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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진 이성숙 Sep 13. 2023

온천 맛집, 헝가리

에게르 잘록, 헤비츠 / 헝가리

헝가리의 온천

-세체니, 에게르잘로크, 헤비츠 호수온천


헝가리라 하면 부다페스트 야경을 떠올릴 사람이 많겠지만 헝가리는 온천 왕국이다. 전 국토의 80%가 온천지대다. 석유 시추를 위해 땅을 파다가 온천이 터지고, 금맥을 찾다가도 뜨거운 물이 솟아오르는 땅이다.


세계의 온천을 꼽는다면, 터키의 파묵칼레, 일본의 하코네, 헝가리 세체니, 대만의 신베이터우, 아이슬란드의 블루라군 정도다. 대만 신베이터우와 일본 하코네는 짙은 유황 냄새와 산 전체에 하얗게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장관인 곳이다.

목화의 성이라는 터키 파묵칼레는 눈부신 흰색 석회 호수로 탄산온천이다. 클레오파트라가 이곳에서 목욕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블루라군은 아직 경험하지 못했으나 바다 중앙에 온천이 솟는다니 신비할 따름이다.


헝가리 온천 세 곳을 작심하여 다녀왔다.



세체니 온천

가장 유명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부다페스트의 세체니 온천. 부다페스트 도심에서 30분 거리에 있어 현지인은 물론 여행자들이 다녀오기도 어렵지 않다.  

로마 때부터 운영되어 왔다는 역사적 가치뿐 아니라 1913년에 지어진 네오 바로크 양식의 온천 건물을 보는 재미도 있다. 웅장한 외관에 섬세한 조각을 넣은 실내 장식이 눈까지 즐겁게 한다. 두 개의 샘에서 솟는 물이 섞여 운영되는 세체니는 대형 노천 온천과 노천 수영장 외에 약재탕, 맥주탕 등 모두 13개의 크고 작은 스파를 갖추고 있다. 물 온도는 18도- 40도까지 다양하다. 온천수에는 황산염, 칼슘, 마그네슘, 불소 등이 포함되어 척추 질환에 효과적이라 한다.

세체니 온천 부근에는 회쇠게 공원(영웅공원)과 바이더훈야드 왕궁, 감각적 디자인의 박물관(museum of ethnography)이 있어 이삼일 시간을 보내기에 부족하지 않다.


유럽인에게 인기 있는 헝가리 세체니 온천이다. 우측 위 사진은 맥주 스파다.




에게르 잘로크 소금온천과 미녀의 계곡

에게르는 부다페스트 북동쪽 승용차로 1시간 반 거리다. 부다페스트가 유럽의 보석이라면 에게르는 헝가리의 보석이라는 별명이 있다.

오전에 세체니 온천에 다녀온 후 에게르로 향했다. 에게르는 작고 예쁜 와인마을과 에게르잘로크 소금언덕으로 유명한 장소다. 소금 언덕에서는 온천이 솟는다. 소금온천이다.


와인마을은 미녀의 계곡이라는 별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과거 포도를 수확한 후 으깨는 작업을 미녀들이 했다는 데서 그런 별명이 붙었단다.

지표에서 일어나는 신비한 자연현상으로 대표적인 장소는 터키 파묵칼레와 미국 제1호 국립공원 옐로스톤이다. 그와 견줄만한 것이 에게르의 소금온천이다. 규모는 파묵칼레나 옐로스톤에 비할 수 없이 작으나 바닥에서 소금이 솟아 대지가 온통 하얗게 말라 있는 모습은 신비함 그 자체다. 온천에는 약한 유황냄새도 난다.


비커베르(황소의 피)

소금온천에서 막다른 길이라 생각될 만큼 좀 더 올라가면(승용차로 5분 정도) 미녀의 계곡이다. 미녀의 계곡에서 생산되는 대표적 와인이 ’황소의 피‘다.

발 닿는 대로 와이너리 한 곳의 문을 밀고 들어선다. 젊은 남자가 와인이 즐비한 장 앞으로 나를 안내한다. 사전 정보 없이 찾아간 터라, 나는 대표 와인이 뭔지도 몰랐다. 시음이나 하고 나올 요량이었으므로 나는 직원에게 ‘이 가게 대표 와인을 맛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단번에 ‘황소의 피’를 들어 보인다. 황소의 피로 만들었어? 포도로 만든 게 아니고? 의구심 가득한 내 표정을 본 직원이 생기 있게 웃으며 전해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때는 16세기. 오스만튀르크가 헝가리를 침략했을 때다. 8만 대군의 튀르크 군을 상대해야 하는 에게르의 병사는 고작 2000명. 숫적 열세를 개탄한 성주는 이 전투에서 전사하게 될 병사들을 위해 창고를 열어 음식과 와인을 맘껏 먹고 마시게 했다. 병사들은 정신없이 와인(레드 와인)을 마셨고 와인은 수염과 옷을 붉게 물들였다. 다음 날 아침 시작된 전투에서 병사들은 붉은 와인으로 범벅이 된 몸으로 초인적 힘을 발휘하여 적군에 맞섰고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자 튀르크 군 내에 이상한 소문이 퍼졌다. 에게르 군이 밤새 황소의 피를 마시고 전투에 나섰다는 것. 결국 튀르크 군은 38일 만에 에게르에서 물러난다. 이후 에게르의 레드 와인은 ‘황소의 피’라는 무섭고도 귀여운 이름으로 불려 내려온다. 직원은 비커베르 유래 설명에 이골이 난 듯, 당장 가이드를 하라 해도 부족함 없어 보인다. 비커베르는 에게르 사람들의 자존심이자 자랑이다.  미녀의 계곡에는 작은 와이너리가 U자 곡선을 그리며 늘어서 있다. 각 집마다 개성 있는 맛의 와인을 생산한다. 비커베르도 집집마다 맛이 다르지만 비커베르 사랑만은 한결같았다. 당연히, 비커베르 한 병을 산다. 이 잔 저 잔 시음하느라 과음한 나는 까닭 없이 기분이 좋아져서 사지를 흔들어대며 건들건들 계곡을 누빈다. 내 생에 이런 날이 다시 있으랴. 나무 냄새, 흙냄새, 휘파람 같은 맑은 공기, 순한 사람들, 정성스런 음식, 이곳은 천국이 아닐까.


