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2) / 포르투갈
오전에 가까운 몇 군데를 방문한 후 곧바로 시인의 정원을 찾아 오에이라스에 가볼 참이다. 그곳에 페소아의 무덤이 있다.
페소아 하우스와 카페 브라질레이리아, 시인 정원의 페소아 무덤까지가 오늘의 코스다. 저녁은 포차에서 소주를 찌그리기로 한다. 막걸리가 있으면 좋겠다만.
아침 일찍 알칸타라 전망대를 찾는다. 바이후 알토 지구 언덕에 있는 알칸타라 전망대에서 상 조르제 성과 리스본 시내를 전망할 수 있다.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촬영지이기도 한 알칸타라 전망대는 노을과 야경이 아름다운 곳. 저녁에 한 번 더 오기로 하고 강 건너 도시를 둘러본다.
알칸타라 전망대
알칸타라 전망대에서. 가운데 산 꼭대기에 상 조르제 성이 보인다.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바로 이 장면이 알칸타라 전망대에서 촬영되었다. ‘사실, 인생을 결정하는 극적인 순간은 종종 놀라울 정도로 사소하다 ‘. 뿐이 아니라 리스본의 시간을 안은 골목길과 트렘, 기차역을 연민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타임 아웃 마켓(좌)과 산타 후스타 리프트(우). 오에이라스 가기 전 잠시 들른 산타 후스타 리프트다. 상 조르제 성 위에 오르면 산타 후스타 리프트를 중심으로 새 날개인듯 리스본 시가지가 양 옆으로 펼쳐져 있다.
타임 아웃 마켓에서 아점을 하기로 한다. 특별한 기억보다 편안한 속을 위해 익숙한 메뉴를 찾는다. (장기 여행에 자주 위장 탈이 났기 때문이다.) 한식의 세계화가 이곳까지 못 미친 모양이다. 아쉽게도 한국식은 없고 초밥집만 보인다. 초밥으로 아점을 마친 후 포르투갈 전통 디저트 케이크로 후식. 나름대로 코스로 식사를 마치고 페소아의 집을 찾아 나선다. 페소아 하우스는 크지 않지만 매우 독특하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꾸며져 있다. 관객은 전시물과 교감하면서 페소아를 느낄 수도 있다.
페르난도 페소아(1888년- 1935년), 포르투갈어 최고의 시인이자 20세기 유럽문학의 기린아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유언처럼 그가 쓴 마지막 문장, “내일이 무엇을 가져올지 나는 모르겠다(I know not what tomorrow will bring).” 와 페소아와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장 “얼마나 많은 나란 말인가(How many am I?)”를 떠올리며 페소아의 집으로 들어간다. 집 안에는 그의 분신 같은 문장들이 낯선 방문객을 맞는다. 질문인 듯한 그들 앞에서 잠깐씩 발이 묶였다 떨어진다. 인천에서 리스본까지 날아오는 동안 나는 쉬지 않고 <불안의 서>를 읽었다. 페소아를 만나기 전에 그를 알아야 할 거 같아서다. 결국 알아낸 건 아무것도 없다. 수많은 자아를 구현한 그답게, 그의 수필집 <불안의 서>도 분절음을 낸다는 것 정도.
페소아는 100개가 넘는 이명異名을 가진 작가로 알려져 있다. 120여 개나 되는 이명과 불안은 현대인에게 던지는 화두이자 페소아 자신의 외로움 아니었겠나.
페소아가 자주 가던 카페 ‘아 브라질레이리아’ 옆에 오래된 서점이 있다. 서점 구경이나 하려고 들어갔다가 그의 시집 <메시아>를 발견하고 값을 치른다. 포르투갈어로 쓰인 시들을 읽을 수는 없지만.
지금은 페소아 기념관으로 쓰이고 있는 카사 페르난도 페소아(R. Coelho da Rocha 18), 이 건물 1층 오른쪽 18호가 페르난도 페소아의 집이다. 그는 이 집에서 1920년부터 1935년 사망할 때까지 15년을 산다. 4층짜리 건물. 포르투갈은 지상층을 0층부터 세므로 맨 위 층은 3층이 된다. 3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그가 집필하며 사용하던 타자기가 먼저 손님을 맞는다. 안으로 들어가면 페소아를 그린 수묵화 세 점과 유화 한 점이 걸려 있고 옆으로 그의 저서들이 전시되어 있다. 거울 방에 들어서면 혼란스런 음향과 함께 벽면의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How many am I? 100개가 넘는 자아를 가졌던 페소아를 떠올리며 심연으로 빠져드는 시간이다. 한 사람 속에 하나의 자아만 가진 이가 존재할까? 상황에 따라 다르게 표출되는 나를 페소아는 간과하지 않고 세상 밖으로 끌어냈던 것이다.
