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의 책 정리

끊임없이 할 말은 ‘감사’와 ‘사랑’뿐

by 명진 이성숙

날씨가 제법 선선해졌다. 일 년에 고작 한두 번 하는 서가 정리를 나는 해마다 이맘때 한다. 9월이 시작된 후와 그해 12월이 가기 전에 정례행사처럼 책들을 정리하는 것이다. 버리는 책은 없고 사재기만 하니 책꽂이는 언제나 제 덩치보다 많은 책을 이고 지고 있다. 게다가 나는 정리에 잼병이라 세로로 더는 꽂을 데가 없게 된 책은 가로로 쌓는다.


다른 사람은 어떤 분류로 책을 정리하는지 몰라도, 나의 서가는 읽은 책과 읽어야 할 책으로 분류되어 있다. 나름대로는 정돈을 하는 셈인데, 책을 읽는 속도가 사는 속도를 못 따라가니 서가는 언제나 읽어야 할 책들로 넘쳐난다. 그러다 보면 언제 내 책꽂이에 꽂혀 있게 되었는지도 모를 책들도 발견하게 된다. 나의 무신경과 게으름 탓에 방치되었던 책들이 초면인 듯 반갑게 말을 걸어오는데, 그 흥분이 또한 연중 치르는 즐거움 중 하나다.


이번에는 일본인 저자 에모토 마사루의 <물은 답을 알고 있다>를 발견했다. 사다 놓고는 지루해서 맨 위 선반에 가로로 눕혀 놓았던 책이다. 작년에도 이 책을 만져보고 손끝으로 주르륵 넘겨보기만 하고 그대로 뉘어 놓았었다. 가로로 눕혀 놓았다는 건 곧 읽겠다는 나의 의지의 반영이지만 그대로 두 해를 넘기고 말았다. 2002년도 초판 인쇄, 모두 200쪽으로 두껍지 않은 책이다. 무슨 일을 하다 옆으로 새어버리는 것은 나의 고질병이다. 이번에도 나는 제자리에 꽂기 위해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바닥에 던져두고 그대로 주저앉아 <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 빠져들어갔다. 어떤 말에 노출되는지에 따라 물의 결정이 변한다는 그의 실험이 온몸에 전율을 가져왔다.


두 개의 컵에 생수를 따르고, 한쪽에는 ‘고맙습니다’라고 쓴 종이를 붙여 두고 다른 쪽에는 ‘악마’라고 쓴 종이를 붙여 둔 후, 결정을 만들기 위해 두 컵의 물을 24시간 동안 얼린다. 그런 후 꺼내어 현미경으로 물 결정을 관찰한 간단한 실험이었다. ‘고맙습니다’에 노출된 물은 아름다운 눈꽃 모양의 결정을 보였고, ‘악마’라는 단어에 노출된 물은 육각형인 물의 형태로 알 수 없도록 일그러져 암세포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 실험은 우리의 언어생활이 우리의 건강과 직결됨을 보여준다. 말로써 능히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욕은 듣는 사람뿐 아니라 그런 말을 만들어 내는 당사자에게도 독이 된다. 머릿속으로 욕설을 생각하는 동안에 우리 몸의 물분자들은 암세포 모양으로 늘어서고 조합한다. ‘망할 놈’ ‘바보’ ‘죽여버릴 거야’ 같은 부정적인 말을 써붙이거나 들려주었을 때 물의 결정 모양은 어린아이가 폭력을 당하는 듯한 형상을 띠었다. 우리 몸은 70%의 물로 이루어져 있다. 물의 흐름이 몸의 상태를 지배한다.


가장 아름다운 결정 모양을 보인 경우는 ‘감사’와 ‘사랑’에 노출되었을 때라고 한다. 우리가 끊임없이 반복해서 사용해야 할 말은 ‘감사’와 ‘사랑’뿐이다.


문학회 활동을 하니 여러 종의 문학 간행물과 동인지, 작가 서명이 들어간 증정본이 쌓이기 시작한다. 그렇지 않아도 생활비 절반이 책값으로 나가는 지경으로 서점을 들락거리는데, 정리할 새도 없이 증정본까지 들이닥치니 집은 서가 주변만이 아니라 거실까지 책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들 역시 읽는 속도보다 빠르게 늘고 있다. 서가는 진즉 뒤죽박죽 되었다. 책을 주신 선생님들, 따끈따끈한 초판 인쇄본을 선물해 준 선배 작가들에게는 감사 편지도 쓰지 못했다. 읽지 않은 책을 읽은 체할 수도 없고, 읽지도 않고 고맙다는 인사만 건네기도 빈말 같아서 증정본을 받은 후 나의 태도는 언제나 어정쩡했다. 내년부터는 증정본을 한 곳에 모으기로 하고 책꽂이를 하나 더 샀다. 그리고 읽어야 할 책에 속도를 좀 더 내기로 했다. 한 권씩 숙독하며 12월을 맞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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