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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진 이성숙 Aug 30. 2023

억눌린 지성, 카프카를 찾아서

프라하(2) / 체코



천문시계가 있는 구시가 광장은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광장이다. 이 구시가 광장을 중심으로 카프카의 일생이 펼쳐진다.

독일어 학교에 다니고 독일어를 쓴 까닭에 카프카를 독일 작가로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카프카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유대계 소설가다. 그의 부친은 그를 프라하의 약 10% 상류층이 다니는 독일어 학교에 보냈다.

카프카가 나고 자라고 사망하기까지 생을 바친 곳이 프라하다. 이곳에서 그의 흔적을 찾는 일은 암울한 시대 한 지식인의 삶을 더듬는 일이다. 나치 점령 시절, 그는 유대인이었으나 유대 사회에 속하지 못하고(독일어를 쓴다는 이유로), 독일 지식인층에서는 유대인이라고 배척당한다. 그가 사랑하는 세 누이는 나치에 의해 희생당한다. 어느 날 아침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 잠자(소설 <변신>의 주인공), 이 황당한 주인공은 카프카 자신이 아니었을까. 갑자기 알 수 없는 일로 체포되어 피의자 신분이 되어버린 은행원 요세프 K의 고독은 카프카의 심장이 아니었을까.

1. 그가 태어난 집. 올드타운 광장의 유 레드니스가 5번지(U. Radnice 5, Old town), 1883년 3월 카프카는 이곳에서 태어난다. 성 니콜라스 성당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노란색 4층짜리 건물이다. 1층에 식당이 영업 중이다. 과거에는 카프카 얼굴 상이 벽에 붙어 있었나 본데, 누가 떼어 갔는지 카프카 생가라는 표식이 어디에도 없다.

2. 올드타운 광장. 

중앙에 쌍둥이 같은 뾰족탑을 가진 틴 마리아 성당이 보인다. 올드타운 광장의 밝은 분홍색 킹스키 궁(맨 왼쪽 건물) 뒤편에 독일어 문법학교가 있었다고 한다. 카프카가 1890년 이 학교에 다녔다는 기록을 믿고 킹스키 궁 뒤편 골목을 걷고 또 걸었으나  문법학교를 찾지 못했다.

3. 천문시계 바로 옆 올드타운 2번지 집. 

그가 살던 집이다. 르네상스 스타일의 U Minuty다.

4. 결핵을 앓던 말년에 그가 살던 올드타운 광장 5번지.


5. 올드타운 광장, 킹스키 궁전과 천문 시계탑 사이의 아인슈타인 스퀘어 카페.

17번지 집이다. 베르타 판토바 부인이 운영하던 이곳 살롱에 화요일마다 철학 모임이 열린다. 1911년 프라하의 카를 대학교에서 강의한 아인슈타인 등 유명 인사가 이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여한다. 카프카와 아인슈타인은 이 카페에서 자주 만나 철학적 담론을 펼쳤다고 한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와 문학가가 매주 만나 담소를 나누고 철학적 견해를 펼치다니 상상만으로도 가슴 뛰는 얘기다. 나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하고 해 질 녘까지 앉아 있었다. 테이블이 많지 않은 좁은 실내다. 판토바 부인이 매력적이었을까, 카페는 특이점 없이 평범하기만 하다.



6. 카페 루브르

나로드니 가 20번지. 1900년대 카프카가 자주 가던 카페다.

1902년부터 같은 자리에서 영업하고 있는 카페 루브르다. 100년이 훨씬 넘은 카페 내부는 올드한 느낌의 벽지와 역사적 기록을 담은 액자들로 장식되어 있다. 입구에는 아침부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다. 카프카, 아인슈타인 등 당대 유명 지식인이 자주 들르던 곳이다.

7. 카페 아르코

카프카의 절친, 그의 유작을 불태우라는 유언을 받았으나 카프카 작품을 출판한 막스 브로트가 사랑한 카페다.



8. 웬세스라스 거리.

올드타운에서 웬세스라스 거리를 따라 20분 걸으면 바츨라프 광장이 나온다.

역사박물관인 듯한 건물과 동상이 있는데, 동상 옆 광장 모퉁이에 진드리스스카라는 보험회사가 있었다. 카프카는 이곳에서 1906-1907년까지 보험법률직원으로 일했다.

9. 스타로나바 유대교회당(좌)과 유대인 마을(우)

스타로나바 교회당은 신 구 회당이 있는데 본당 서쪽 벽에 두 개의 전구가 박힌 유리판이 있다. 누군가의 사망기념일에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데 그중 하나가 카프카 전구다. 이곳 다락방에 골렘이 살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내가 갔던 날은 티켓부스가 잠겨 있어 안으로 들어가 보지 못했다. 어딜 가나 예약하고 계획 짜서 다니는 성미가 아니다 보니 이렇게 낭패를 종종 겪는다.


월드 오브 카프카의 눈’ 전시장. 음습한 분위기의 전시다. 카프카가 살던 시간으로 돌아가 그의 무덤 같은 삶을 느껴보는 장소다.



말라 스트라나 거리의 카프카 박물관.

