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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톨레도를 걷다

톨레도

by 명진 이성숙



남부에 론다가 있다면 중부에 톨레도가 아닐까.

마드리드에서 알사 버스로 톨레도까지는 1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버스에서 내려 관광안내소로 먼저 간다. 산타할아버지처럼 인자하게 생긴 노인이 유창한 영어와 스페인어로 손님을 맞는다. 한국어를 못하셔서 유감이다. 그는 나를 보자 지도를 펼쳐 관광포인트를 알려준다. 그곳에서 시티투어 트렘을 예약하고, 지도를 받아 밖으로 나온다. 고개를 들어 언덕 위 도시를 보면서 한참을 걸은 후 엘리베이터를 네 개나 타고 도시로 오른다. 찬 공기에 심장이 얼얼해질 만큼 걸었다.

이슬람과 가톨릭의 지배를 번갈아 받은 톨레도에는 이슬람 양식과 가톨릭 양식 또는 두 문화가 섞인 형태를 반영하는 건축물들이 많다. 스페인 옛 수도였다는 톨레도. 걸어서 돌아볼 수 있는 정도이므로 큰 도시는 아니나 스페인 옛 왕국인 카스티야 왕궁이 있던 곳이다. 왕도였던 까닭인지 건물 하나하나 생김새가 예사롭지 않다. 이 천년 고도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기도 하다. 도시 전체가 말 그대로 박물관이다. 당일치기 방문이라 시간을 아껴야 한다. 나는 걷는 대신 30분가량 시티 투어 트렘을 타고 톨레도를 한 바퀴 돌기로 한다. 그런 후 내려서 톨레도 대성당을 둘러보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생각이다.



시티투어 트램, 소코트렌

소코도베르 광장에 도착한 나는 소코트렌 출발지부터 확인한다. 길목마다 소코트렌 안내원이 있어 찾기는 어렵지 않다. 숨을 고르며 열차 앞자리에 오른다. 이어폰을 꽂으면 한국어로도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짧은 일정으로 톨레도를 이해하기에 이보다 좋은 방법이 없지 싶다.


톨레도는 프랑스 남부 나르본 지역까지 뻗어 있던 옛 서고트 왕국의 수도였으며 펠리페 2세가 왕궁을 마드리드로 옮기기 전까지 스페인의 수도로 기능했던 도시다. 톨레도는 소설 돈키호테 배경이 된 카스티야 라만차 지역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말발굽 모양으로 타구스 강이 둘러싸고 있는 요새도시 톨레도 안으로 들어간다. 미라마르 전망대에서 꼬마기차 소코트렌이 정차한다. 흐린 날씨 때문에 선명한 사진을 얻진 못했지만 덕분에 몽환의 분위기에 젖을 수 있어 좋았던 시간이다. 나는 꼬마기차를 떠나보내고 미라마르에서 소코도베르 광장까지 걸어 내려온다. 광장을 가로지르며 톨레도 성당에 들어선다.

미라마르 전망대에서 바라다 보이는 요새 도시 톨레도다. 멀리 오른쪽, 세르반테스 언덕 위에 알카사르 요새가 보인다.


미라마르 전망대에서 바라본 톨레도 시내다. 날씨가 흐려 시야가 부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도시다. 타구스 강이 말발굽 모양으로 도시를 감싸고 흐른다.



톨레도 대성당

스페인 가톨릭의 정수라 불리는 톨레도 성당은 규모도 상당하지만 내부의 화려함이 눈부신 곳이다. 1227년 카스티야 왕 페르난도 3세 때 초석을 깐 후 1493년 완성했으니 267년이나 공을 들인 건축이다. 나는 특히 성당 정면 대제단의 황금 병풍을 꼭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오래전 여행 때 다녀갔으나 예수님의 생애를 조각으로 표현한 그 정교함과 눈부심을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다. 1498년부터 27명의 장인이 매달려 완공했다는 중앙 제단 후면의 황금색 병풍,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경외심이 드는 장소다.


톨레도 대성당 미화 작업의 백미는 나르시소 토메의 트란스파렌테와 채광창. 나르시소 토메는 조력자 없이 12년에 걸쳐 성당 내부 인물들을 조각한 후 그 인물들이 태양을 받았을 때 영적으로 빛나 보이도록 하기 위해 정확한 각도의 채광창을 만든다. 천장 둥근 창으로 들어오는 빛줄기가 조각에 닿으면 조각상들은 신성을 입은 듯 황홀경을 연출한다. 또 하나는 대리석과 설화 석고로 제작된 화려한 제단 장식 트란스파렌테. 나르시소 토메는 높은 천장 아래 스테인드 글라스 장식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를 설계했다.


