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1) / 체코
걸어서 도시 스캔
프라하는 안단테~~
모차르트가 사랑한 도시, 카프카와 밀란 쿤데라의 도시, 내가 사랑해 버린 도시 프라하다.
당초 프라하 일정은 사흘이었지만, 도시에 반해버린 나는 결국 일주일을 프라하에 머문다. 브르노 일정을 가방 찾느라 보내버린 서운함을 뒤로하고 프라하행 열차를 타기 위해 아침 일찍 역으로 나간다.
프라하 중앙역에 내린다. 역내가 여느 연주홀만큼이나 널찍한데 한 곳에서 음악이 들려온다. 출구를 찾으면서 한편은 피아노 소리를 더듬으면서 걷는 중이다. 출구 앞, 수염이 덥수룩한 초로의 남자가 피아노를 치고 있다. 벌써부터 감동하면 안 되는데… 작은 심장이 터져 버리면 큰일인데… 피아노엔 무거워 보이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고 건반 한쪽에 종이컵이 놓여 있다. 야릇한 부조화 속 평화다. 프라하는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짙은 유화물감처럼 묵직한 색깔로, 원색에 검정을 덧칠한 느낌으로.
흰 종이컵에 지폐를 넣고 물끄러미 서서 그의 연주를 듣다 밖으로 나온다. 택시를 잡아 숙소로 향한다.
게스트 하우스 로열로이드 아파트에 별점 5개를 준다. 고풍스러운 외관과 널찍한 방, 높은 천장, 밝은 조명, 조리할 수 있는 싱크대, 엘리베이터와 구도심 중앙이라는 좋은 위치, 가격 메리트까지 만족스러운 숙소다. 게스트 하우스라기보다 아파트형 호텔 정도로 불러야 할 곳이다. (내가 경험한 게스트 하우스는 예외 없이 심각한 결함을 한 가지씩 갖고 있었다!)
카를로바 거리 20번지의 아파트 앞은 작은 광장이다. 아래층에 스타벅스가 있고 아파트 맞은편에는 굴뚝아이스크림집이 있다. 굴뚝아이스크림은 프라하의 명물 디저트다! 작은 광장 중앙에는 아이리시 맥주 바가 있어 언제든지 내려가서 한잔할 수도 있다. 집을 나와 왼쪽으로 돌면 카를 브리지, 오른쪽으로는 골목 끝까지 상점이 늘어서 있다. 기념품점과 작은 식료품점, 유리공예품점, 러시아인형을 파는 가게, 바느질로 앞치마 아기 옷 등을 만들어 파는 수제 옷 가게가 나란히 늘어서 있는데 따스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다. 가게들은 밤에도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어 한겨울 골목을 온기로 북적이게 한다.
200미터 정도 되는 오른쪽 골목 끝에 또 다른 작은 광장이 펼쳐진다. 광장 끝에 국립도서관과 오페라 극장이 있다. 공연이 없는 날의 광장은 한산하다. 잘게 쪼갠 대리석으로 도포한 바닥은 겨울비가 내리면 바둑알이 자르륵 부딪는 듯한 정겨운 소리를 낸다.
빈을 일컬어 음악 도시라 하는데, 음악과 문학과 예술적 영감이 도시 전체를 휘감고 있는 프라하를 무엇으로 명명해야 할지 난감하다. 한마디로 나는 프라하에 취해버렸다. 공산정권 치하, 나치의 악마적 통치를 거쳐 오늘에 이른 프라하다. 짙고 깊은 프라하의 하늘, 사람들은 유순하고 조심스럽다. 좁은 골목 잠깐의 부딪힘에도 진심을 다해 사과하는 프라하 사람들이다. 더 이상 상처받아서는 안된다는 듯이.
우수에 젖어 낮게 드리운 겨울 하늘 아래로 걷는다. 흰 도화지를 빼곡히 채운 크레파스 빗금처럼 패딩코트 위로 빗방울이 줄무늬를 만든다. 빗방울은 이내 아스팔트 위에 찰랑일 만큼 거세졌다. 음울한 생각을 한 탓인지 나는 잠시 방향을 잃는다. 크지 않은 도시다. 어디로 걸어도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비는 좀 더 내려도 괜찮다. 젖은 도로를 내려다보며 나는 일단 속을 채우기로 한다.
카를교 왼편의 마네스푸 브리지를 건너자 오른쪽에 오래된 카페 사보이가 보인다. 사보이에서 미모사 한 잔과 에그베네딕트로 식사한 후 다시 길을 건너 강변을 따라 걷는다. 블타바강의 온화한 물결 사이로 백조 무리가 노닌다.
