 내려놓고 다시 슈테트 거리로 나선다. 플로린 대성당을 지나 식당이 눈에 들어오길 바라면서 어슬렁댄다. 슈테트 거리는 비 온 뒤처럼 깔끔하고 사람도 별로 없다.

조그만 광장 앞이다. 국립박물관이라길래 티켓을 산다. 국립박물관 입장료 10CHF(스위스 프랑), 역사박물관 입장료까지 함께 구입할 경우 13 스위스 프랑을 내면 된다. 13프랑을 내고 박물관 두 곳 입장권을 산다. 국립 박물관은 리히텐슈타인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이곳에서 관찰되는 동물과 조류 박제는 아이들과 함께 온다면 교육적 효과가 있겠다 싶다. 국립 박물관을 나와 보물관으로 향한다. 보물관은 2층에 우표 박물관과 3층에 월드컵 피파 기념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왕관과 알공예품들, 왕가에서 사용하던 칼 등이 전시되어 있고 왕실의 생활 방식을 설명하는 그림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다. 보물을 감상한 후 우표관을 지나 피파 기념관에서 2002년 한일월드컵 기념물을 찾아본 후 밖으로 나온다.

리히텐슈타인은 1912년부터 자국 우표를 발행했다고 한다. 우표 기념관에서는 우정국의 역사, 우편배달부의 이동 수단, 우표 위에 찍던 스탬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은행과 시청, 시청 앞에 조각된 세 필 말 동상을 둘러보고 파두츠 성을 올려다본다. 멀리서 볼 때 라푼젤이 갇혔던 성을 연상시키던 성이다. 산 정상에 돌담이 높은 성은 현재도 리히텐슈타인 국왕이 살고 있다. 산 능선을 지그재그로 돌아 올라가면 파두츠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왕복 2시간의 산책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광장 시청 맞은편에는 리히텐슈타인 센터가 있다. 이곳에서 방문기념으로 여권에 입국 스탬프를 찍어 준다. 3프랑을 받는다. 여권에 도장 찍는 맛은 여행 재미 중 하나인데 유럽에 국경이 사라지면서 도장 찍는 재미도 사라졌다. 리히텐슈타인 여행자 센터에서 도장 찍는 재미를 느껴보기 바란다.

1인당 국민소득이 연간 8만 불인 나라, 한국의 GDP를 생각하면 이 작은 나라를 '작은 나라'로 부를 수가 없다. 왕은 왕대로 시민은 시민대로 자기의 일과 행복에만 열중하는 나라 리히텐슈타인, 규제도 규격도 없어 보이는 평화로운 도시 파두츠.

늦은 점심을 위해 식당을 찾았다. 일식집 메뉴 가격을 보고 놀랐다. 초밥 몇 개와 작은 롤 몇 개가 놓인 도시락이 33유로. 물가 수준이 스위스와 맞먹는다. 가장 싼 메뉴인  도시락을 주문한다. 딱 입맛에 맞는 음식이었지만 배를 불릴만한 양은 아니었다. 호텔에 가서 싸들고 온 죽을 데워 먹기로 하고 계산을 치른다. 아쉬울 것도 바쁠 것도 없는 듯 무심한 도시 파두츠의 하루를 닫는다.

파두츠의 인상은 평화 그 자체다. 국립박물관이나 전시관이라는 곳도 사실은 조악한 편이고 화려함이나 복잡함과도 거리가 먼 도시가 파두츠다. 광장에 명품매장이 있기는 하나, 글쎄, 도시의 구색을 위해서 차려 놓은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길에는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다. 파두츠는 심심한 사람들의 도시다.



루체른 역이다. 나는 지금 파두츠로 간다.


파두츠 중앙역에서 펠트커흐Feldkirch까지 가는 11번 버스 내부. 모니터로 정차 역을 표시하고 그 옆에는 광고 화면이다.


장크트 플로린 성당.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상. 플로린 성당 돌계단 아래에 있다(좌).  프란츠 조셉 2세 부부상. 플로린 성당 앞 정원에 있다(우).


파두츠 의회(좌)와 정부 청사(우) 건물.


피파 박물관이다. 한일월드컵 기념부스도 마련되어 있다.


우표 박물관과 1012년 첫 발행한 리히텐슈타인 우표다. 현재 150유로에 판매한다.


가장 오래되었다는 란데스 은행(좌). 정부 청사를 기점으로 각 주요 지점까지의 거리를 표시한 제로 킬로미터(우)



파두츠 성으로 오르는 산길과 성, 성문이다. 성은 지금 공사 중이다.


왕자의 집(좌)과 공사 중인 파두츠 성(우). 성에는 현재의 국왕이 살고 있지만 경비병도 보이지 않는다.


파두츠 성에서 내려다본 도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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