세체니 온천 가는 길에 만난 카페가 있는 작은 호수. 호수 위로 옅은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신기해서 손을 담가 본다. 따끈하다. 이 따듯한 물에서 청둥오리가 물질을 한다. 새들도 온천에 적응한 모양이다.



에게르 잘록 소금언덕. 터키 파묵칼레를 떠올리게 하는 지형이지만, 파묵칼레는 석회수이고 에게르 잘록은 소금물이다. 뒤로 보이는 건물은 온천 리조트.



미녀의 계곡을 알리는 미녀동상분수와 와이너리, 레드 와인 비커베르. 미녀의 계곡 와이너리는 지상에 건물을 세운 게 아니라 이렇게 땅을 파서 만들었다. 동굴 같은 이곳은 와인 저장에 좋은 온도를 제공한다.


에게르의 동네 사람들을 위한 노천 소금 온천이다. 나도 이곳에서 온천욕을 즐겼다. 일과를 마친 동네 사람들이 달빛 아래 모여서 목욕도 하고 정담도 나눈다. 온천장 바로 옆에는 간단한 스낵바가 있다.



예쁘고 조용한 에게르 마을.



헤비츠 온천 호수

부다페스트에서 남서쪽으로 2시간 20분을 운전하면 작고 아늑한 도시 헤비츠다. 헤비츠에는 세계 최대의 유황온천호수가 있다.

유럽 최대규모라는 세체니 온천과 에게르 소금온천을 거치고 연이어 유황온천이라니 이런 호사가 또 있나…. 피부는 연이은 온천욕으로 말할 수없이 보드랍다.

부다페스트 세체니 온천에서 에게르와 헤비츠로 이동하기 위해 자동차를 빌렸다. 대중교통으로는 5시간 내지 7시간이 걸리는 거리지만 자동차로는 세체니에서 에게르까지 1시간 반, 에게르에서 헤비츠까지 3시간 10분이면 닿는다.


작고 고요한 마을 헤비츠에 들어서자 길에서도 모락모락 김이 솟는다. 헤비츠유황온천은 세계최대크기의 온천호수다. 두 번째 큰 온천호수가 발라톤 호수마을의 케스트웨이다. 역시 헝가리에 있다. 발라톤은 경치가 장관이라 하니 다음에 꼭 들러볼 일이다.


헤비츠의 자연호수 온천이다. 깊이가 낮은 곳은 2미터, 최고 깊은 곳은 38미터다. 전원 스티로폼 튜브를 사용하게 되어 있다. 호수 주변에는, ‘안전요원이 없습니다. 튜브를 가지고 들어가세요’라고 적혀 있다. 물은 두려울 정도로 투명하다. 수온은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한겨울의 호수는 28도 정도다.  


저녁을 맞는 헤비츠다. 온천욕을 끝낸 나는 이 길을 따라 숙소로 돌아간다. 작은 마을이라 호텔이 없다. 동네의 살림집 한 채를 게스트 하우스로 빌렸다. 길 바닥 곳곳에서 하얀 김이 피어오른다.




감상, 여행 중간 점검

여행이 막바지다. 부다페스트에서 사흘을 머물렀다. 편안하고 느긋한 일정이었다. 이제 부다페스트를 떠나 어디로 갈까. 이곳에 좀 더 있을까, 새로운 도시로 갈까, 아니면 귀국 편 비행기를 타야 하는 리스본에 가서 여유 있는 일정을 가질까.  쫓기듯 다니는 여행은 하고 싶지 않으므로, 일단 새로운 도시는 포기한다. 부다페스트에 좀 더 있거나 프라하에 다시 가고 싶기도 하다. 크루즈로 잠시 들른 몰타와 시칠리 섬에도 다시 가고 싶다. 흠… 고민 끝에 남은 열흘을 리스본에서 쓰기로 한다. 다시 가고 싶은 곳은 다음 기회를 만드는 게 좋겠다. 지금 간다고 해도 아쉬움은 여전할 테니까.

포르투갈에서 여행 일정을 시작하면서 리스본을 남겨 두었었다. 귀국행 비행기가 리스본 출발이므로  어차피 가야 할 곳이고, 공항과 먼 도시에 있는 것은 좀 불안하기도 하여 마지막 여행지를 리스본으로 정했던 것이다.  시간을 잘게 쪼개면 한 도시 정도는 더 볼 수 있겠지만, 리스본에서 장기체류(?)하기로 맘을 정한다.


헝가리에 와서 처음으로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노천 온천에 몸을 담그면서, 아이구 좋다, 를 연신 퍼부을 엄마가 벌써 상상된다. 노구로 비행기 타기가 두렵다 하시니 그럴 기회가 오려는지 모르겠다. 온천과 자연이 아름다운 헝가리는 치안도 좋고 물가도 싸다. 부모님 모시고 오기에 좋은 여행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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