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1) / 포르투갈
부다페스트에서 리스본까지는 항공으로 이동했다.
매력적인 항구라는 뜻의 리스본, 60일 여행의 마지막 기착지인 리스본의 첫날이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선다. 전날 온라인으로 사 둔 리스보아 카드를 받아야 한다. Cais do Sodre 역에 있는 관광 안내소 에스크 미 리스보아에 들른다. 이틀 자유이용에 35유로. 리스보아 카드는 리스본 내의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38개 박물관과 관광지 입장을 무료로 할 수 있는 리스본 패스 카드다. 특히 리스본 주요 명소를 잇는 28번 트램까지 카드로 이용할 수 있어 무조건 구입했다. 성수기에는 28번 트램을 타기 위해 1시간 이상씩 기다리기도 한다는데 겨울 여행이라서인지 트램 타는 데 어려움은 없다. 성수기 여행자라면 28번 트램과 루트가 비슷한 12번 트램도 추천한다.
여행을 시작한 후 패스를 사 본 적이 없는데, 리스본 일정은 8박 9일이다. 시내를 돌아다닐 작정이라 패스 구입이 편하고 경제적일 것 같고 실제로 오늘 하루 이용한 교통비만으로도 본전은 뽑았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코메르시우 광장. 테주 강과 면해 있는, 리스본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광장이다. 광장 중앙에 주제 1세(Jose 1세) 동상이 테주강을 바라보고 서 있다. 본래 이곳에는 마누엘 1세의 리베이라 궁전이 있었지만,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때 붕괴되고 그 후 폼발 후작이 광장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이런 이유로 궁전광장으로도 불린다. 대지진 당시 국왕이었던 주제 1세 동상을 광장에 둠으로써 보는 이들에게 이 자리에 궁전이 있었음을 상기시킨다.
광장을 등지고 강변으로 발을 옮기면 쉴 새 없이 수면을 차고 날아오르는 갈매기떼와 마주친다. 반짝이는 강물과 흰 날갯짓에 시선을 강탈당한 채 오래도록 서 있었다. 강물이 찰랑이는 계단 위에서는 무명 악사가 기타를 연주한다. 무명이라 함부로 말했지만 녹음하고 싶을 만큼의 명연주다. 오전 10시가 조금 지난 시간, 너무 이른 탓인지 기타 케이스 앞에 놓인 검정색 바구니가 비어 있다. 강변에는 모래조각가(조각이라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가 작은 바구니를 옆에 두고 공룡을 만드는 중이다. 비어 있는 바구니가 행위자의 진지함과 대비되어 고단해 보인다. 나는 빈 바구니에 동전을 떨구고 기타 연주자의 바구니에도 남은 동전을 쏟는다. 갈매기에게도 인사를 건넨 나는 하늘을 우러르며 광장을 가로지른다.
코메르시우 광장 앞, 테주 강의 갈매기들이 쉬지 않고 물을 차고 난다.
노란색 구식 꼬마트램을 타고 싶어 안달이 난 나는 광장 끝에 있는 트램 정거장으로 향한다. 정거장에는 손님이 없다. 혹시 트램이 너무 늦게 오는 건 아닐까 걱정이 들어 배차 시간을 확인한다. 15분마다 한 대씩. 중학교 때 등교 시간, 만원 버스를 기다리는 정도의 인내심이면 충분하다.
노란색 트램
트램을 타자마자 내린 곳은 성 안토니오 성당 앞. 안토니오 성당과 리스본 대성당이 바로 옆에 붙어 있다. 안토니오 성인이 태어난 곳에 지어졌다는 안토니오 대성당,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건물을 감상하며 안으로 들어간다. 고딕 성당이 날카로운 화려함을 지닌 것에 비해 바로크 식 성당은 우윳빛 우아함을 가졌다. 제대 앞에는 성 안토니오가 아기 예수를 한 손으로 안고 있는 조각이 있다. 좁은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안토니오 성인이 탄생한 방도 볼 수 있다.
트렘 길 옆, 언덕에 서 있는 안토니오 성당과 내부. 안토니오 성인이 아기 예수를 한 손으로 안고 있다. 안토니오 성당 뒤로 리스본 대성당이 보인다.
1147년 착공한 리스본 대성당은 지어진 지 800년이 넘었지만 그 견고함으로 인해 1755년의 리스본 대지진도 견뎌냈다. 세월을 덧입은 낡고 뭉툭한 느낌의 성당이다. 현재 리스본 대주교좌가 이곳에 있다. 리스보아 카드로는 25% 할인요금이 적용된다.
리스본 대성당 외관과 내부
리스본 대성당 종탑.
다시 28번 트램을 타고 내린다.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 리스본 수호성인 성 빈센트 동상 뒤로 리스본 구시가인 알파마 지구 붉은 지붕들과 바다인 듯한 테주 강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알파마 지구 전경. 리스본 구시가지다. 알파마 지구 앞으로 테주 강이 흐른다.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에서 본 풍경.
