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복도의 오후

기다림이 일상이 된 사람들의 풍경

병원 복도의 오후

기다림이 일상이 된 사람들의 풍경


병원 복도는
시간이 앉아 있는 의자들로 길어진다.


번호표 한 장이
오늘의 이름이 되고
호명은
작게 숨을 꺼내는 소리.


벽시계는
앞으로 가지 않고
같은 자리를 몇 번씩 밟는다.


어르신들은
말 대신 손등을 만지고
통증 대신
물병을 꼭 쥔다.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그 말이
하루의 절반을 덮는다.


진료실 문이 열릴 때마다
기대와 체념이
같이 일어난다.


복도 끝 창문엔
햇빛이 들지만
여기서는
그마저도 순번을 기다린다.


[에세이]

병원에 가면 “오후”가 다르게 흐릅니다. 시계는 똑같이 가는데, 복도에 앉아 있으면 시간이 자꾸 뒤로 늘어집니다. 접수 창구 앞에서 한 번, 검사실 앞에서 한 번, 진료실 앞에서 한 번. 기다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오늘의 일정이 됩니다. 그래서 병원 복도는 치료의 공간이기 전에 기다림이 모여 앉는 공간처럼 보입니다.


어르신들은 대개 말이 적습니다. 번호표를 손에 쥐고, 종종 주머니에 넣었다 꺼내며 확인합니다. ‘내 차례가 아직 멀다’는 사실을 확인하는데도, 그 작은 종이가 필요합니다. 어떤 분은 두 손으로 물병을 꼭 쥔 채 앞만 봅니다. 아픈 곳을 만지기보다, 오늘을 버티는 손잡이를 잡는 것처럼요. 누군가는 보호자에게 “괜찮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불쑥 한마디가 나옵니다. “여긴 올 때마다 오래 걸리네.” 그 말은 불평이라기보다, 이제 익숙해진 생활에 대한 고백에 가깝습니다.


호명 소리가 들리면 복도 전체가 잠깐 긴장합니다. 내 이름이 불릴지 모르는 순간, 어르신들은 허리를 조금 세웁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다시 앉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라는 말이 반복될수록, 마음은 기대와 체념 사이를 오갑니다. 치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이 무사히 지나가길’ 기다리는 얼굴도 있습니다.


저는 가끔 생각합니다. 병원 복도의 오후는 몸이 아픈 사람만이 아니라, 삶이 느려진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풍경이라고요. 누군가의 젊은 시절엔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을 ‘기다림’이, 노년에는 일상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치료만큼이나, 그 기다림을 덜 외롭게 만드는 일도 필요합니다. 자리 하나를 양보하는 것, 안내 한마디를 더 하는 것, “추우시죠?” 하고 물어보는 것. 그런 작은 배려가 복도의 오후를 조금 덜 길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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