지금은 오후 1시. 마리아 상이 빛을 받아 신비감을 낸다. 관광객들이 고개를 들어 사진찍기에 바쁘다. 사람들 사이를 빠져 나온 나는 벽면의 스테인드글라스를 감상하면서 보물실로 향한다. 16세기에 만든 황금 성체현시대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본래 이슬람 모스크 사원으로 세워진 톨레도 성당은 후에 가톨릭 성당으로 개조 사용되면서 현재는 세인트 메리 대성당으로 불리기도 한다. 13세기에 지어진 스페인의 3대 고딕 성당 중 하나다. 톨레도 성당은 고딕 양식을 취하고는 있으나 200년이 넘는 세월을 거치며 완성되는 동안 시대에 따라 그 양식이 수정되고 보태지며 전통 고딕 양식 건축과 다른 부분들도 생긴다. 대개의 고딕 성당이 두 개의 첨탑이 정면에 대칭을 이루고 있는 데에 반해 톨레도 성당은 왼쪽 첨탑에 '고르다'라는 종이 설치되어 있고 오른쪽에는 엘 그레코의 아들인 호르헤 마누엘에 의해 르네상스 식 돔으로 만들어졌다(두피디아 닷 컴 참조). 고르다와 돔 사이에는 세 개의 문이 있다. 가운데 문을 '용서의 문', 이 문을 통과하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 한다. 용서의 문 오른쪽(마주 보았을 때)은 심판의 문, 최후의 심판을 상징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아직 최후의 심판이 오지 않아 이 문은 완공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다. 왼쪽 문은 '지옥의 문' 또는 '종려나무의 문'이라 한다. 지나가기 두려워서일까, 지옥의 문 역시 닫혀 있다.


넋 놓고 걷다 보니 오후 3시다. 점심을 어디서 할까... 주택가 골목길 작은 유리문으로 사람들이 드나든다. 나를 앞서 걷던 여자 둘이 또 들어간다. 가정집처럼 보였는데 입구에 베지테리언 식당이라고 흐릿하게 쓰여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지하 세계인 듯 유리문 안쪽으로 계단을 몇 개 내려가자 뜻밖에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손님이 빈틈없이 앉아 있다. 예약을 하지 않은 나는 기다리겠느냐는 종업원 질문에 그러겠다 하고 입구에 마련된 의자에서 시간을 보낸다. 하염없이 기다린 듯하다. 내게 음식을 주기는 하려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자리가 준비되었다며 직원이 다가온다. 갈증이 깊어진 나는 맥주와 물부터 주문한다. 그리고 수프와 쌀국수볶음, 스테이크와 이름을 알 수 없는 메뉴 한 가지 더. 더할 수 없는 만찬이다. 오래 기다린 만큼, 피로를 잊게 하는 맛이다.


잠깐, 물 주문에 대해 한마디 하고 가자. 스페인 식당에서는 생각 없이 물 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 계산서에 물값이 반듯이 포함되어 나온다는 사실 ㅎㅎ. 물 인심이 한국만큼 좋은 곳이 없다. 나는 휴대용 정수기를 챙겨 왔으므로 물값을 거의 안 쓰는 편인데 오늘은 가파른 길을 종일 걷느라 갈증이 심했고 점심도 늦어 기진맥진한 상태로 식당에 들어갔다. 사막 여행자가 오아시스를 만난 듯 나는 물부터 주문한다. 터무니없이 많이 주문한 음식도 다 먹어 치운다. 한 끼 굶은 티를 이렇게 내다니 기가 막혀 웃음이 난다.


성당에서 나오자 해가 기운다. 당일치기의 한계를 느끼며 기차역으로 향한다. 톨레도 기차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 반. 표를 사려는데 5시 20분 출발하는 열차가 만석이란다. 다음 열차는 6시 20분. 그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기차역에서 택시를 잡아 알사 버스 터미널로 이동한다. 마드리드에 도착하니 오후 6시다. 갈 때보다 시간이 덜 걸린다. 알고 보니 톨레도 갈 때 탄 버스는 완행, 마드리드로 향할 때 탄 버스는 직행. 무턱대고 표를 끊어 차에 올랐는데 운이 좋았다. (마드리드 알립티카 버스 터미널에서 톨레도 터미널까지는 알사 버스로 완행 1시간 반, 직행 45분이 걸린다) 내일은 라만차 지역을 차로 돌아본다. 렌터카를 예약하고 숙소로 돌아간다.




톨레도 대성당의 황금병풍. 예수님의 생애가 정교한 조각으로 표현되어 있고 조각상은 화려한 색감과 황금색으로 마무리되어 있다.


엘 그레코 작, “엘 에스폴리오(예수의 옷을 벗김)”



대추야자를 들고 어깨에 아기 예수를 받치고 있는 크리스토퍼 성인. 크리스토퍼는 여행자들의 수호신으로 본래 그는 강가에 앉아 사람들이 오면 강 건너 데려다주는 일을 했었다. 성경적 의미로 대추야자 이파리는 변함없는 신앙심을 뜻한다.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성격이 포악한 거인 크리스토퍼는 예수도 이길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강 건너에 옮겨 주는데 아이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그 아이가 바로 예수님인 걸 알고 그는 크게 회개한 후 수호성인 자리에까지 오른다.


유리상자 안에 들어 있는 피에타


톨레도 대성당 미화 작업의 백미로 꼽히는 나르시소 토메의 트란스파렌테를 위한 채광창.


나르시소 토메의 트란스파렌테. 채광창을 통해 들어온 빛이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를 비추면, 마리아와 아기 예수 모습은 성스러움을 더한다.


아기 예수와 성모 마리아가 장난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 성 모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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