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성민 Oct 08. 2018

나의 미국 햄버거 순례기

먹고 먹었더니 추억이 되었다

나는 원래 햄버거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더랬다.


하지만 2015년에 미국에 MBA 유학을 가면서 좀 상황은 달라졌다. 미국에서 햄버거는 생활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때때로 하는 학교 행사나 주말 강의 때는 꼭 햄버거가 나왔고 맛도 있었다. 무엇보다 학생 신분으로 미국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여러 가지 대안 중에 햄버거는 좋은 선택이거나 때로는 유일한 선택지였으며 대체로 가성비가 좋은 선택지였다. 기억에 남는 버거 몇 가지를 정리해 본다.


1. 칼스 주니어(Carls' Jr) 버거: 보기만 해도 배부른 '슈퍼스타'가 있는 곳.


한국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햄버거였다. 버거킹 보다 좀 더 꽉 차고 헤비 한 느낌의 버거이고 버거킹이 그릴에 구웠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한다면 칼스주니어는 숯불에 구웠다(Chargrilled)라는 점을 강조한다. 원래 항상 섹시한 금발 여성을 쓴 광고로 유명했으나, 이러한 식의 커뮤니케이션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을 많이 받아서 요즘엔 그렇게 커뮤니케이션하지 않는다.


대표적엔 메뉴는 보기만 해도 배불러질 것 같은  '슈퍼스타' 햄버거인데, 맛은 나쁘지 않았다. 비교적 최근 들어서 '올 내추럴 버거'를 많이 광고하고 있는데, 이 버거는 칼스 주니어의 설명에 따르면 아래와 같은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A grass-fed, free-range charbroiled beef patty with no added hormones, steroides, or antibiotics, topped with American cheese and vine-ripened tomatoes"


그런데, 이 설명을 곰곰이 읽다 보면, "그렇다면 올 내추럴 버거를 메뉴를 제외한 나머지 칼스 주니어 버거에는 호르몬, 스테로이드, 항생제가 들어 있다는 거?"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데, 뭐 그래도 이러한 메뉴가 없는 거 보다야 있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칼스 주니어 버거든든하고 숯불 맛을 선호하는 분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칼스 주니어의 'Superstar with Cheese'


2. 해빗(Habit) 버거: 누구나 좋아할 만한 매력


미국의 다른 지역에서는 잘 모르겠으나, 내가 머물렀던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는 인앤아웃과 함께 가장 인기 있었던 버거였(해빗 버거의 본사도 남부 캘리포니아의 어바인에 위치 해 있다). 해빗 버거도 칼스 주니어 버거처럼 Chargrilled라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칼스 주니어처럼 사이즈가 크지 않고 좀 더 신선한 재료가 많이 들어간 느낌이며, 맛이 잘 밸런스가 맞추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고, 매장 분위기도 깔끔하고 팬시 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여기에는 고구마튀김과 그린빈 튀김이 맛있다. 처음 방문하게 된다면 고구마튀김을 한번 시켜 보는 것도 추천한다.


해빗 버거와 고구마 튀김 + 감자 튀김


3. 파이브 가이즈(Five Guys): (익숙하지 않은?) 동부의 맛


인앤아웃이 서부 버거라면, 파이브 가이즈는 동부 버거로 유명하다. 창업자에게 다섯 형제가 있어서 파이브 가이즈라고 불린다. 인앤아웃이 동부에 진출하지 않은 반면에 파이브 가이즈는 서부에도 간간히 매장이 있다. 한번 먹어 봤는데, 나는 솔직히 그렇게 맛있다는 느낌을 받이 못했다. 하지만 절대 수준 이하의 햄버거는 아니었다. 제대로 된 동부에 매장에 가서 한번 정도는 더 먹어보고 판단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맛에 대한 판단은 유보한다.


4. 인앤웃(In-N-Out): 아마도 최고의 버거


한마디로 내가 제일 좋아했던, 지금도 제일 좋아하는 버거다. 내가 유학을 했던 어바인은 인앤아웃의 본사가 위치한 지역이라 매장이 많기도 해서 접할 기회도 많아서 햄버거를 먹고 싶을 땐 거의 아웃을 갔던 것 같다. 인앤아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좀 더 많아서 좀 더 지면을 많이 할애해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1) 매장과 직원들 


점심시간에 매장에 가면 항상 줄이 길다. 그리고 매장에 갈 때마다 카운터 너머로 주방에 있는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 열심히, 즐겁게, 집중해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느낄 수 있다.  


주문을 받는 직원도 정말 친절하고 밝은 표정으로 주문을 받아 준다. 기분이 별로 였을 때 여기 햄버거를 먹으러 갔다가 매장 직원들의 밝고 친절한 태도에 기분이 좋아졌던 적도 있다.

내가 자주 갔었던 UC 어바인 앞에 있었던 인앤아웃 버거

(2) 매니저 연봉


햄버거 가게의 지점장이라고 하면, 고소득의 직업이라는 느낌이 드는가? 나는 인앤아웃 버거의 지점장이 '6 figure' (여섯 자리 숫자라는 뜻으로 10만 달러) 이상을 받는다는 얘기를 미국 친구들에게 들었는데, USA Today에 따르면 , 지점장(Manager)의 평균(최대가 아니고 평균!) 연봉이 16만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변호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건축가의 평균 연봉보다도 많은 수치라고 한다. 또한 인앤아웃 버거의 지점장이 되기 위해서는 대학 학위도 필요하지 않다. 단순히 연봉만 높은 것이 아니라 직원들에 대한 복지 또한 업계 최고라고 한다.


