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재밌게 살기
하와이 여행을 다녀온 후 취미가 하나 늘었다. 하와이안 댄스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야기가 있는 춤이라기에 흥미로웠고 젊었거나 늙었거나 구애됨이 없으므로 배워 두면 아무 데서 건 뽐내 볼 수 있으리라는 속셈도 한몫했다. 동작도 요즘 아이들의 춤처럼 빠르거나 복잡하지 않아서 따라 하기 만만하게-사실 만만히 쉽지만은 않다- 느껴지기도 했다. 춤이든 노래든 재주 없는 사람이라 어딜 가나 난 참 재미없는 부류에 속한다. 그런데 이제 비장의 무기를 마련하게 되었으니 은근히 흥이 났던 거다.
하와이 원주민인 폴리네시안들에 의해 발전된 하와이안 댄스 훌라는 반복되는 리듬과 단순한 율동이 매력적인 춤이다. 그 율동은 수화를 닮아서, 의미 단위로 끊긴 동작만 익히고 나면 특별히 어려울 게 없다. 나야 몸치이니 진도가 더디긴 해도 말이다. 관객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각 동작의 의미만 이해하면 별다른 해설 없이도 쉽게 읽힌다. 팔을 출렁이는 동작은 '파도', 손을 높이 올려 원을 그리고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면 '달', 가슴 쪽에서 바깥으로 손을 밀어내는 동작은 '떠난다' 등, 이것을 이어 읽으면 '물결치는 달빛 속으로 그대가 떠납니다' 정도가 되겠다. 춤 한 편이 시 한 편이다.
현란한 하체 동작과 달리 상체나 손의 움직임이 섬세하고 느리게 돌아가는 것은 이렇듯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체는 추임새나 후렴에 가까워 흥을 돋우는 것이고 상체 동작이 본류가 된다.
춤에 음악이 빠질 수 없다. 훌라에 사용되는 하와이안 전통 음악은 고음을 많이 사용하여 태평양 상공의 차운 빛 강렬한 햇살을 고출력으로 방사한다. 햇살이 멍울져 머리 위로 듣는 듯한 그 느낌은 매우 경쾌하고 매혹적이다. 요즘 아이들의 속사포 같은 랩 음악보다 내겐 훨씬 쉽게 와닿는다.
완연히 장수시대다. 건강하고 즐겁게 나이 들고 싶다. 아이들은 날개가 다 자라서 자신의 둥지를 지어 떠났다. 더 움킬 것도 놓을 것도 없다. 남은 페이지에는 나의 이야기를 써감 직하다. 컴퓨터 앞에서 댄스에 열중하고 있는데 방에서 슬그머니 준이 나온다. 준은 나의 춤추는 동작을 보더니 큭, 하고 웃음을 뿜는다. 그러다가 내가 모범답안으로 틀어 놓은 동영상 장면을 보고 나서는 더 참지 못하고 깔깔깔 넘어가 버린다. 춤을 추는 모델이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였기 때문이다. 그 엉거주춤하고 느린 동작조차 따라 하지 못하는 나의 무딘 끼까지! 준은 나의 코미디 같은 장면을 사진 찍어 가며 한바탕 법석을 떤다.
나는 내일도, 모레도, 얼마간 더 이 영상을 틀어 놓고 하와이안 댄스를 연습할 것이다. 느리게 조금씩 배워도 좋다. 견마지로라 해도 나이 탓이나 하면서 스멀스멀 늙어가기보다 낫고, 재미로 치면 숙련된 무용수의 춤보다 한 수 위다. 재미난 '소풍'이고서야 '가서, 아름다웠더라' 말할 수 있지 않겠나.
*작은따옴표 안은 천상병의 시 <귀천>에서 가차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