2층엔 그의 서재와 페소아의 책을 만져보고 읽어볼 수 있도록 테이블 위에 편안하게 책들이 놓여 있다. 입구 왼쪽에 게임 룸을 지나치지 말자. 글이 쓰인 플라스틱 패널을 하나씩 뽑아 읽어 본 후 마음 닿는 곳에 다시 꽂으면 나만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기발한 페소아 기념관의 아이디어다. 게임룸 안쪽 벽에는 Somewhere in the maze of who I really am 이 쓰여 있다.
나의 관심은 1층 페소아의 방이다. 그의 방에는 침대와 커다란 나무 문갑이 놓여 있고 안쪽으로 그의 친필 원고들이 인테리어 인 듯 천정과 벽을 장식하고 있다. 침대 위로는 푸른 색 조명으로 페소아의 친필 원고가 타이핑 되듯 수놓인다.
생전에 4권??의 책만 발표했을 뿐인 페소아다. 그의 사후 이 문갑 안에서 3만여장의 노트와 메모 등이 발견되고 그것을 엮은 것이 페소아의 리스본이다. 확인할 것!! 원고 더미 속에서 또 하나의 문장을 발견한다. I know not what tomorrow will bring. 1층에는 그와 관련된 사진들도 걸려 있다. 페소아의 성장기 사진들과 가족사진, 다운타운을 걷고 있는 사진, 하나 뿐인 초상화가 그곳에 있다.
0층엔 기념품 샆이다.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페소아의 집
페소아의 침실. 침대 위에는 그의 시가 형광불빛으로 흘러내리고 있고, 궤짝에 아무렇게나 들어 있던 페소아의 육필 원고가 지금은 침실 옆 방의 천장과 벽을 장식하고 있다. 중간 우측 사진은 페소아의 작품을 한 조각씩 떼어 써 놓은 패널이다. 패널은 관람객이 아무거나 빼서 다른 곳에 꽂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면 이야기는 새로운 흐름으로 바뀐다, 게임처럼.
리스보아에서 오에이라스까지는 기차로 40분 정도. 오에이라스 시인 정원에는 포르투갈을 빛낸 시인들 동상이 각자의 특징대로 조각되어 있다. 각 동상에는 조각가 이름과 연대가 함께 쓰여 있다. 오에이라스 백작이 조성한 시인 광장은 약7만 평이나 되는 거대한 규모다. 입구에는 당대 시인들이 모여 담소하고 토론하는 장면의 조각이 마련되어 이곳이 시인 정원임을 알려 준다. 나뭇잎 모양의 화단 안에 시인과 그의 가족이나 지인들을 함께 두었다.
너른 정원은 느긋하게 산책하기에 그만인데 묘역이라기보다 야외 갤러리 느낌이다. 이곳에는 현재 60명 시인들 동상이 있다.
페르난도 페소아는 ‘이야기하는 시인들’을 지나 100미터 쯤 오르면 볼 수 있다. 정원 안내도 55번이 페소아 구역이다. 흰 색의 말끔한, 페소아 이미지를 그대로 살린 동상이다. 그는 중절모에 동그란 안경을 쓰고 왼손에 원고뭉치인 듯한 종이를 말아 쥐고 있다.
오에이라스 시인 정원. 당대 유명 시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좌측 상단)
오에이라스 시인 정원에는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문인들의 무덤과 그들의 동상이 서 있다. 휴식과 문학적 영감이 필요할 때 찾아가면 좋겠다.
시인 정원의 페소아. 후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사진으로 너무 익숙한 하얀 페소아가 보인다. 나는 정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그를 찾기 위해 정원을 오래도록 누볐다. 정원 지도를 봐가며 직원에게 물어가며 찾아낸 페소아다. 그의 작품을 읽고 나면 이 동상의 표정이 이해된다. 한 사람 탁월한 작가를 만나기 위해 오늘 참 많이도 헤맸다.
시인 정원에서 보이는 전망, 대서양이다. 오에이라스는 리스본 근교 최고 부촌이다.
