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5) / 포르투갈
성모 발현지, 절벽마을 나자레-푸니쿨라와 해풍에 말린 생선과 청춘의 바다
리스본에서 2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나자레에 내린다. 4세기 이스라엘 나사렛에서 온 성직자가 나무로 만든 작은 성모 상을 옮겨온 데서 도시 이름이 유래한다(참고:위키백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잉태한 곳이 이스라엘 나사렛이다. 무슨 연유로 성모 상이 이곳까지 왔는지 알 수 없으나 같은 이름을 가진 나자레 역시 축복받은 도시다. 한낮의 나자레 앞바다는 신의 은총인 듯 은빛으로 반짝인다. 그 이름이 은의 해안(Costa de Prata)이다.
오후 2시, 코스타 드 프라타. 난생처음 보는 바다다. 총천연의 바다, 안개 낀 바다, 노을 드는 바다를 다 보았으나, 눈이 시리도록 새하얀 햇살 담은 바다라니! 다이아몬드를 빻아 뿌린 듯 희게 반짝이는 바다는 일출의 과장된 희망도, 석양의 멜랑꼴리도 아닌 청춘의 바다다! 가슴을 열어 한아름 기지개를 켜고 싶은 바다다.
바다를 보석으로 수놓은 태양은 골목에 내걸린 추레한 빨래에도 닿아 열기를 뿜는다. 바삭하게 마른빨래가 푸른 하늘 아래 연처럼 펄럭인다.
백사장에는 해풍에 말린 생선을 펼쳐 놓은 좌판이 줄지어 있다. 주름투성인 채 검게 그을린 얼굴을 한 노인에게 생선을 흥정하여 사들고 푸니쿨라를 타러 간다. 푸니쿨라는 절벽 윗마을과 아랫마을을 오가는 교통수단이다. 3분 남짓의 푸니쿨라를 타고 윗마을로 오르는 동안 나자레의 해안가 풍경이 줌아웃한다.
절벽 마을을 이리저리 걷다 보면 작은 창고 같은 흰 건물을 만난다. 지붕에 십자가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냥 지나 칠 법한 꼬마 성당이다. 노사 세뇨라 성당, 안으로 발을 들어 놓으면 십자가 상 양쪽에 꽃이 놓인 소박한 제대가 있고 옆으로는 지하로 내려가는 좁은 통로가 있다. 질박한 외관이나 작은 규모와 달리 천장과 벽이 온통 푸른 아줄레주로 장식되어 있다. 성당 지하에는 나무 성모상 모형과 함께 안내문이 있는데, 성모 상을 이곳까지 운반해 온 한 수도사가 기도로 날을 보내다 여기서 사망했다는 내용이다. 진품 성모 상은 바로 옆 파롤 다 나자레 Farol da Nazare 성당에 모셔 두었다. 성모 마리아가 젖가슴을 드러내고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특이한 형상이다.
성모 상이 나자레로 온 이후 기적도 일어난다. 1187년 경, 사슴 사냥에 나선 귀족 푸아스 로우피노(Fuas Roupinho)는 사슴을 쫓다 절벽에서 떨어질 뻔한 사고를 당한다. 이때 성모가 나타나서 그를 구해주었고, 푸아스 로우피노는 이를 기념하여 수도사(성모 상을 들고 온)가 죽은 자리에 성당을 지었다 한다. 노사 세뇨라 성당이다. 세뇨라 성당은 성모 발현지로 순례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줄레주를 찬찬히 살펴보면 사슴 그림을 발견할 수도 있다.
성당 오른쪽에는 대서양을 조망할 수 있는 자리(수베르쿠 전망대)에 작은 기념비가 있다. 1939년 항해의 왕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로 떠나기 전 나자레의 성모를 찾아 무사귀환을 기원했던 곳이라 전해진다. 당시 풍습에 따라 그는 처녀의 목걸이를 이곳에서 금 목걸이로 교환했는데 심한 폭풍우가 칠 때 이 목걸이를 바다에 바치고 무사히 항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테마여행 신문 2020년 4월 9일 자, 조명화의 글에서).
*나사렛에서 온 원형 성모 상은 옆으로 좀 떨어져 있는 옆의 성당, 파롤 다 나자레 Farol da Nazare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으며 노사 세뇨라에는 모형 성모 상을 전시하고 있다.
성당을 뒤로하고 절벽마을 흙길을 걷는다. 해안에서 보이던 빨간 등대가 보인다. 등대 아래쪽은 한여름 파도가 31미터까지 치솟는다 한다. 서퍼들의 성지로 통한다는 나자레, 2월의 파도는 잠잠하기만 하다. 등대 기념관에는 전설적인 여름을 기록한 서핑 장비가 진열되어 있고 서퍼 사진과 공중으로 나는 흰 파도가 흑백사진으로 전시 중이다. 등대로 향하는 길목에 사슴 동상이 서 있다. 성모 발현지가 이쯤인가….
나자레 시 문장에는 절벽마을을 상징하는 성벽 아래 등대와 파도, 십자가와 물고기 문양이 새겨져 있다. 나자레를 설명하는 아이콘들이다.
나자레 해변
나자레 해변 앞으로 난 좁은 도로(좌)와 뭔가를 기념하기 위해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는 부서진 건물(우)이다.
성모가 나타났다는 노사 세뇨라 성당 내부. 아줄레주가 아름답다.
수도사가 이스라엘로부터 들고 온 나무 성모상(좌측 위). 파롤 다 나자레 Farol da Nazare 성당(우측 위).
나자레 절벽 마을에서 내려다본 풍광(좌측 아래). 자그마한 노사 세뇨라 성당(우측 아래). 세뇨라 성당 앞에 바스쿠 다 가마 기념비가 서 있다.
아랫마을(해변가 마을) 풍경
거대한 바위 위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우). 윗마을(절벽 마을)과 아랫마을(해변 마을)을 잇는 푸니쿨라가 보인다.
성모가 나타나 사냥하다 실족한 귀족을 구했다는 전설이 남겨진 사슴언덕이다. 사슴언덕 아래로 노란 야생화가 덤불을 이루고 있다.
나자레의 오후. 바다가 어찌나 반짝이던지…
나자레에서의 푸짐한 식사. 해풍에 말린 저 생선을 사 와 숙소에서 구이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