(3) 메뉴


앤아웃의 대표 메뉴는 뭐니 뭐니 해도 '더블더블'이다 (패티 두장과 치즈 두장이 들어갔다고 해서 '더블더블'이라고 함). 그런데 인앤아웃에는 메뉴표에는 있지 않은 '시크릿 메뉴'가 몇 가지 있다. 아는 사람들만 시킬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애니멀 스타일 버거(양파가 구워져서 나오고 특제 소스가 더해지는 버거), 프로틴 버거(햄버거빵 대신에 양상추로 감싼 버거) 등이 있다. 감자튀김의 경우, 직접 매장에서 감자를 갈아서 조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앞에 있는 것이 더블더블, 뒤에 있는 것이 치즈버거


처음에 인앤아웃을 먹어본 사람들이 많이 하는 얘기가 "맛있긴 한데... 그렇게 까지 대단한 맛은 아닌 것 같은데 왜 난리인 거야?"라는 얘기다. 사실 나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었고, 같이 갔던 와이프도 그렇게 얘기를 했었다. 하지만 평양냉면도 다섯 번 먹어보면 진정한 맛을 알듯이, 인앤아웃 버거도 먹고 나면 자꾸 생각이 나는 은근한 매력이 있다. 시간이 흐르고 다른 버거를 많이 먹어볼수록 "역시 인앤아웃이 제일 맛있었어"라는 느낌이 든다고 할 정도로 은근한 중독성이 있는 버거다.  


(4) 왜 서부에만 지점이 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신선한 고기의 유통을 위해 냉장 트럭이 당일에 도착할 수 있는 지역까지만 지점을 내기 때문이다. 텍사스주 오스틴 정도까지가 인앤아웃 트럭이 갈 수 있는 한계로 알고 있다.


(5) PIMBY를 부르는 매장


인앤아웃에 대한 캘리포니아 사람들의 애정은 너무나 대단해서, 지자체의 장들이 인앤아웃에 찾아가서 제발 자기 지역구에 매장을 내달라고 로비하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사실 이 말이 100% 팩트 일까 하는 의문도 들지만, 현지에서 보면 아주 그럴듯한 얘기로 들린다.


(6) 잊을 수 없는 인앤아웃 직원, 바비 할머니


내가 자주 가던 (UC어바인) 학교 앞의 인앤아웃 매장에는 Barby라는 70대로 보이는 한 할머니 직원이 계셨는데, 주로 매장 테이블을 닦거나, 매장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정리하거나, 매장을 정리하는 일을 하셨다.


내가 매장을 드나든 2년 동안 이분을 자주 뵈었는데, 이 분은 뵐 때마다 은은한 웃음을 짓고 계셨다. 한 2년쯤 이런 행복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매장에서 계속 뵙고 나니까 어느 순간 이 할머니와 인앤아웃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바비 할머니, 만수무강하시길...). 나는 이러한 것들이 인앤아웃의 진정한 경쟁력이고 생각한다. 항상 즐겁게, 열심히 일하는 직원이 있다는 것. 직원들을 최고로 대우하고, 신선한 식재료를 쓰고, 지점을 무리하게 확장하지 않는 것. 어떻게 보면 기본적인 것인데, 이것을 참 잘 지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또 가능한 한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인앤아웃이 비상장사(非上場社)라는 점이다. 위에 언급한 해빗 버거만 해도 2014년에 나스닥에 상장하여 화려한 데뷔를 했지만, 주가 추이를 보면 투자자 입장에서 크게 만족스러운 흐름을 보여주지는 못한 것 같다.


해빗 버거의 상장이후 주가 추이


만약 시장 상황이나 판매가 좋지 못한다면 직원들에 대한 대우나 음식의 퀄리티 또한 이러한 시장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인앤아웃은 비상장 가족기업이기 때문에 시장으로부터의 간섭이 덜하다. 인앤아웃이 상장사라면, 여기저기 출점해달라는 요청을 지금처럼 거절할 수 있을까? 지점장에게 16만 달러의 연봉을 주려는데 주주들의 저항이 없을까? 이런저런 신메뉴를 추가해서 성장 가능성을 보여 달라는 주주들의 압박을 막을 수 있을까? 아마도 아주 어려울 것이다.


아웃이 앞으로도 비상장 가족기업으로 그 맛과 정신을 잘 유지하기를 바란다.


* 결국 기-승-전 인앤아웃이 되어 버렸네요. 아래에 인앤아웃 햄버거의 회장님(President)의 CBS 방송 인터뷰 영상을 첨부합니다.

https://youtu.be/9 rNfJClN4 js

* 웬디스(Wendy's)와 잭인더박스(Jack in the Box)에 대해서도 쓰려다가... 이 두 버거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어서 생략합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해녀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담긴 곳, 제주해녀박물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