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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심장, 광장 나들이

마드리드

by 명진 이성숙


마드리드 광장들과 재래시장, 레알 마드리드 축구장


유럽은 어느 도시를 가나 그 중심에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광장이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3대 광장과 재래시장을 방문하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레알 마드리드 축구장까지 다녀올 참이다. 스페인 광장과 마요르, 솔광장은 모두 가까이에 있어 한걸음에 돌아보기 어렵지 않다. 산 미구엘 재래시장도 마요르 광장과 도보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다.


세르반테스 사후 300주년 기념, 스페인 광장

가장 먼저 간 곳은 당연히 스페인 광장. 스페인 광장은 1916년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후 300주년을 기념해 세워진다. 광장을 등지고 작은 연못을 바라보는 위치에 세르반테스 기념비가 있다. 내가 갔을 때는 아쉽게도 물을 모두 빼 버려 호수가 있던 자리에는 풀만 무성하다. 연못을 아예 없애 버린 듯 바닥에 깔린 스프링클러가 시간에 맞춰 물을 뿜는다. 봄이 오면 이곳에 꽃이 피려는지.... 기념비 맨 위는 전 세계에서 돈키호테를 읽은 독자들이 조각되어 있고, 중앙에 세르반테스 동상이 있다. 그 앞으로 창을 높이 치켜들고 애마 로시난테에 올라탄 돈키호테와 노새를 탄 뚱보 산초 동상이 있다. 세르반테스가 이들을 뒤에서 지켜보는 구도다.


본래 이 광장에는 스페인을 통일한 샤벨 여왕 동상이 세워질 예정이었으나 스페인 국민의 염원으로 세르반테스 동상이 세워진 것이란다. 인걸의 향취는 스페인 국경을 넘은 지 오래, 덕분에 이방인인 나도 이곳에서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를 만나는 기쁨을 누린다. 세르반테스에 관해서는 돈키호테 루트를 다녀온 후 라만차 지역과 함께 쓰도록 한다.

스페인 광장(세르반테스 사후 300주년 기념공원).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와 산초를 내려다보고 있다.


마요르 광장

스페인 광장과 멀지 않은 곳에 유서 깊은 마요르 광장이 있다. 아치형 입구를 지나 플라자 데 마요르에 들어서면 광장을 둘러싼 붉은색 돌로 지어진 건물이 사람을 압도한다. 붉은색은 황금색만큼이나 권위적인 색이다. 이곳에서 왕가의 결혼식과 투우 행사가 열렸었다. 스페인에서 가장 악명 높은 종교재판도 이곳에서 있었다고.

가로 90미터 세로 109미터의 직사각형 광장 중앙에는 역사적으로 무능한 왕으로 평가받고 있는 펠리페 3세 청동 기마상이 자리한다. 프랑스 토스카나 공작이 펠리페 3세에게 보낸 선물. ‘무능’이라는 꼬리표를 달고도 그는 늠름하게 여기 앉아서 광장에 오가는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다. 펠리페 3세는 정치적 군사적으로 별 볼 일 없는 왕이었으나 그림과 사냥을 좋아하고 정부를 두지 않았으며 왕비 사후에 재혼도 하지 않은 가정적인 왕으로 전해진다.


4층짜리 건물 1층은 상점들과 카페, 레스토랑이 영업 중이다. 리넨 보가 깔끔하게 덮인 노천 레스토랑에서 올리브 한 접시와 와인을 주문하고 앉는다. 유럽의 카페에서는 안주로 작은 접시에 올리브를 내주는 곳이 많다. 따로 올리브를 주문하면 크게 한 접시 나오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나는 주문하고 나서 깨달았지만). 테이블마다 놓인 올리브 접시 중 내 앞에 놓인 것이 가장 컸다! ᄒᄒᄒ


광장을 에워싼 붉은 건물 사이에 도드라진 건물 하나가 있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빠나 데이라다. 빵 공장이라는 뜻. 과거 이 자리에서 빵을 만들어 팔면서 이 이름이 붙었다. 빠나 데이라 전면 벽에는 수려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1992년에 그려진 현재의 그림은 카를로스 프랑코의 작품이다. 내용은 알 수 없으나 긴 스토리가 있어 보이는 그림들이다.


