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생각줍기

기후위기 앞에서 문학이 해야 할 말

잭 런던의 『불을 피우다』를 되새기며

by 명진 이성숙

기후위기 앞에서 문학이 해야 할 말

잭 런던의 『불을 피우다』를 되새기며


불과 1년 전, 2024년의 여름은 유례없는 폭염과 산불로 기록됐다. 올해도 어김없이 재난은 계절을 삼켰다. 산불은 숲을 태우고, 바다는 끓었으며, 하늘은 매일의 재난을 뉴스로 내보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예언이 아닌 현재다. 베이징은 140년 만의 폭우에 잠겼고, 그리스의 숲은 불길 속에 사라졌으며, 캐나다의 산불 연기는 국경을 넘어 뉴욕의 하늘을 뒤덮었다. 연쇄 재난 앞에서 문학은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잭 런던의 단편 『불을 피우다』는 20세기 초에 쓰인 작품이지만, 오늘날의 기후위기 속에서 다시 읽히며 놀라운 예언성을 드러낸다. 알래스카의 혹한 속을 걷는 한 남자의 이야기. 그는 자연의 신호도, 동행자의 조언도 무시한 채 자신의 판단만 믿으며 얼어붙은 세계 속으로 나아간다. 그에게 절실했던 하나는 ‘불’이었지만, 정작 그는 그것을 사소하게 여겼다. 무시된 경고와 교만한 판단은 불을 피우는 마지막 기회를 앗아간다. 작가는 이렇게 쓰고 있다.

“그는 자신의 손가락이 더 이상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문장은 얼어붙은 육체만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이 자연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드러낸다. 결국 그는 살아남을 수 있는 희망인, ‘불을 피우는’ 데 실패하면서 죽음에 이른다.


문학을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 한다. 이제는 그 거울이 경고의 반사판이 되어야 한다. 더는 자연을 배경으로만 삼을 수 없다. 인간 중심의 서사에서 벗어나, 문학은 이제 생명 전체를 아우르는 이야기로 나아가야 한다. 인간과 비인간, 도시와 숲, 과거와 미래가 서로에게 말을 거는 서사. 절실하게, 이 시대 문학이 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개는 본능적으로 이 여행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와 함께 걷던 개는 일찍부터 위험을 감지한다. 개는 직감적으로 땅의 상태를 읽고, 어떤 본능에 따라 인간의 실수를 바라본다. 인간이 의지한 것은 경험과 이성, 즉 문명에 대한 과신이었다. 그러나 자연은 문명 너머에서 이미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고, 그것을 읽지 못한 자는 결국 스스로를 재난 속에 밀어 넣었다. 땅이 얼어 있는 느낌, 공기의 기운, 자연이 보내는 미세한 신호들. 본능은 곧잘 진실을 꿰뚫는다. 그러나 인간은 계산했고, 무시했고,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렸다.


기후위기가 가속화하고 있다. 아니다, 우리는 이미 재난 속에 들어와 있다. 『불을 피우다』는 단순한 생존담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 대한 은유다. 과학자들과 활동가들은 수십 년 전부터 기후 재난을 경고해 왔다. 북극의 얼음이 녹고, 바닷물의 수온이 오르며, 숲은 타들어 가고, 이상기후는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이 경고를 실감하지 못한 채 문명의 길을 걸어왔다. 더 많은 소비, 더 높은 효율, 더 빠른 속도에 몰두하면서. 과학보다 정치가 앞서고, 이윤이 생태보다 우선되는 구조 안에서 우리는 자연을 해독하지 못한 채 점점 더 깊은 추위 속으로 걸어가고 있다.

기후위기를 수치로만 이해해서는 정말이지 안 된다. 문학은 데이터를 넘어 삶의 감각과 연대의 언어로 오늘날의 기후위기를 이야기해야 한다. 문학의 역할은 서사로써 인류에 울림을 주는 것이다. 공포, 상실, 죄책감, 그리고 연대의 가능성. 문학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언어다. 과학이 경고를 외친다면, 문학은 그것이 우리의 삶과 어떻게 닿아 있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실제로 문학이 과학적 경고와 만나 독자의 인식을 바꾼 사례는 이미 여럿 있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오릭스와 크레이크』는 유전자 조작과 생태파괴의 미래를 그려내며, 독자들에게 과학이 말하지 못하는 '감정의 결과'를 상상하게 했다. 리처드 파워스의 『오버스토리』는 나무와 인간의 관계를 깊이 있게 탐색하며 생태 위기와 연결된 삶의 서사를 만들어 냈다. 이런 작품들은 기후변화를 단지 기상학적 현상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윤리와 감각을 다시 묻는 문제로 확장했다.


잭 런던은 『불을 피우다』에서 인간의 무모함을 고발함과 동시에, 자연의 침묵을 서늘하게 보여준다. 말이 없는 세계 속에서도 자연은 말하고 있었다. 이제는 문학이 다시 그 말을 번역할 때다. 침묵 속에 깃든 징후들, 인간 외 존재들의 소리 없는 신호들, 그리고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들. 이 모든 것을 문학은 기록하고 전해야 한다. 전해야 할 뿐 아니라, 인류가 응답하게 해야 한다.


생태 감수성을 가진 문학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꿈꾸는가. 미래에 문학은 어떤 숨결로 함께할 수 있을까. 바야흐로, 생명과 예술이 다시 손잡아야 할 때다. 문학은 인간만이 아닌 '함께 사는 존재들'을 위한 언어를 써내야 한다. 지구촌에 덮친 재난 앞에서 침묵은 답이 아니다.


잭 런던은 단지 인간의 패배를 그린 것이 아니다. 그는 자연의 무심함과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언어의 부재를 기록했다. 위기의 시대, 불을 피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런 이야기를 뜨겁게 진술하는 일이다. 작고 연약한 것이 언어라 하나, 그 파장이 깊고 심대함을 문학인들은 기억하기 바란다. (문예바다 25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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