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메인 투정
*허튼소리: 국어사전 - 함부로 지껄이는 말(=낭어, 헛소리)
나는 오늘 허튼소리를 좀 지껄여 보려 한다.
대상은 글쟁이다.
내 글을 읽고 불편하거나 베알이 꼴리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나를 무식하다고 먼발치에서 비웃는 사람도 있겠지. 그래도 하겠다. 어차피 이런 말은 누군가는 해야 한다.
나는 시인도, 소설가도, 작가도 아니다. 글을 배운 적도 없고, 등단을 꿈꾸며 원고를 들이민 적도 없다. 다만 글 읽는 걸 무척 좋아한다.
브런치 작가가 된 지 2주째, 새내기다.
그런데 내가 허튼소리를 하려는 이유는 브런치에 올라와 있는 글들 때문이다.
나는 글에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마치 들에 풀어놓은 염소처럼 닥치는 대로 뜯어먹는다. 한마디로 잡식성이다.
그런데 브런치에서 시를 좀 읽어봤다. 어떤 시는 짧은데도 가슴을 친다. 한 문장으로도 여운이 오래 남는다.
반면 어떤 시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의미가 아니라 ‘암호’ 같다. 읽는 사람이 이해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외계어를 자랑처럼 늘어놓는다.
아무리 붙잡고 해석해 보려 해도 작가의 마음은커녕 문장 자체가 안 열린다.
그래서 묻는다.
이걸 이해 못 하는 내가 바보인가?
아니면, 애초에 이해할 생각이 없게 써놓은 글이 문제인가?
난해함을 ‘깊이’로, 불친절을 ‘품격’으로 포장한 글 앞에서 나는 괜히 위축된다.
“내가 무식한가?” 하고 자책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무식한 게 내가 아니라 글일 때도 많다. 말이 어려운 게 아니라, 말이 빈 것이다.
제발 알아먹게 글 좀 써주라.
전쟁터에서 암호 쓰는 것처럼, 야구장에서 투수와 포수의 수신호처럼, 자기들끼리만 알아먹는 문장을 써놓고는 “아, 이건 고급이야” 하며 서로 박수치는 꼴이 썩 보기 좋지는 않다.
알아듣지 못하게 쓰면 멋져 보이는 줄 아나?
뜻이 안 잡히면 심오한 줄 아나?
독자가 “무슨 말이지?” 하고 멈추면, 그 멈춤이 감동인 줄 아나?
그건 감동이 아니라 교통사고다. 문장이 사람을 치고 그냥 가버린 거다.
모름지기 표현이란 글이든 음성이든, 그림이든 결국 ‘전달’이다. 자기도취가 목적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닿는 게 목적이다.
대중이 알아듣게 하는 게 천박함이면, 그 천박함이야말로 문학의 기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든 뭐든 좋다. 하지만 그 ‘-이즘’이 면죄부는 아니다. 이해 못 하면 독자 탓, 공감 못 하면 수준 탓— 이런 태도는 문학이 아니라 패거리 문화다.
클래식 공연을 한번 가봐라. 장엄한 오케스트라가 “너희가 이해 못 하면 너희 탓”이라며 일부러 음을 틀리게 연주하던가?
그들은 어렵게 연주해도 ‘전달’한다. 그러니까 사람을 울린다.
나 같은 凡人도 알아먹는 글을 좀 써주라. 그래야 시집도 사고, 수필도 사고, 에세이도 산다.
독자가 이해해야 시장도 살고, 문학도 숨 쉰다. 독자를 밀어내고 뽐내기만 하면 남는 건 ‘문장’이 아니라 ‘허세’다.
나는 서울 지하철 스크린도어 유리창에 적힌 시들을 꼭 읽어본다. 한 장의 유리창에 어찌 그리 멋진 시들을 게시해 놓았는지, 때로는 시를 다 읽느라 지하철을 그냥 보내기도 한다.
그러니까 가능한 거다.
‘쉬운데 얕지 않은 글’, ‘짧은데 깊은 글’은 분명히 있다.
자기들끼리의 리그가 있으면, 우리들끼리의 리그도 좀 하자.
누가 읽어도 고개가 끄덕여지고, 읽고 나면 마음이 움직이는 글. 그런 글 좀 써주라.
무식하다고 하지 않을 테니,
편한 문장. 읽기 좋은 글. 읽으면 이해가 가는 글.
참고로 내가 지금까지 읽어본 최고의 명작은, 공중화장실 벽에 누군가 갈겨놓았던 그 야릇하고도 절묘한 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