20분쯤 걸어 레넌 벽에 도착, 사진을 찍느라 왁자한 사람들 틈에 끼어 있다가 자리를 뜬다. 시멘트가 거칠게 발린 길을 내려와 왼쪽으로 언덕을 오르면 프라하성과 마주친다. 나는 다시 카페 사보이 앞으로 와서 택시를 잡는다. 좀 더 걷자와 택시를 타자 사이에서 갈등한 후다. 프라하성까지 또 20분 넘게 걸어야 하는데 비를 맞으며 광장 곳곳을 쏘다닌 터라 산길을 걷고 나면 하루를 여기서 닫아야 할지 모른다. 겁먹은 달팽이처럼(언제나처럼) 실리적 선택을 한 것이다. 프라하성은 건물 하나가 아니라 9세기부터 건축하기 시작한 거대한 성채 단지다.
공산국 체코 시절, 자유를 갈구하는 체코 청년들이, 이 벽에 존 레넌의 노래 가사를 적었던 것으로부터 레넌 벽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의 노래 마인드 게임즈 Mind Games(Make Love, Not War)와 이매진 imagine의 가사는 자유와 평화를 담고 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공산 정권에 반대하는 그림과 낙서를 하기 시작하면서 레넌 벽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체코 민주화 운동의 한 상징인 셈이다.
Raising the spirit of peace and love~ (평화와 사랑의 정신을 키우자), 마인드 게임즈의 한 소절이다.
1000년 넘는 세월을 살아남는 동안 프라하성의 옥쇄는 공작들, 왕들, 대통령들, 찬탈자의 손까지 두루 거친다. 통치자들은 그때마다 성에 자신들의 표적을 남겨 놓기도 했다. 두 명의 호위병이 지키고 있는 명예의 궁은 여황제 마리아 테레지아와 아들 요셉 2세의 모노그램이 새겨진 성문을 통해 들어간다. 1614년 황제 마티아스 1세에 의해 마무리된 마티아스의 문은 프라하 바로크의 상징이 된다. 요셉 플레츠니크의 가늘고 긴 국기대는 첫 체코 공화국 시절에서 유래한다(이상 김(추) 미순 번역, 프라하 가이드 북에서 참조). 성 내부는 공개되지 않아 건물 외관만 보며 걷는다.
근위병이 서 있는 성 안쪽으로 들어가면 프라하성 뒤쪽의 성 비투스 대성당과 이어진다. 건물이 완성되기까지 700년이 더 걸린 비투스 대성당은 다양한 정면 양식을 보여준다. 르네상스 성탑 위에 고딕 성단, 바로크 양식의 탑 지붕, 네오고딕의 서쪽 건물까지.
성당까지 감상한 후 성당 마당을 나서 언덕을 조금 내려가면 곧바로 황금소로다. 궁전에 사용될 물건들이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대장장이 마을 정도 되겠다. 한때는 궁전 호위 병사들의 숙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 아주 작게 꾸며진 마을인데(원래 있던 마을을 보존한 것이다), 공산정권 당시 죽임을 당한 사람들 흔적이 전시되어 있다. 고문 도구들과 상상도 못 했던 갖가지 고문 방법을 보고 경악한다. 좁은 통 안에 꼼짝없이 서 있도록 고안된 좁다란 쇠 통, 못이 박힌 고문 의자, … 구토가 날 듯하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고문은 제도권 하에서 죄의 대가로 받는 형벌이다. 그 정당성 여부가 어떻든 법적 장치 아래 있었으니 억울함을 고발할 곳도 마땅히 저항할 수도 없었을 테다. 사회 전체가 집단무의식에 빠져 가혹한 고문을 당연시했던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우울한 생각을 하며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조금은 아름다운 황금소로의 골목길에 들어선다. 이곳에 사람이 기거했을까 싶을 만큼 작디작은 가옥이다. 조그만 출입문과 낮은 대들보. 살던 사람의 흔적은 없고 지금은 모두 기념품점이나 상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허리를 숙여 몇 집을 들락거린다. 그중 22호 하늘색 벽의 책방 앞에 발을 멈춘다. 프란츠 카프카의 누이가 살던 집, 카프카는 1916년과 1917년 사이 몇 달을 이곳에서 지내며 단편소설 <시골의사>를 위한 에피소드와 그의 마지막 장편소설 <성>을 집필한다. 카프카에 대해서는 뒤에 다루기로 한다.