구형 전화기를 들면 그의 작품 <그레고르 잠자>(한국 번역본 제목 ‘변신’)를 들을 수 있다. 내부를 돌아보는 동안 눈물이 왈칵 올라왔다.




10. 카프카 박물관


카프카 박물관은 두 군데에 나뉘어 있다. 다소 무거운 음향으로 전시되고 있는 월드 오브 카프카의 눈(World of Kafka’s eyes)에서는 카프카가 경험한 세계를 비디오로 전시하고 있는데 두 바퀴를 돌았지만 나로서는 난해하다.

다른 한 곳은 말라 스트라나 거리의 카프카 박물관. 안경, 여행 가방 등 카프카의 개인 소지품과 세계 각국어로 번역된 그의 작품들, 그의 일생을 그린 비디오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카프카의 친필 원본 원고와 편지 모음, 카프카의 일기장 등이 전시되어 있고 녹음되어 있는 카프카 작품을 들어볼 수도 있다. 나치에게 학살당한 프란츠 카프카의 세 여동생 발레리, 가브리엘레, 오틸리에 사진이 있다. 그 옆의 고문당하는 장면 조형물은 작은 크기임에도 강렬한 섬뜩함을 준다.

박물관 뜰에는 체코 출신 설치 미술가 데이비드 체르니의 오줌싸개 분수 조각상이 있어 박물관에서 안고 나온 무거움을 덜어 준다.



카프카 박물관 앞의 오줌싸개 분수 조각상.




11. 황금소로에 있는 카프카 누이의 집


고딕양식 프라하 성벽에 붙어 지어진 작은 집들이 황금소로다. 16세기부터 루돌프 2세의 경비대 숙소로 사용하던 곳이지만 16세기 후반에 들어 금은세공업자들이 거주하게 되면서 황금소로라는 이름이 붙는다.

이곳에는 금속을 금으로 바꿀 수 있다는 연금술에 대한 환상으로 신비한 이야기 하나가 전해져 내려온다.

20세기 초 황금소로에 유흘Uhle박사라는 철학자가 살았다. 그는 자신의 집에 비밀 실험장을 갖고 있었고 날마다 연금술 실험을 했다. 그는 마법에 관한 고서를 사느라 돈을 모두 써 버린다. 어느 날 그의 집에서 폭발이 있었고 곧 화재 진압반이 들어갔으나 유흘 박사는 사망한 후였다. 그의 손에는 노란 돌이 들려 있었는데, 훗날 그것이 금으로 밝혀진다. 그러나 어떻게 그가 쇠로 금을 만들었는지는 아직까지 아무도 모른다.

22번지 하늘색으로 벽을 칠한 누이의 집에서 카프카는 1916-1917년까지 살면서 작품 <성>을 쓴다. 그는 고독의 3부작이라 불리는 세 편의 미완성 장편소설을 남기는데 <성>은 그중 하나다. 지금 이 집은 서점으로 사용 중이다.

12번지 집은 소설과 시나리오 작가인 지리 마라 네크의 집으로 이곳에서 시인과 소설가, 예술가들이 자주 모였다.

14번지 예언가의 집. 마담 드 테베라는 1차 대전 때 아들을 잃은 예언가가 있었는데 그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예언 한 가지씩을 발표한다. 그중 2차 대전 중 나치의 패배를 예언하여 죽임을 당한다.

그밖에 서쪽에 흰 탑이 있는데 여기에 지하감옥과 고문실이 있다. 연금술사 에드워드 켈리도 이곳에 수감되었다 사망한다. 마지막 죄수가 1743년 탑을 떠난다.

황금소로. 이 골목 22번지 누이 집에서 카프카가 잠시 거주한다. 겨우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좁은 대문과 그보다 좁은 실내를 가진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곳에 다락방까지 있었다니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그 다락방에서 카프카는 글을 쓰고 생활했다.




12. 유대인 묘지 지구


이곳 21 지구에 카프카와 가족이 묻혀 있다. 아래 세 개의 이름은 나치에 의해 학살된 카프카의 누이들이다.

약 12,000개 묘비가 빡빡하게 자리 잡고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에 ‘세계 10대 공동묘지’로 소개되기도 했다. 묘역은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채 비교적 잘 관리되어 있다.

유대인 묘지 지구. 구 시청사에서 걸어서 6, 7분 거리다.



작정하고 카프카의 흔적을 찾아 걸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카프카나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대할 때면 뭔지 모를 유대감을 느끼곤 했다. (민음사에서 간행하는 밀란 쿤데라 작품 번역본은 책이 나오기 무섭게 내 서가에 꽂힌다. 쿤데라 전집을 소장한 셈이다) 체코 민주화 운동은 내 조국 한국의 현대사를 떠올리게 하고, 그늘감과 깊이가 느껴지는 체코인의 정서는 태생적 한을 지닌 한국인의 그것과 닮아 있는 것이다. 오늘 나의 업적은 상상 속 슬픔과 연민을 구체적으로 확인했다는 점이다. 동선 정리를 못해 광장을 이리저리 누빈 기억, 천문대 앞은 몇 번이나 지났던 것인지 그곳에서 사진을 찍은 사람이 있다면 내 얼굴은 열 번도 더 찍혔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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