오에이라스를 떠나 리스본으로 돌아오자 하루가 저문다. 캄포 드 오리크 거리를 따라 테주 강으로 걸으면 28번 트램 종점이다. 줄을 서 트램을 타고 시아드 광장에 내린다. 광장 모서리에 카페 브라질레이리아가 있다. 페르난도 페소아가 자주 가던 카페다. 사람들이 앉은 가장자리 테이블에 페소가 동상이 앉아 있다. 페소아 옆에 앉아 오렌지 주스 한 잔을 홀짝이고 일어선다. 저녁은 포차에서 하기로 했으므로.
한국식 소주포차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비탈길을 오른다. 귀한 한국식당이다. 아직 오픈 전, 젊은이 몇 명과 함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다 안으로 들어간다. 실내는 순식간에 사람들로 꽉 찬다. 서울의 포차처럼, 약간의 어수선함과 왁자함이 달동네 같은 골목길과 그럴듯하게 어울린다.
리스본의 한식당 소주 포차다. 소주와 맥주와 막걸리를 펼쳤다. (그 중요한 사진이 없군. )
2004년 제작, 한국에 2007년 개봉된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시간이 적잖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추천영화 반열에 오르곤 한다. 열차, 특히 야간열차가 주는 감성적 어감에 리스본이라는 낯선 도시가 주는 미지의 이미지가 복합되어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호기심을 일으키는 영화다.
영화 시작되자마자 화면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문장이 자막으로 뜬다. “…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그레고리우스가 충동적으로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타게 되는 배경은 이 문장으로 함축된다.
그레고리우스를 따라 스위스 베른에서 리스본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고교 고전문학 교사인 그레고리우스는 어느 날 다리 난간 위에서 위태롭게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는 여인을 끌어내리면서 인생에 정해진 길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한 권의 책과 리스본행 야간열차표 한 장을 들고 즉흥적으로 자신의 삶을 ‘영혼의 떨림’에 내맡긴다.
리스본에 도착한 그는 책의 저자를 만나고, 책 속 주인공인 의사이자 작가 아마데우 프라도의 행적을 추적한다. 아마데우 프라도는 1920년 태어나 1973년에 사망한 포르투갈의 실존 인물이다.
영화 배경은 1932년 ~ 1968년까지 36년 간 살라자르 독재 정부 시기다. 의사였던 아마데우는 리스본의 도살자로 불리는 비밀경찰 멘데즈를 치료하여 살린 대가로 마을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한다. 그가 구한 비밀경찰 멘데즈는 저항 조직의 비밀을 모두 알고 있는 스테판니를 잡기 위해 혈안 된다. 멘데즈는 스테판니의 소재를 알려주지 않는 주앙의 손을 망가뜨린다. 레지스탕스의 치밀한 저항 속에서도 결국 그들의 아지트는 발각되고 저항 요원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시간은 현재로 돌아와 강물 다리 난간에서 뛰어내리려던 빨간 코트의 여인은 멘데즈의 손녀로 확인된다.
영화는 이렇게 마무리되지만 반독재 저항운동은 계속되어 1974년 봄, 포르투갈에는 살라자르 독재에 맞서는 무혈혁명이 일어난다. 시민들이 이 혁명군을 환영하고 지지하는 의미에서 카네이션을 단다. 이름하여 카네이션 혁명 또는 리스본의 봄으로 불리는 포르투갈 민주화 운동이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영화의 줄거리 보다도 아마데우 프라도 박사의 책 <언어의 연금술사>에서 인용되는 문구들이다. 대사에는 페소아를 연상시키는 문장들도 있다.
그 책(언어의 연금술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 뭐였냐는 안과의사의 질문에 그레고리우스의 대답, “인생의 진정한 감독은 우연이다. 잔인함, 연민, 매력이 가득한 감독. “ 여행이 우연에 대한 기대이고 보면,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갈망하는 이유가 짐작된다.
이런 말도 있다. “요란한 사건만이 인생을 바꾸는 결정적 순간이 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운명이 결정되는 드라마틱한 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할 수 있다. “
중년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기차표 한 장 달랑 들고 떠난다. 무미하고 안정된 그레고리우스가 치열하고 열정적이었던 아마데우의 삶을 추적하면서 영화는 ‘삶이란 무엇인가’하는 화두를 남긴다.
마지막 장면, 베른행 기차를 타려는 그레고리우스에게 안과의사가 다가간다. “이곳에 있으면 안 될까요?” 우연이 만들 또 하나의 걸작을 예감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