붉은색 건물로 둘러싸인 마요르 광장.


광장 중앙에 우뚝 서서 만남의 장소가 되고 있는 펠리페 3세 기마상.
카사 드 빠나 데이라(왼쪽 건물이다)


마요르 광장 가는 길에 발견한 아시안 음식점. 며칠 만에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나 포식했다.



푸에르타 델 솔 광장

태양의 문이라는 뜻의 푸에르타 델 솔. 스페인의 태양은 강렬하기로 유명하다. 델 솔 광장은 마드리드 중심부 번화가에 있어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광장 한쪽 바닥에 새겨진 킬로미터 제로에서 인증샷부터 찍는다. 킬로미터 제로는 마드리드 정 중앙 표식이다. 스페인 전역으로 뻗어나가는 도로의 기점이고

여기를 기준으로 스페인 지역의 거리가 계산된다.

가운데에 마드리드 지도가 있었지만 오랜 세월 관광객들 발밑에서 모두 지워졌다 -.-.

테두리에는 스페인어로 이렇게 쓰여 있다. Origen De Las Carreteras Radiales.

광장에 빠질 수 없는 동상,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는 카를로스 3세 기마상이 있다. 말이 왼쪽 앞발을 들고 있다. 유럽 기마상을 보는 관전 포인트 하나 소개한다. 말이 왼발을 들고 있으면 전쟁에서 치명적 부상으로 사망한 사람(용맹했음을 암시), 말이 오른발을 들고 있으면 암살당한 사람, 두 발을 들고 있으면 전쟁 패배로 사망한 사람, 두 발을 땅에 대고 있으면 장수를 누린 사람이란 뜻이다. 카를로스 3세는 나폴리와 시칠리아를 정복한 왕이었다.

킬로미터 제로. 테두리에 스페인어로 이렇게 쓰여 있다. Origen De Las Carreteras Radiales.


카를로스 3세 기마상. 좌대에 그의 업적이 기록되어 있다.


산 미구엘 시장재래시장이지만 현대적 감각으로 잘 가꾸어진 산 미구엘 시장이다. 낡고 녹슨 철골 구조물을 대형 유리가 감싸고 있어 시장이라기보다 활력 넘치는 카페 같은 분위기를 낸다. 유리벽 바깥은 겨울바람이 찬데 안쪽은 음식과 사람의 열기로 뜨겁다. 푸드코트처럼 다닥다닥 붙은 가게들은 어디라도 맛집. 구미를 당기는 음식이 가득하다. 광장을 돌아다니느라 지친 몸에 허기가 돈다. 서너 집 바꿔가며 출출한 배를 채우고 저녁에 먹을 음식 포장까지 해서 밖으로 나온다.

산 미구엘 시장. 재래시장이라지만 잘 정돈되어 있고 갖가지 입맛을 유혹하는 음식들이 넘치는 곳이다.


레알 마드리드 홈구장

광장 세 곳과 산 미구엘 시장에 들르고 나니 오후 6시다. 피곤하지만 나는 급히 택시를 잡아 귀족 구단 레알 마드리드 축구장에 도착한다. 7시까지 입장 가능. 잠시라도 둘러볼 생각으로 비싼 택시비(15유로) 투척하여 도착한 레알 마드리드 홈구장은 공사 중. 내부 관람은 가능하지만 티켓을 사야 한단다. 흠, 시간은 늦었고 공사 중인 구장에 들어가서 뭘 보나 싶은 ‘본전 생각’이 들어 기념품점이나 들렀다 가기로 마음을 돌린다. 공사 중으로 어수선하기는 기념품 매장도 마찬가지다. 물건 몇 개를 만지작거리다 밖으로 나오니 은빛 축구장 뒤로 해가 기운다. 뜻밖의 노을잔치다. 노을을 받은 구장이 들어갈 때와 완전히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30분 전만 해도 어수선하던 주변이 노을을 배경으로 그윽하게 변해 간다.

왼쪽 위, 공사 중인 레알 마드리드 축구장. 오른쪽 위, 저녁노을을 받아 다른 모습을 연출하는 레알 마드리드. 아래 사진은 축구장 앞 거리에서 기념품을 파는 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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