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 스텝에 실패한 발은 절제와 균형에도 실패한다.
거실 한가운데서 몸을 늘여 춤을 춘다. 좁은 거실이라 공간을 무시하고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한다. 끊어 가는 것이다. 너무 먼 그리움이 모자이크 되듯 멀리 잡은 목표는 도중에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심지가 굳지 못하고 한눈팔기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은 특히. 작은 걸음으로 걷자. 구간을 지어 짧게 조금씩 끊어 추기로 한다. 한 소절씩, 그리고 다시 두 소절, 세 소절.
프롬나드(Promenade position). 세 박자로 구성된 왈츠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두 번째 스텝이다.
업 다운(Up-Down)이 큰 왈츠는 두 번째 스텝과 동시에 몸을 느리게 아래로 내린다. 마무리 동작인 세 번째 스텝에서 두 발을 모으며 몸을 세운다. 이를 업다운 모션이라 한다. 위스크 락(Whisk Lock)과 연결되는 샷세(Chasse)를 할 때나 프롬나드를 진행할 때 업다운을 사용하는데 호흡이 잘 맞는 파트너와 춘다면 매우 우아한 동작이 된다.
업다운 느낌을 살리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무슨 일이나 앞으로 갈 때 조심해야 한다. 모든 게 한눈에 들어오는 상황처럼 쉬운 일이 없으니 방심하기 좋은 순간이고 실수는 그런 순간에 일어난다. 몹시 긴장되거나 어려운 일, 처음 마주치는 일에 실수할 것 같지만 문제는 항상 익숙한 상황에서 터지지 않던가. 거실을 한 바퀴 돌며 프롬나드를 한 후 나는 발을 바꾼다.
체인지 스텝(Change Step). 왈츠뿐 아니라 모든 댄스 동작에서 어려운 게 체인지 스텝이다. 스텝 체인지(발 바꾸기 동작)를 잘못하면 춤은 꼬이고 상대의 발을 밟거나 군무의 열을 흩뜨리거나 민망한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체인지… 침대에서 몸을 돌아 뉘는 것도 체인지, 나쁜 기억에서 벗어나려는 것도 체인지, 기분이 꿀꿀해서 미용실을 찾는 것도, 회나 생야채를 즐기던 내가 갑자기 화식으로 식단을 바꾼 것도 체인지, 엄마로 살다 다시 나로 돌아온 것도 모두 체인지다. 삶은 체인지의 연속이다.
사고처럼 우연히 인연을 만나 입맛을 그에게 맞춰가는 것, 휴식을 그의 템포에 맞추는 것, 그와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욕조에 물을 받고 그가 보내 준 음악을 듣는 것이 체인지다. 밥도둑인 내가 빵과 커피로 아침을 맞게 된 것도 체인지다. 노랫말 의미를 새기고 가사에 집중하는 버릇이 생긴 것도 아무도 모르는 체인지다. 조급증이 심해서 기다림을 못 견디는 내가 하염없이 긴 시간 흘려보내기로 한 것도 체인지다.
체인지 스텝에 실패한 발은 절제와 균형에도 실패한다. 몸이 비틀거린다. 체인지는 그래서 조심스럽다. 음악을 놓치면 성급히 체인지를 시도할 게 아니라 한 번 더 같은 스텝을 한 후 체인지 해야 한다. 한 템포 느려지지만 춤은 망가지지 않는다.
거실 벽 따라 몇 바퀴 돌며 프롬나드를 끝낸 후 나는 성급히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를 시도하려다 비틀거린다. 체인지 스텝에 실패한 결과다. 다시 프롬나드-체인지-프로그레시브를 연이어 연습한다. 내가 집중하는 지점은 언제나 체인지 스텝이다. 마침내 프로그레시브다.
프로그레시브는 여자 기준으로 보면 후진 스텝이다. 댄스 동작 작명은 남자 포지션이 기준이다. 춤의 주체가 내가 아닌 듯하여 서운함을 주지만 상관없다. 결국 춤을 추는 것은 내가 될 테니.
병법에도 있거니와 전진과 후퇴는 그 변곡점이 미학의 포인트다. 어느 시점에서 전진할 것인가, 어느 지점에서 돌아설 것인가 하는 것 말이다. 여기에 ‘어떻게’가 더해지면 병법도 예술이 된다. 장수는 병사의 사기도 살펴야 하고 적진에 우습게도 보이지 말아야 한다, 후퇴하는 순간에도.
프로그레시브는 용감한 장수가 후퇴를 감행하듯 상대방을 응시하며 뒤로 물러난다. 한 발 두 발… 물러설 것 같지 않은 기세로 절도 있게 천천히 미끄러진다. 거실 코너까지 후진한 후 나는 디벨로페 킥(Developpé kick)으로 마무리한다. 오른쪽 다리를 높이 치켜들어 왈츠 드레스를 우아하게 펼친다. 다음 전투를 도모하기 위한 팡파르 같은 구조다. 다시 프롬나드가 시작된다. 춤과 음악이 좁은 거실을 장악한다.
인생은 맨발로 추는 춤이다. 노여움이 깨진 유리 조각 밟은 듯 온몸을 에일 때는 한 박자 쉬기로 하자. 세상에는 안전한 곳도 완전한 것도 없다는 교훈을 얻게 될 것이고 발바닥엔 군살이 한 더께 더 오른다. 춤이 계속된다. 세상이 암만 날을 세워도 바람처럼 살기로 한다. 무엇에도 베이지 않는 바람처럼.
바야흐로 포스트 팬데믹 시대다. 비대면 방식이 일반화하고 비대면을 활성화하는 전략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사람 만나기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불리한 변화다. 그러나 적응 외에 별도리가 없으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발이 꼬이지 않도록 주의하며 나는 새로운 춤을 강구한다. 반경이 좁아진 만큼 작은 동작으로.
모두에게 팬데믹이 그리 불행한 시간만은 아니길 바란다. 다음 동작을 위한 잠깐의 멈춤, 샷세라 치자.
<「좋은 수필」 21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