황금소로를 빠져나와 프라하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뷰 포인트로 향한다. 프라하성 아래로 블타바강과 프라하의 붉은 지붕들을 전망하며 나는 참았던 숨을 토해낸다. 눈앞에 떠 있는, 황금소로에서 보았던 장면들을 지우고 싶어서다.
붉은 지붕의 도시 프라하. 원색의 대비가 프라하의 과거와 현재만큼이나 선명하다. 아름답게 바라보아야 할 풍경이 바이올린의 슬픈 선율처럼 꺼이꺼이 심장을 적신다. 블타바의 물결이 시야에 들어올 때까지 나는 성벽에 몸을 기댄 채 한참을 기다린다. 느리게 회복되는 도시의 풍경. 프라하는 안단테다. 내려오는 언덕길에 아주머니가 그림을 판다. 블타바강과 카를 교를 그린 수채화 한 점을 산다. 겨우 마음이 진정된다.
택시를 타고 마네스푸 브리지를 건너 댄싱하우스 앞에 내린다. 노을이 반짝이는 건물을 덮치는 중이다. 댄싱하우스는 구도심을 돌며 보았던 건물과 완전히 다른 현대식 건축물이다. 미국인 댄서이자 배우 프레드 아스테어(석탑 부분)와 진저 로저스(유리 건축물 부분)가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을 형상화했다는 댄싱하우스는 건축 당시 프레드와 진저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지금은 댄싱하우스라는 귀여운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댄싱하우스는 캐나다 출신 미국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했다. 게리는 로스앤젤레스에 살거나 다녀온 사람에게는 익숙한 이름이다. 로스앤젤레스에는 게리 뮤지엄이 있고 다운타운의 디즈니 콘서트홀을 게리가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도 게리 설계다. 좁은 부지에 멋들어진 건물을 완성한 프랭크 게리의 천재성에 빠져보는 시간이다.
도시를 걷는 동안 해가 진다. 블타바강을 달군 노을이 댄싱하우스 마저 붉게 물들인다. 프라하에 밤이 내린다.
프라하 중앙역 출입구 앞의 피아노와 피아노 치는 남자. 그는 클래식 곡들을 쉬지 않고 연주 중이다. 사슬처럼 피아노를 묶고 있는 열쇠는 그가 연주하는 음악과 슬픈 대조를 이룬다.
카를 대교
작은 공연장(좌)과 집 앞 굴뚝아이스크림 가게(우). 공연을 보려고 7유로쯤 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 굴뚝아이스크림은 거의 매일 사 먹었다. 굴뚝처럼 구운 빵 위에 아이스크림을 올려주고, 토핑도 추가할 수 있다. 토핑을 더하면 어찌나 큰지, 한 끼 식사 분량이다.
블타바강가 후미진 곳의 낙서들. 바로 옆 강물에는 백조가 놀고 있다. 레넌 벽을 찾아가다 잠시 강가로 내려왔더니 낙서 벽이 있다. 눈에 띄는 낙서들도 많다. 그중, 체코의 국부인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 그림과 함께 Life is Mystery, his life is History! 가 돌출낙서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프라하를 돌아다니는 동안 곳곳에서 하벨과 마주쳤다. 프라하 시민이 얼마나 그를 사랑하는지 알게 하는 낙서다.
체코 국부, 바츨라프 하벨
1936년 생. 바츠라프 하벨은 프라하 명문 지식인 가문에서 태어나 1989부터 1992년까지 체코슬로바키아 마지막 대통령을 지내고,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된 후 체코 초대 대통령이 되어 1993-2003년 동안 체코를 통치한다. 그는 1968년 체코 민주화 운동인 ‘프라하의 봄’의 주역이며, 1989년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비폭력 민주화 운동인 ‘벨벳혁명’을 주도한다. 그는 극작가로서도 활동했다.
레넌 벽 가는 길이다. 뒷편에서 다룰 생각이지만 프라하에는 재미있는 동상들이 많다. 풍차가 돌아가는 작은 강물 위, 강물에 뛰어 들 것같은 조각상이 있다.
존 레넌을 추억하는 레넌 벽. 실은 레넌을 추억한다기 보다 체코 민주화 운동의 한 현장이라고 봐야겠다.
웅장한 프라하 성.
황제의 성 뒤에 붙어 있는 비투스 대성당
황금소로에 전시된 고문 도구들. 역겹고 슬픈 그림자까지 담을 수 있다면 공산주의 통제사회 진면목을 더 잘 보여줄 수 있을 텐데, 그 느낌은 내 살갗에만 남아 있다.
황금소로에서 내려다본 프라하의 붉은 지붕들
블타바 강의 평화로운 모습이다.
블타바 강 야경.
블타바 강가 댄싱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