이렇게 길가에서 체리주를 판다.
알파마 지구의 속살. 좁은 골목을 따라 놓인 풍경이다.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를 즐긴 후 옆으로 난 돌계단을 내려가면 3미터가 채 넘지 않을 폭의 아치를 지난다. 아치에는 리스본의 역사가 만화로 그려져 있다. 만화를 살펴본 후 가파른 계단을 따라 계속 내려간다. 계단은 테주강을 끼고 계속된다. 체리로 담근 술을 초콜릿 컵에 담아 파는 가게와 노점상이 차례로 나온다. 6유로에 한 잔. 진하고 달콤한 체리맛 알코올에 기분이 좋아진다.
계단은 아래로 한참 동안 이어지는데 오른쪽 건물 벽에 산타루지아 엘리베이터라 쓰여 있다. 21호 집(개인 집으로 보인다.)으로 조심스레 들어간다. 흰 계단이 가파르게 위로 올라가도록 놓여 있고 0층에 엘리베이터가 있다. 유럽 나라들은 지상 첫 층을 0(zero) 층으로 표기한다. 그러니까 한국 사람 개념의 1층은 그들의 2층이다. 엘리베이터는 3층이 마지막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좁은 통로를 따라 나오면 갑자기 앞이 툭 트인다. 여기가 산타루지아 전망대다.
산타루지아 전망대는 올라오는 길에 들렀으므로 나는 계단을 따라 계속 내려간다. 골목은 내려갈수록 좁아진다. 내 호기심도 깊어간다. 여러 차례의 지진, 특히 1755년의 리스본 대지진에도 끄덕 없이 살아 난 알파마 지구의 미로 같은 골목은 그토록 신비하다. 건물 곳곳에 흠집이 나 있고 베란다 밖으로는 빨래가 펄럭인다. 누군가 쓸어둔 듯 거리는 말끔하다. 낡았으나 누추하지 않은 풍경이다. 데자뷔 같은 익숙함을 주는 곳, 알파마의 골목은 도시의 여백이다.
골목 안에는 파두를 공연하는 가게들과 선술집, 기념품 가게와 입맛을 돋우는 메뉴판을 내 건 식당이 곳곳에 있다. 어디서든 쉬어 가며 걸을 수 있다.
골목 끝에 이르러 부서진 성벽을 본 후 다시 계단을 거슬러 오른다. 산타루지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오르면 길은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와 다시 만난다.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에서 상 조르제 성까지는 트램을 타면 3분, 걸어서 13분. 그러나 다음 트램은 25분 후에 온다(요일과 시간대에 따라 트램 배차 간격이 다르다). 흠, 걷자.
상 조르제 성은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이다. 돌을 높이 쌓아 올린 성벽은 웅장하고 단단하다. 성채 꼭대기는 리스본에서 가장 높은 곳의 전망을 자랑한다.
성에서 공작을 키우는지 화려한 깃을 가진 공작이 주변에 함께 걸어 다닌다. 공작 울음을 들은 적이 있던가… 처음 듣는 공작 울음은 우아한 자태와 달리 늙은 닭울음(닭울음보다 더 허스키하다) 같다. 그 부조화에 웃음이 터진다.
상 조르제 성의 웅장한 성벽
상 조르제 성에서의 조망. 리스본 전망대 중 가장 높은 곳이다.
제로니무스 행 버스에 오른다. 수도원에 대한 관심 보다도 원조 에그타르트 집에 가기 위해서. 제로니무스 성당은 몇 년째 리모델링 중이다. 웅장한 겉모습만 사진에 담고 페스트리 데 벨렘, 원조 에그타르트 집으로 향한다. 예전보다 줄이 길지 않아 다행이다. (6년 전에 왔을 때는 여름이었고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던 곳이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에그타르트 집에서 나선 시간, 5시 20분이다. 버스를 타고 아 브라질레이리아를 찾는다. 포르투갈 국민 시인 페르난도 페소아가 자주 가던 카페다. 12번 트램 끝 루아 판퀘이로스 역에 내려 걷거나 지하철을 타고 시아두 광장에 내리면 된다. <불안의 서>의 저자 페르난도 페소아는 리스본에서 나고 자란다.
카페 브라질레이리아, 페르난도 페소아가 자주 앉던 자리에 그의 동상이 앉아 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이 어딜까 상상하며 가게 앞 거리를 둘러본다. 카레 브라질레이리아에는 시그니처 메뉴가 있다. 페르난도 페소아 얼굴이 그려진 디저트 '스위트 라이스'다. 여기서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온다.
카페 브라질레이리아의 페르난도 페소아
리스본에 있는 동안 여러 차례 갔지만 항상 빈자리가 없는 브라질레이리아 카페다. 페소아 초상이 그려진 시그니처 메뉴, 스위트 라이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