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 오스트리아
의회 의사당 - 자연미술사 박물관 - 호프부르크 왕궁 - 베토벤 하우스 - 미카엘 성당 - 시 청사
빈 데이패스 8유로. 오늘 일정은 링 라인을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다. 몇 번이나 타고 내릴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링 선 안에 주요 장소들이 모여 있으므로 이동수단으로는 최적이다.
의사당은 신분증을 제시한 후 입장할 수 있다. 겨울 여행 최고 이점은 어딜 가나 사람들로 붐비지 않는 것이다. 신분증 검사를 받느라 잠시 대기한 후 의사당 안으로 들어선다. 의사당 로비에 마련된 다른 주제의 기록관들이 이곳을 박물관인 듯 착각하게 한다. 기록관을 둘러본 나는 카페테리아로 향한다. 카페테리아에는 샌드위치와 커피 자동판매기가 있다. 에그샌드위치와 라테를 받아 든 나는 모던한 감각의 흰색 소파를 찾아 앉는다. 자판기 커피는 저렴하고 맛도 괜찮다. 모처럼 부담스럽지 않은 휴식이다. 들를 곳이 많은 나는 짧은 휴식을 마치고 다시 의사당 로비로 나선다. 의사당 그림이 인쇄된 기념 텀블러를 산다. 엄청 비싸다.
1층 상설 사진전시관에서 평화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사진들이다. 비틀즈, 러시아 여자교통경찰, 알버트 아인쉬타인이 혀를 내밀고 있는 사진 등 우리에게 익숙한 사진들도 많다.
인상 깊은 전시물이 하나 있다. 바둑판처럼 정사각 작은 함을 만들어두고 뚜껑을 열면 그 안에 시민의 권리가 하나씩 적혀 있다. 시민의 권리를 추구하는 의회의 정신이 녹아 있는 전시물이다. 장식적이기도 하다.
의사당 입구는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파르테논 신전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의사당 정면에는 여신상 분수가 있다. 여신상 아래 4개의 토수구가 있는데 이는 과거 호프부르크 왕국의 영토였던 땅의 경계를 의미한다. 정면은 빈 도나우강, 인스브루크의 인강 Inn river, 함부르크 엘베강, 프라하의 볼타 강까지를 뜻한다.
빈 국회의사당 로비의 조형물. 사람들이 전시물을 만지며 교감할 수 있다. 상자 중 하나를 열어본다. 어른들은 반드시 어린이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돌봐야 한다고 적혀 있다.
독일 태생의 이론물리학자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아인쉬타인 박사의 코믹한 표정이 사진기자에게 포착된 것이다. 아인쉬타인의 얼굴 위로 최근 본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아인쉬타인을 연기했던 배우 톰 콘티의 얼굴이 겹쳐진다. 캐스팅 잘 한 듯.
국회 의사당 앞 분수대. 사방으로 난 토수구는 영토의 경계를 의미한다. 오른쪽은 국회의사당 전경.
마리아테레자 광장에 마리아 테레자 동상을 가운데 두고 오른쪽에 자연미술사 박물관, 왼쪽에 미술사 박물관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자연미술사 박물관은 아마존과 판타날의 밀림에 서식하는 동식물 전시.
자연미술사 박물관에는 인류최초의 조각미술품 빌렌도르프의 비너스가 전시되어 있다. 나는 아예, 빌렌토르프의 방이 어딘지 물어서 그곳부터 찾아갔다. 교과서에서 본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실물을 본 것인데,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잠시 멈칫했다. 총길이가 10C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 외, 117kg의 토파즈 원석, 거대한 공룡뼈와 공룡 화석 등이 볼거리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왕궁의 신궁전은 반원형으로 생겼고 그 앞마당을 영웅광장이라 부른다. 영웅 광장에는 오이겐 공과 칼 장군의 기마상이 웅비하고 있다.
여기 2층 테라스에서 1938년 히틀러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합병을 선포하기도 했다. 왕궁 정원에는 모차르트 동상도 서 있다. 봄이 오면 동상 앞 잔디에 음표와 악보 모양으로 꽃이 핀다. 지금은 겨울, 푸른 잔디만 곱게 깔려 있다. 궁정 온실은 아르누보 양식으로 조성되었다.
영웅광장에서 본 신왕궁이다. 아치형 입구 앞에는 사보이 공국 출신의 오이겐 공 동상이, 그 앞에는 나폴레옹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칼 장군 동상이 마주 보고 서 있다.
왕궁 앞 영웅광장은 지금도 국가 대소사를 치르는 곳이다. 1938년 히틀러는 이곳 신왕궁 2층 테라스에서 독일과 오스트리아 합병을 선언한다. 광장에는 이날 30만 인파가 모였다고 한다.
현재 이 건물은 대통령 집무실로 쓰이고 있다.
베토벤 하우스
빈에는 베토벤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이 집은 베토벤이 1804년부터 1815년까지 11년이나 살던 곳이다. 4층 그가 살던 집은 지금은 전시장으로 변모해 있다. 전시장에는 베토벤 교향곡을 들어볼 수 있는 설치물이 있다.
베토벤은 이 집에서 파이조 조곡으로 유명한 ‘엘리제를 위하여’와 교향곡 4번, 5번, 7번과 그의 생애 유일한 오페라 걸작 ‘피델리오’를 작곡했다. 이 집은 파스콸라티 하우스로 불린다. 파스콸라티는 집주인 이름이다. 베토벤은 빈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35년 간을 지낸다. 거의 80번 이상 이사했다고 한다.
파스콸리티 하우스(좌)의 16호실이 베토벤의 아파트다. 4층 그의 아파트로 오르는 계단(우)
빈에서의 베토벤과 모차르트
베토벤은 1770년 독일 본에서 태어난다. 열네 살이던 1784년 그는 모차르트에게 음악수업을 받기 위해 빈을 방문한다. 모차르트는 베토벤의 즉흥 연주곡을 들은 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모차르트는 베토벤을 가르치기 시작했으나 갑자기 어머니 부고 소식이 전해져 베토벤이 본으로 떠나는 바람에 모차르트와 헤어진다.
국립 도서관
지구본을 머리에 인 건물 옥상의 동상이 인상적이다.
성 미카엘 성당
이곳에서 모차르트의 미완성 유작 레퀴엠이 초연되었다. 그의 장례를 치른 후 장례미사 후 레퀴엠 연주, 모차르트 제자가 나머지 부분을 완성하여.
레퀴엠이 연주된 미카엘 성당
성당으로 착각할 만큼 뾰족한 첨탑을 세운 시 청사는 옆으로 시민공원을, 앞으로는 아이스링크를 두어 밤인데도 화려하다. 빈 시민이 사랑한다는 시청사의 야경까지 눈에 담는다.
빈 시청의 낮과 밤 풍경. 시청 앞 야경은 빈의 명물로 꼽힌다. 특히 내가 간 겨울철에는 아이스링크가 개장하여 불빛이 더 휘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